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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Aug 26. 2023

류저우(柳州) 명산 어드벤처

명산 네 곳을 오르다

1. 가학산

호텔에서 땀을 씻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객실 창밖으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던 길 건너 가학산(驾鹤山; 지아허산)을 올라보기로 했다. 산정에 누각 하나가 자리한 소담한 산이 마음을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길을 건너 공원으로 들어서서 녹지를 지나 수석처럼 버티고 선 가학산 남쪽  가장자리로 다가섰다. 암벽에 동굴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식당 주차장 화장실 등이 갖춰진 길고 너른 공간이 산의 서쪽 기슭 암벽까지 뚫려있다.


동굴 입구로 되돌아 나와 위태로워 보이는 수직 절벽 아래 자리한 '남평궁(南评宫)' 도교사원을 둘러보았다. 이 사원은 류저우의 3대 도교사원 중 하나로 당나라 때의 장상선(张相善) 장군 또는 한나라 때의 복파장군 마원(马援)을 주신으로 모시는데, 광시(广西) 일대의 난을 평정한 공을 기리기 위해 백성들이 세운 것이라 한다. 수년 전 남해안의 섬 사량도를 찾았을 때 왜구 소탕에 이름을 떨쳤던 최영 장군의 사당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벽면에 붙은 다른 안내문은 남량(南梁) 때인 502년 반란군이 여러 곳에서 봉기를 했으나, 복파묘(伏波庙)가 있는 이 일대는 감히 접근하지 못하자 황제가 친히 찾아와서 '남평궁(南评宫)'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보광신(照普光神)을 모신 본당 우측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 긴 동굴 안에 마주(妈祖)를 시작으로 각종 신들의 소상이 자리하고 있다. 으스스한 기운과 함께 머리가 쭈볏쭈볏 서며 몸이 긴장되는 느낌이 든다.


노인 네 분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가학산 동남쪽 기슭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 계단으로 들어섰다. 여느 중국의 산들처럼 계단길이 정상까지 놓여 있는데, 이 지방 특유의 형세대로 높지는 않지만 매우 가파르다.


봉우리 중턱에 자리한 정자에 젊은이 하나가 무념무상 누워 있다. 귀청을 때리는 매미소리는 들을 만 하지만 아래쪽 도로에서 암벽을 타고 올라오는 시끄러운 차량 소음을 모른 채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 입구로 들어선 지 10여 분만에 숨이 가빠지기도 전에 산 정상에 올라섰다. 정상에 자리한 가학루(驾鹤楼; 지아허루)로 오르는 문은 잠겨 있고 먼저 올라온 네댓 명의 사람들이 그늘에서 따가운 햇볕을 피하고 있다.


정상부 가장자리의 난간에 기대어 산 아래쪽에 펼쳐진 류강(柳江)과 여러 산봉우리들이 서로 어우러진 류저우의 모습이 수려하다. 반달 모형 누각 월루(月楼)에 올라서니 살살 바람이 불어 잠시 더위를 잊게 한다.


류강(柳江)을 등진 쪽 너른 정자 위에서는 류저우 남쪽의 수려한 산군을 조망할 수 있다. 툭 트인 정자에서 건장한 노인 한 분이 채찍 연습을 하다가 난간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어 말을 건넸다. 겉모습과는 달리 70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데 두어 달 정도 연습을 했다는 무게 2kg에 달하는 묵직한 채찍을 파리채 후리듯 다루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수많은 봉우리 가운데 하나, 지아허산과 그 산정에서의 멋진 조망을 땀에 젖은 가슴에 품고 발길을 돌려서 내려왔다.


2. 마안산 야경

길지 않은 가학산 산행이지만 온몸은 땀에 흠뻑 젖었다. 길거리에서 밤낮없이 웃통을 벗어젖힌 남성들을 예사로이 볼 수 있는 것은 잠시잠깐만에 온몸에 땀이 배이고 이마에서 비 오듯 땀이 흐르게 하는 견디기 어려운 더위 때문일 것이다.


