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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타 Sep 09. 2020

기억

Art by Steve Cutts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아이들 250명이 바닷속으로 생매장되는 현장을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이 절망적인 사건은 한국사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전쟁을 겪거나 충격적인 사건을 목도하면 마치 퓨즈가 끊어지듯이 모든 것이 마비된다.


911 테러나 세월호 침몰처럼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본 이들은 정신적 외상을 겪는다. 집단 우울증을 겪게 되고, 일종의 환멸이 내면에서 독버섯처럼 자란다.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렵다.
그리 쉽지 않았으며 시간도 걸렸다.
하지만 너희 독일인들은 그것에 성공했다.
너희가 바라보고 있는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할 것이다.
우리의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가?
반란은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도발적인 말을 내뱉지도 않을 것이며,
심판의 시선조차 갖지 못할 텐데."
-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는 생존자를 두 부류로 나눈다. 한 부류는 모든 것을 잊고 무에서 다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혹은 잊고자 애쓰지만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 다른 부류는 자신을 역사의 증언자라 규정하고 기억해 내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물론 프리모 레비는 두 번째 부류였다.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해 40년 이상 기억의 고통을 지고 살았던 프리모 레비는, 어느 봄날, 아파트 4층 난간 밖으로 몸을 던졌다. 삶의 허위와 부조리성을 거둬 드리는 그의 마지막 증언이고 해방이며 종결이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진실로부터 도주하는 망각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는 존재다. 산다는 건 어쩌면 끝없는 기억의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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