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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고래 Aug 28. 2020

엄마의 빈자리엔, 버터김치찌개

엄마의 빈자리는 언제나 컸다.

음식을 만들어 먹이는 일은 엄마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늘 시간이 부족했다.

자기를 위한 성장의 시간도, 자신을 돌보고 가꾸는 시간도.


음식만 아니었어도...

엄마는 조금 더 여유롭고 자유로웠을지도 모른다.

모든 가능성과 잠재력을 내려놓고 엄마의 시간을 채운 건...

다름 아닌 요리였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일 년에 한두 번 손꼽는 최고로 슬픈 날은

엄마가 집에 없는 날이었다.

혼자만의 외출이 엄마에겐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날이었음을... 그땐 알지 못했다.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는 역할은 아빠의 몫이었다.

어린 시절 아빠는 우리와 잘 놀아주었지만

아빠가 차려준 밥상은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했다.


아빠의 메뉴는 단 한 가지,

언제나 김치찌개였다.

밥에는 싫어하는 콩이 가득 올라와있었고, 흔한 계란 프라이조차 보이지 않았다.


밥상에선 늘 조용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아빠는 딱 한 마디로 대화를 마쳤다.


먹자.


아빠는 숟가락을 들고 밥과 국을 번갈아가며 열심히 드셨지만, 난 먹지 못했다.

나는 울상 짓고 있었지만, 아빤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아빠의 밥공기가 절반가량 줄어들 때까지 조용히 아빠만 쳐다보고 있었다.


왜 안 먹니?

못 먹겠어...

왜?


먹을 게 없다거나, 맛없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아빠의 근엄함이 무서워 반찬 투정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빤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이 식사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막막함에 마음이 무거웠다.

무언가 구조 요청을 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김치가... 매워.

간신히 입을 열고 말했다.         


그래?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는 냉장고 안을 뒤지며 무언가를 넣다 뺐다 했다.

찾고 있는 것이 없어 보였다.

냉동실을 열어 본 아빠는, 조금 밝아진 목소리로

“여기 있구나~” 했다.  


아빠가 가지고 온 건,

버터였다.


딱딱하게 얼어있던 버터를 그때까지 사용하지 않은 내 숟가락으로 힘주어 떠냈다.

그러더니 그걸 내 김칫국 안에 넣고 휘젓기 시작했다.

얼마쯤 지나자 빨갰던 찌개의 색깔이 핑크빛 주황색으로 바뀌었다.


내가 눈을 못 떼고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자.

아빤 숟가락을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제 먹어봐. 안 매울 거야.

진짜?


난 여전히 의심하며

숟가락에 국물을 조금 찍어 입에 넣어 보았다.

눈이 크게 떠졌다.


어때?

아빠가 물었다.


난 대답 대신 이번엔 국물을 더 많이 떠서 입에 넣었다.

맛이 부드럽다 못해 김치찌개에서 바닐라 아이스크림 맛이 났다.

분명 조금 전까진 먹을  없는 음식이었는데, 전혀 다른 음식처럼 느껴졌다.


버터, by 공감고래




아빠는 반찬 투정 없이 찌개 하나만 있어도 밥을 잘 드신다고 엄마는 이따금씩 말했다.

아빠와 김치찌개는 뗄 수 없는 깊은 우정이 있어 보였다.

 

어릴 적부터 남의 집 음식은 전혀 먹지 못했다던 아빠는,

밥때만 되면 어디에 있든지 집으로 달려와 할머니가 차려준 밥을 드셨다고 한다.

하다못해 그것이 물에 김치와 고추장만 푼 것이라 할지라도 아주 맛있었단다.


아빠에게 소울 푸드는 할머니의 김치찌개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엄마의 빈자리를 슬퍼하는 나를 김치찌개로 위로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 후로 엄마가 없는 날이면 나는 버터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먹었다.

버터는 김치찌개의 맵고 짠맛을 바닐라 향이 감도는 깊은 맛으로 감싸주었고,

버터의 부드러움은 엄마의 빈자리를 달래기에 충분한 위로였다.



부드러운 버터김치찌개 만드는 법


1. 돼지고기 목살 반근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잠시 물에 담가 핏물을 빼낸다.

2. 냄비에 고기를 넣고 물 500그람 정도를 부은 후, 센 불에서 끓인다.

3. 물이 끓어오르면 중약불로 줄이고 조금 더 끓여준다.

4. 먹기 좋은 크기로 썬 김치(묵은지)를 넣고, 국간장 1큰술, 다진 마늘 1큰술, 설탕 1큰술, 고춧가루 2큰술을 넣는다.

5. 다시 끓어오르면, 대파, 양파, 두부, 청양고추 등을 준비한 대로 넣는다. (없으면 생략 가능)

6. 약불로 줄이고, 약 5~10분 정도 더 끓여준다.

7. 완성된 김치찌개를 국그릇에 담고, 무가염 버터 1큰술을 토핑처럼 찌개 위에 올린다.

8. 버터를 찌개 국물에 풀어서 먹으면, 바닐라향이 감도는 부드러운 김치찌개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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