다시 호텔에서 땀을 씻고 휴식을 취한 후 500여 미터 거리에 자리한 해발 270미터 높이의 마안산(马鞍山) 입구로 향했다. 야자수가 줄지어선 산 입구에는 산으로 오르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장사진을 쳤다. 입구 안전 요원에게 물으니 산 위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30여 분 후에나 입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가학산 산정에서 만났던 채찍 연습을 하던 70세 노인이 귀띔하던 대로 저녁에 이곳을 찾는 것은 적당하지 않아 보였다. 30분 후에도 어찌 될지 몰라 긴 줄 뒤에 서서 마냥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산 가장자리를 따라 오르 편으로 휘돌아 걷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에 숨어 있을 듯싶던 비밀 통로가 곧 눈에 들어왔다. 경비원이 무심한 듯 간이의자에 앉아 지키고 있는 입구 좌측 건물 내부를 통해 산정으로 연결된 길로 들어섰다. 한두 사람이 간간이 내려올 뿐 인적이 없는 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한 발 한 발 산정으로 발을 옮겼다.


마안산은 전면에서 류강(柳江)을 등지고 바라볼 때와는 달리 뒤쪽과 옆으로 곁가지 마냥 작은 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있고 곳곳에 작은 정자들도 여럿 품고 있다. 십오 분여 잠시잠깐 계단을 올랐을 뿐인데 이마에서 비 오듯 땀이 흘러 땀을 손으로 훔쳐 뿌리니 계단길 옆 초목의 잎사귀로 떨어지며 빗줄기 소리를 낸다.


사람들 발길에 닳고 닳아 반들반들한 돌계단을 따라 케이블카 탑승대 아래 전망대에 올라서니 강 건너 시 중심부의 건물을 스크린 삼아 중국몽, 인민군 환닝닌 등 화려한 색책의 선전 문구들이 건물벽을 타고 올라 어두운 허공으로 사라진다. 창사(长沙) 악록산 야간 산행 때 산정 사람들 무리 속에서 지켜보았던 시내 건물벽 레이저 쑈가 떠올랐다.


고도를 조금 더 높여 가자 오후에 올랐던 동쪽 편 가학산(驾鹤山)이 저 멀리 발치 발아래 굽어 보인다. 마안산 경관대 가장 좋은 지점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서서 자리를 뜨질 않는다. 아래쪽 입구를 지키고 서서 출입 통제를 하던 이유를 알만하다. 경관대 위에서는 화려하게 조명을 밝힌 강 건너 시내 중심부의 빌딩군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한동안 눈과 카메라에 그 멋진 풍경을 담고서 발길을 돌려 하산길에 올랐다.


말안장처럼 생긴 지점 내려오고 올라오는 좁은 계단길이 꽉 막혔다. 사람들이 없는 남산환도(南山环道)로 접어드니 언제 그랬냐는 듯 인파의 시끌벅적한 소음은 금세 멀어지고 귀뚜라미 소리와 산 아래 동네의 개 짖는 소리가 어둠에 묻혀 은은히 들려온다. 한 길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길을 찾으면 이렇듯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와도 닮았다.


남쪽에서 시곗바늘 방향으로 휘도니 산 어깨 부위에서 올라왔던 길과 만난다. 갈림길에서 마애석각 쪽 계단길은 올라올 때와 같은 길이지만 내려갈 때는 경사의 아래쪽 계단이 한눈에 들어와 더 가파르고 위협적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내려오는 길은 마음이 한결 느긋하여 발걸음을 조절하며 간혹 가지를 흔들며 살랑 상랑 불어오는 바람도 음미하는 여유도 부려본다.


