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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고래 Aug 27. 2020

깊은 밤, 계란간장비빔밥

위대한 음식일수록 재료와 조리법이 단순하다.

 

계란이 그 대표적인 예다.


계란으로 만든 요리는 셀 수 없이 많다.

계란 프라이와 스크램블,

기름 대신 끓인 물에 살짝 데친 수란,

계란에 양파를 다져 넣고 만든 계란 부침개,

가장 매력적인 도시락 반찬으로 손꼽히는 계란말이,

조금씩 남아 있는 야채들을 모두 쏟아 넣고 만든 계란찜,

계란찜에 치즈를 더해 먹어도 완벽하다.


나는 그중에서도 계란 프라이를 가장 좋아한다.

가장 단순해 보이지만 조리 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알맞은 온도로 노른자를 적당히 익혀내는 것은,

만드는 이의 관심과 정성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위대한 음식들이 그렇듯 관심과 정성이 들어가야 특별한 맛이 난다.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에는 음식 평론가로서 혹평을 일삼는 날카로운 인물, ‘안톤 이고’가 등장한다. 조연 같은 역할이지만 이 애니메이션의 제목이 ‘라따뚜이’가 된 것은 그의 역할이 크다. 그는 주인공이 만든 프랑스 가정 요리 ‘라따뚜이’를 먹게 되는데 그 순간 마법 같은 일이 그에게 일어난다. 애니메이션은 그의 변화를 피부 색깔과 표정의 변화는 물론, 성격의 변화까지 이야기한다.


안톤 이고에게 그 음식의 맛은 어릴 적 어머니의 손맛을 떠오르게 했다. 사라진 유년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을, 엄마와의 추억을, 그는 음식을 통해 회복한 것이다. 예민하고 까칠한 음식 평론가는 만화 속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안톤 이고는 맛의 진정한 본질을 발견한 인간미 넘치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소울 푸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라따뚜이의 안톤 이고가 그랬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음식에 담긴 정성과 사랑에 있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고,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은 사람의 가장 위대한 행동 중 하나다.

그래서 위대한 음식에는 사랑과 정성이 빠지지 않는다.  


좋은 음식을 먹어야 좋은 사람이 된다.

건강한 음식이 건강한 몸도, 마음도 만든다.




그날,

계란 프라이는 나에게 그런 음식이었다.


어렸던 나는 며칠 동안 열이 오르고 아팠다.

지금은 그때의 병명이나 고통스러운 통증 같은 건 기억나지 않는다.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서 앓던 기억만 흐릿하게 남아있다.


계란 프라이를 먹던 그날,

나를 둘러싼 부모님은 분주했다.

 

손을 내 머리에 얹어 보고, 옷을 갈아입히고, 물수건을 이마에 올리고 또 바꿔주고,

내 몸을 쓸어주고 안아주던 손길.

눈을 감고 거의 잠든 것 같은 상태였지만 주변이 무척 바쁘게 움직인다는 건 의식할 수 있었다.


그런 분주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몸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꼈을 때,

처음 엄마에게 했던 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엄마, 엄마... 배고파......”


새벽이었다. 방의 모든 불이 꺼져있었고, 언니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나의 목소리에 깬 엄마는, 두 번 되묻지 않고 방을 나갔다.


몇 분이 지나고 엄마가 들어왔을 때,

맛있는 냄새가 함께 들어왔다.  


“먹을 수 있겠어?”


냄새는 깊은 허기를 더 자극했다.


“응.”


밥 위에 반숙 계란 프라이를 얹고 간장과 참기름을 섞어 비벼 온 것이었다.


여전히 어두운 방,

언니가 옆에서 자고 있어서 엄마는 불을 켜지 않았다.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않은 터라 내 혀의 감각은 더 예민해져 있었다.

간장의 짭조름함과 촉촉한 노른자의 담백한 맛이

참기름의 고소함과 어우러져 평소보다 깊고 진했다.  


크게 한 숟가락을 더 먹었다.

어둡고 캄캄하던 나의 뱃속에서

계란간장비빔밥의 세 가지 맛이 폭죽처럼 터졌다.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뒤에, 아무 말없이 다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나에게 평범한 일상이 돌아온 것이다.


병과의 긴 싸움을 마치고 다시 기운을 회복할 무렵,

계란간장비빔밥은 내 몸에 필요한 연료를 가득 채워주었다.  

그곳엔 아빠 엄마의 분주함과 돌봄과 정성이 함께 들어가 있었다.


맛의 향연이 펼쳐진 그날의 깊은 새벽,

계란 프라이를 넣은 간장비빔밥은 나를 다시 일으킨 위대한 음식이었다.


지금도 나는,

나이를 먹었어도,

먹으면 먹을수록 계란이 더 좋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나도 누군가에게 더 좋은 사람이고 싶다. 

마치 그날의 계란간장비빔밥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림 by 공감고래



세 가지 맛 계란간장비빔밥을 만드는 법


1. 따뜻한 밥을 그릇에 담는다.

2. 반숙 계란 프라이를 만든다. 잘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앞뒤로 40~50초 정도 익힌다.

3. 밥에 간장 한 숟가락과 참기름 한 숟가락을 뿌리고 계란 프라이를 위에 얹는다.

4. 세 가지 재료가 고루 잘 섞이도록 비비면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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