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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고래 Oct 04. 2020

함께 먹어야, 김치볶음밥

가족이 다른 말로 식구[먹을 식][입 구]인 것은

끼니를 함께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식구로 불리게 된 까닭은,

‘가족이란, 함께 밥을 먹을 때 마음이 가장 편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그 본뜻에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식구란 말의 기원과 전혀 무관하게 살아간다.  

오히려 가족과 함께 먹는 밥이 그리운 시대를 살고 있다.

어쩌면 혼밥이 더 편하고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당신의 소울 푸드는 뭐예요?

한참을 생각하던 남편이 대답했다.

김치볶음밥.


나는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다.

왜?




남편은 어릴 적 삼 남매의 맏이였다.

형제들과 함께 밥 먹는 것은 언제나 경쟁이고 전투였다.


식탁에서는 어느 때보다 예리하고 뛰어난 관찰력이 돋보였다.

누가 더 많은 양을 차지하는가, 음식의 알짜배기를 먹기 위한 싸움이었다.


식탁에서의 전술은 매우 중요했다.

밥그릇에 저장하기, 양쪽 볼에 동시에 넣고 씹기, 다음에 먹을 반찬 젓가락으로 미리 들고 있기 등등.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은 것은 늘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었다.


남편이 추억하는 그날의 김치볶음밥이 완성되었을 때,

세 남매는 여느 때처럼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의 움직임을 곁눈질해가며 긴장을 낮추지 않고 있었다.


그 무렵, 식탁의 전쟁이 지긋지긋했던 어머님은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큰 프라이팬을 식탁 한가운데 내려놓았는데, 아무에게도 개인 그릇은 할당되지 않았다.

다만, 프라이팬은 정확히 삼 등분으로 영토 분할되어 있었다.


엥?

세 사람은 처음에 당황하여 눈치만을 보고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세 영토 중 어느 것이 더 넓고 큰 지를 빠르게 분석하고 비교했다.


다 똑같다.

라는 어머님의 말에 가장 섭섭했던 건, 맏이였던 남편이었다.

막내는 무려 여덟 살이나 어린 여동생이었기 때문이다.


싸워보기도 전에 의문의 일패를 맛본 그는, 말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먹으면 먹을수록 슬픔이 찾아온 건,

김치볶음밥이 찬란하게 맛있던 이유였다.


그런데

숨겨둔 반전이 있었다.   


아...

포만감이 이미 찾아온 후였다.

아무리 먹어도, 프라이팬에 담긴 밥의 양이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동생들은 다 먹기를 포기하고 먼저 나가떨어졌다.

마지막까지 겨우 버티던 그는,

포만감을 간신히 누르고 자신의 영토에 남아있던 밥을 모조리 해치웠다.  


다 먹은 뒤 그는,

알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하하하하하하.


그렇게 웃었던 그날 이후,

그는 동생들과 양이 같든, 보다 많든, 보다 적든,

그것이 더 이상 문제로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오빠니까, 남자니까, 더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내 욕심이더라고... 동생들이 먹는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오더라...

 

그날의 식탁에서 남편이 깨달은 건 무엇이었을까.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것이 경쟁과 다툼이 아닌,  

함께 먹는 공동체로서 의리, 공존, 전우애와 같은 것이었을까.

그림 by 공감고래



난 너랑 먹을 때가 제일 맛있어.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하기도, 듣기도 한다.

신기하게, 똑같은 음식이고 재료나 조리법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함께 먹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밥맛이 달라진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누구나 먹을 때 마음이 편하고 소화가 잘 되는 그런 상대와의 식사를 원한다.   

무엇보다 밥 먹는 시간이야 말로, 하루 일과 중 즐거움과 만족감을 가장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우울하다.

요새 혼밥이 많아진 까닭은 바쁜 생활 패턴, 개인주의 등과 같은 문화 현상을 원인으로 꼽아 볼 수 있겠지만,

그보다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이 없는 외로운 현실, 혼자 먹는 것이 되려 편한 마음의 반영이 아닌 지 생각해본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한 지인은, 식구가 무려 열 한 명이었다.

그에 따르면, 형제가 많은 식탁은 말 그대로 생존을 건 전쟁터였다.

하루는, 자신의 몫을 빼앗겨 분노한 큰 형이 식탁에서 젓가락을 던졌는데

하필이면 지인의 이마에 맞아 피가 난 적 있다고, 그때 입은 흉터를 보이며 증언했다.


그런데 큰형이 아직도 그 날의 일로 미안해한다며... 지금도 형제 중 자주 연락하는 사람이 큰형이라고 한다.

이제 중년을 훨씬 넘긴 지인은 어린 시절의 식탁이 이따금 생각난다고 추억한다.


그렇게 싸웠어도 그리워한다.

그렇게 불공평해 보였어도 남편의 소울 푸드는 김치볶음밥이란다.


얼굴 마주 보며 함께 밥 먹는 사이,

자신의 몫을 양보하는 미덕을 실천하며 식탁에서 맺은 관계,  

서로의 밥맛을 돋우는 식구가 그립고 소중하다.


소울 푸드란,
어쩌면 가장 마음이 편한 사람과 함께 먹는 모든 것이다.





함께 먹어야, 김치볶음밥 레시피


1. 신김치 한 포기를 꺼내 양념을 털어내고 송송 썰어둔다.

2. 집에 남아있는 참치, 햄, 양파 등등의 부재료가 있다면 함께 준비한다.

3. 궁중팬에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김치를 볶는다. (일반 팬도 가능하지만, 깊이가 있는 것이 좋다.)

4. 3번의 김치에 적당량(원하는 당도에 맞춰) 설탕을 넣는다. 단맛은 김치의 신맛을 어느 정도 잡아준다.

5. 부재료를 준비해두었다면, 넣고 함께 볶는다.

6. 볶은 김치의 양에 비례하도록 밥의 양을 조절하여 넣는다. 만약 찬밥이라면 약간 데워 준비하는 것이 좋다.

7. 팬에서 김치와 밥, 그리고 준비한 재료를 골고루 섞어가며 볶는다.

8. 불을 끄고,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섞는다.

9. 함께 먹는 인원수에 맞춰 영토를 잘 분할하는 것이 핵심이다.

10. 깨소금을 뿌리거나, 계란프라이, 김 등을 곁들여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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