3. 위펑산과 가선(歌仙)

마안산에서 내려와서 문이 굳게 닫힌 영천사(灵泉寺) 앞을 지나 낙군로(乐君路)를 따라 '류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일투쟁 활동 진열관(柳州大韩民国临时政府抗日斗争活动陈列馆)'이라는 제법 긴 명칭의 임정청사 쪽으로 향했다.


마안산(马鞍山)과 위펑산(鱼峰山) 자락에 둘러싸인 소룡담(小龙潭) 주변은 잘 조성된 공원으로 그 입구에서 이동식 노래방 기계를 가져다 놓은 두어 무리 남녀 노인들이 요란한 반주에 맞춰 목청껏 노래를 뿜어내고 있다. 마안산 산기슭을 타고 올라오던 소란스러운 반주와 노랫소리의 정체를 확인했지만 아홉 시가 훌쩍 지난 한밤중까지 왜 저리 스피크를 켜고 목청을 높이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공원으로 들어서자 '리위펑(立鱼峰)'이라는 각자가 새겨진 석재 패루가 산사의 일주문처럼 지키고 서서 산정으로 길을 안내한다. '미료정(未了亭)' 정자를 지나 산정으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길엔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십여 분 만에 정상에 오르니 남녀 넷이 둥근 석재 난간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앉아 산 아래를 굽어보며 밤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다. 어둠 속에 조명을 받아 제각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마안산과 그 아래 안긴 영천사, 그 옆으로 가학산과 강 건너 시내 중심부 등을 한동안 조망했다.


산정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총명하고 기민하며 노래가 샘솟듯 아름다워 가선(歌仙)이라고 불린다는 민간 전설의 장족 가수 류삼매(刘三姐)를 모신 삼조사(三姐祠)와 가선사(歌仙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부근에는 백설처럼 흰빛깔의 한백옥(汉白玉) 석재로 1979년 조각하여 완성한 3.1미터 높이 류삼매(刘三姐)의 조상이 자리한다. 류삼매의 구거(旧居)와 그녀의 동상도 위펑산 아래 공원 호수변에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계단길에 앉아서 쉬고 있는 한 아낙은 이 부근에서 매일같이 음악과 노래가 끊이질 않는 것은 가선(歌仙)으로 추앙받는 류삼매를 위로하고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넓은 땅의 많은 민족들로 구성된 나라이다 보니 각지를 여행하면서 실로 다양하고 독특한 풍속이 존재하고 신격화되어 받들어지는 인물 또한 무수히 많음을 목도했다. 그렇지만 공원 입구와 산중턱 가선사 부근에서 늦은 밤중까지 반주에 맞춰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데 이러한 사유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공원 건너편 낙군로와 유석로(柳石路)가 교차하는 지점에 자리한 임정 진열관은 측면이 두 도로와 기역자로 접해 있다. 어스름 녘에 또렷이 보이지는 않지만 외관은 미려하고 규모도 상당해 보인다. 늦은 시각이라 그 내부를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늘 뒤로하고 호텔로 돌아가서 하루를 마감한다.


4. 판롱산과 천지 창조신 반고(盘古)

롱탄공원에서 돌아온 후 호텔 프런트에서 퇴실 시각을 7시 반으로 연장하니 마음이 한결 여유롭다. 스마트폰과 물 한 병을 들고 차를 불러(打车; 따처) 호텔 인근에 있는 류강(柳江) 강변의 반고묘(盘古庙)로 향했다. 반고는 중국 신화 속 천지를 창조했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최근에 조성한 듯 보이는 한산한 요부구진(窑埠古镇; 야오부 구쩐) 후면을 가로질러 강변을 따라가다 보니 반룡산(蟠龙山; 판롱산) 위로 오르는 입구의 패루가 눈에 띈다. 지도상의 위치로 보아 반고의 사당은 산 위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반룡산의 형세는 어제 올랐던 가학산, 마안산, 어봉산처럼 사방이 가파른 암벽을 이루고 있어 우리나라 청량산의 낙동강변에 접한 암벽을 떠오르게 한다.


