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감고래 Oct 02. 2020

엄마의 도화지, 식빵 토스트

엄마의 어릴 적 꿈은 디자이너였다.

자신의 꿈을 그리고 펼치던 흰 도화지는,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얼마 동안 서랍 속에 넣어두어야 했다.


아주 이른 나이,

가장이 되어야 했던 엄마는 그 서랍을 다시 열지 못했다.

홀어머니와 더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엄마는 자신의 꿈을 다른 이들에게 내어주었다.



엄마는 우리를 키우며 틈틈이 그림 솜씨를 발휘했다.
그렇게 나와 언니는 엄마의 새로운 도화지였다.


무얼 그려줄까?


엄마의 물음에 언니와 나는 한참 생각했다.


별! 언니가 말했다.

달! 나도 잇따라 말했다.

왜 따라 해? 언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따라한 거 아니야. 난 항변했다.


우리가 그렇게 입씨름하는 사이,

엄마는 어느새 언니의 손바닥에 올려놓은 식빵에 케첩으로 별 모양을 긋기 시작했다.

단 하나의 선으로, 엄마는 멈추지 않고 멋지게 별을 그렸다. 놀라웠다.


한 점에서 출발한 빨간 선이

여기저기 모퉁이를 돌아 시작점으로 다시 되돌아왔을 때,

손에 들고 있던 식빵만 아니었더라면, 난 솔직히 박수를 치고 싶었다.


넌? 케첩으로 해줄까? 마요네즈로 해줄까?


엄마가 나에게 또 물었다.


마요네즈!


엄마가 이번엔 내 손에 있는 식빵 위에 마요네즈로 초승달을 그려주었다.

내가 케첩을 선택하지 않은 건, 언니에게 내가 따라쟁이가 아니란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어릴 적 마요네즈에 설탕을 뿌린 식빵의 맛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엄마가 케첩과 마요네즈를 사용해서 식빵에 그림을 그려주었던 이유가

딸기잼을 바르거나 치즈를 올려줄 만큼 우리 집이 넉넉하지 않은 까닭이었다는 걸

꼬마였던 나는 몰랐다.


엄마의 그림 실력은 나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주었다.


엄마, 나 손목시계 그려줘.


엄마는 볼펜 하나만 있어도 손목에 멋진 시계를 만들어주었다.

엄마가 손에 쥔 볼펜이 여린 살갗 위로 선을 그으며 지나갈 때면

이따금 간지러워 웃음을 터트렸지만, 난 그저 엄마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몇 시로 해줄까?


엄마는 시곗바늘을 남겨두고 나에게 다시 물었다.

음...... 3시?

아직 시계를 정확히 읽지 못하던 나에게는 ‘ㄴ’ 모양이 친숙했다.


엄마는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게, 그리고 그것이 직각이 되도록

내 손목에 그려 주었다.  


그 밖에도, 꽃반지, 보석 팔찌, 해바라기, 장미꽃 등등.

엄마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모두 그려주었다.


종종 나의 요청에 의해, 엄마는 종이 위에 초상화도 그려주곤 했었다.  

지우개를 쓰지 않고, 사람의 얼굴과 다양한 헤어스타일, 내가 입어보고 싶을 만큼 멋진 옷과 신발을 뚝딱 그리는 엄마를 보며, 나는 늘 감격했다.

그것이 엄마가 어린 시절 수없이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여 쌓아 올린 꿈의 흔적이었음을 그땐 몰랐다.


엄마 디자이너는 그림을 그릴 때면 언제나 꼬마 고객의 요구에 주의를 기울였다.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그려주기를 원하는지, 꼬마 고객을 언제나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소통했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부족한 것을 잘 몰랐다.


가난 그 자체가 아이들을 힘들게 한 적은 없다.
가난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어른의 세계이고, 그들의 몫이다.
아이들에게는 관심과 돌봄이 자양분이며 유일한 먹거리다.
그것의 결핍이 아이들을 불행에 빠트린다.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 꿈을 접어야 했던 엄마는,

자신의 딸만큼은 가난과 어른의 세계로부터 지켜주고 싶었다.


그녀는 디자이너가 아닌, 엄마의 이름으로,

서랍 속 깊은 곳에 넣어 두었던 도화지를 꺼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의 그림 안에서 꿈을 키웠다.


식빵 도화지에 그린,

엄마의 그림을 수없이 먹으며 어른으로 자랐다.


어느덧 내가 그때 엄마의 나이가 되어,

엄마가 이제 나의 요리를 맛보며 놀라워한다.

태블릿에 그린 나의 그림을 보며 대단하다며 호들갑이다.


모든 것이 당신의 그림을 먹은 덕분이라고,

당신의 꿈을 곱게 그려 먹인 나의 소울 푸드 때문이라고,

모든 것을 잊은 것 같은 당신의 얼굴을 보며 말하고 싶었다.

 

자식이란 이름으로, 당신의 도화지가 되어

나의 모든 것이 당신이 그린 그림이라고.




엄마의 식빵 토스트 레시피


1. 아이들을 위한 보드라운 우유 식빵, 또는 어른들을 위한 건강한 통밀 식빵을 준비한다.

2. 토스트기에 굽는다. 프라이팬을 이용해도 괜찮다.

3. 따뜻한 식빵에 마요네즈를 발라, 하얀 식빵 도화지를 만든다.

4. 그 위에 설탕을 뿌려 달콤한 맛을 추가한다.

5. 케첩을 꺼내 원하는 모양을 도화지에 그려넣는다. 예를 들면, 장미, 별, 달, 시계 등등 :)

6. 그림을 감상하며 맛있게 먹는다.


그림 by 공감고래


이전 09화 오늘도 내일도, 떡볶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