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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타 Aug 28. 2020

꽃들에게 희망을

"내가 꼭대기에 가 보았는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 트리나 폴러스, <꽃들에게 희망을>


"허허, 이 꼭대기에 아무것도 없지 않아?”

"이 바보야 좀 조용히 해! 저 밑에서 듣잖아!

저들이 올라오고 싶어 하는 곳에 우리가 와 있는 거야.

여기가 바로 그곳이란 말이야!"

"그것이 정말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

우리는 별다른 도리가 없잖아.”


출근길 지하철 계단을 빼곡히 줄지어 올라가는 무채색 사람들, 굴종하는 사람들, 끝없는 스펙 쌓기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 무한경쟁 속에서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착취하게 만드는 성과주의 시스템을 볼 때마다 이 동화를 떠올린다. 모두가 꼭대기를 향해 치열하게 올라가고, 밟혀 죽고, 추락하고, 정상의 공허함에 대해 침묵하고, 침묵하고....


만 18살에 우리는 이미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꼬리표, 서열의 위치가 결판난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전체 수험생을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획일성. 어떤 노오력이나 자기완성, 성숙의 모색도, 다 의미 없다는 무력감과 열패감을 우리는 너무 어린 나이부터 경험한다.


우선, 정상을 소유 가능성으로 보는 눈을
버려야 한다. 정상은 고작해야 종점에 지나지
않는다. 산을 정복한다는 것-등정으로 그 정상을
획득했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한, 우리는 아직도
‘정복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결국 자신을 ‘정상의 노예’로 만드는 셈이다.
- 라인홀트 메스너, <죽음의 지대>


남들을 따라서 꼭대기를 향해

기어 올라가지 않아도 괜찮다.

나비로 변신하지 않고

그냥 애벌레로 살아도 괜찮다.

살아보니, 사실은, 어떻게 살아도, 다 괜찮더라.


자유경쟁이라는 망령에 영혼을 저당 잡힌 우리 시대,

어쩌면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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