반룡산 북서쪽 기슭 절벽 위에 위태하게 자리한 청나라 때의 학자 왕계원(王启元) 형제가 은거하던 왕 씨 산방(王氏山房)을 지나 동림동(东林洞) 동굴을 통과하면 담으로 둘러쳐진 반고묘로 통하는 작은 문이 나온다.


반고는 중국 고대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천지를 창조한 신으로 삼국시대 오나라의 서정(徐整)이 지은 <삼오역기(三五歷纪)>에 처음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혼돈(渾沌) 속에서 태어난 반고는 천지개벽이 일어나자 몸이 길어지고 커져 머리와 팔다리는 오악(五岳), 피와 눈물은 강과 하천, 눈은 해와 달, 털은 풀과 나무 등 세상만물로 변했다고 한다.


자그마한 사당 안에는 반고(盘古)를 중심으로 황제(黄帝)와 염제(炎帝), 둥지의 발명자 유소씨(有巢氏), 불의 조상 수인씨(燧人氏)와 그의 아들로 의약학·침구학의 시조로 추앙받는 복희(伏義),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여신 여와(女娲), 번개의 신 뇌공(雷公)과 그의 조력자인 번개의 여신 전모(电母) 등의 조상이 자리한다.


중국 여러 지역을 다녀보았지만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에게 이로운 문명을 일으킨 신들을 한자리에 모신 사당을 이곳에서 처음으로 접하는 기쁨과 남다르다.

반고(盘古)와 여러 신들을 모신 반고묘
판롱산 오르는 길에 바라본 류강


반고묘 뒤 산봉우리에 반룡산 쌍탑 중 하나인 반룡탑(潘龙塔)이 우뚝 솟아 있다. 청나라 때인 1764-1821년에 걸쳐 세워진 칠 층 육각 전탑으로 항전기간 훼손된 것을 1994년 재건했다고 한다. 탑 주변 가장자리에 진녹색 잎사귀 위로 뻗어 올린 핫핑크빛 부겐빌레아 꽃송이들이 그 너머로 내려다 보이는 류강과 그 양안의 류저우 시내 모습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반룡탑 위쪽 높은 봉우리에는 문광탑(文光塔)이 자리하는데, 그쪽으로 가는 길 절벽에 관세음보살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와 지장보살, 선재 등 부조에 금빛 색깔을 입힌 불상군이 자리한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기니 석가모니불, 포대화상 등의 부조도 조성되어 있다. 암벽에 새겨진 '하늘계단(天梯)'이라는 각자(刻字) 옆으로 난 계단은 그 이름처럼 좁고 가파르게 절벽 가장자리를 타고 오른다.


쉬어가라 손짓하는 계단 끝에 자리한 사각정자 이란정(怡然亭)을 그냥 스쳐지나 산정 위로 올라서니 쌍탑 중 하나인 문광탑(文光塔)이 떡 버티고 서서 위용을 자랑한다. 이 탑은 류저우의 4대 명산 중 하나인 해발 197미터 판롱산 주봉 위에 자리한 높이 20.13미터의 칠 층 육각 전탑으로 반룡탑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1764년에 건립되었는데 1930년대에 파손된 것을 1993년 8월에 재건했다고 한다.


탑 내부 나선형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 조망대로 나서니 시내 쪽 전망만 허락하던 아래쪽 판롱탑과는 달리 사방으로 툭 트인 조망을 펼쳐 보인다. 패루 쪽으로 되돌아 내려오는 길 류강(柳江)에 내려앉은 햇빛이 잉어의 비늘처럼 반짝이고 유람선이 지나며 일으키는 잔물결은 그 비늘을 흩어 놓는다. 


어제오늘 지아허산, 마안산, 위펑산, 판롱산 등 류저우 시내에 자리한 명산 중의 명산 네 곳을 올랐으니 짧은 출행에서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으랴. 2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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