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친구들 사이에선 종종 이런 대화가 오갔다.
김밥, 돈가스, 탕수육, 떡볶이, 라면......
서두르지 않으면 음식을 빼앗기기라도 할 것처럼
친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앞다투어 말했다.
모두의 얘기가 끝나갈 무렵,
한 친구의 시선이 가만히 듣고 있던 나를 향했다.
넌?
나?
응.
음...
머릿속에는 처음 떠올랐던 한 개의 단어가 계속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선뜻 입 밖으로 내뱉기엔 망설여졌다.
친구가 한 번 더 재촉했다.
뭔데, 넌 없어?
난...
친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집중되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결국 질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는 대답을 하고야 말았다.
난, 마늘장아찌!
몇 초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 사이 내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어떤 친구가 웃음을 터트렸다.
마늘장아찌? ㅋㅋㅋㅋㅋ 다른 건 없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집에 와서도,
마늘장아찌라고 숨죽여 말하는 내 목소리와
친구들의 컸던 웃음소리가 반복해서 겹쳐 들렸다.
“언니, 마늘장아찌가 웃겨?”
나의 에피소드를 들은 언니는,
“왜 하필 장아찌였어? 피자, 파스타, 떡볶이... 얼마나 많은데.”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속으로 후회했다.
‘그런가?... 바보... 피자라고 할걸.’
그때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마늘이 웃겼던 것일까? 장아찌란 말 때문이었을까?
나는 왜 부끄럼을 느낀 걸까?
오래전, 해외 봉사활동으로 캄보디아에 간 적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현지인 몇 분이 우리를 위해 요리를 하고 있었다.
무언가 나에겐 익숙한 냄새였다. 마늘과 야채를 기름에 볶고 있는 듯했다.
부엌이 있는 일층으로 내려오며 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와~ 무슨 냄새예요?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요리를 해주던 현지인 아주머니에게 통역을 맡은 분이 나의 말을 전했다.
아주머니는 요리를 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날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그러더니 통역사에게 무언가 열심히 말했다. 다 듣고 난 통역사 분이 이렇게 말해주었다.
“선생님처럼 말한 외국인은 처음이라 놀랐대요.
보통 외국인들은 향신료 냄새가 강하다던가,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음식을 바라보았대요.
그런데 선생님의 미소와 밝은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대요.
외국인에게 음식을 만들어 줄 때면 늘 걱정이 앞섰는데, 안심이 되었대요.”
그날 아침 요리에는,
아주머니가 살아오며 먹어 오던 음식뿐 아니라,
음식으로 표현된 자신의 문화와 존재감까지 담겨 있었다.
더운 나라에서 이른 아침부터 불 앞에서 야채를 볶으며 수고하는 아주머니는
그러한 애씀과 정성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불안하고 위축된 마음으로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그동안 음식으로 대표하는 자신의 문화가 얼마나 외국인에 의해 낮게 평가받아왔는지,
그로 인한 아주머니의 낮아진 자존감이 어렴풋이 느껴져 내 마음도 안타까웠다.
낯선 이국땅에서 난 속 편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나는 부엌에 계신 아주머니께 정말 맛있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
“칭안나~!” (캄보디아 말: 맛있어요)
나를 보며 미소 짓는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보람을 느끼는 뿌듯함 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존중받고 인정받은 것 같은 기쁨과 고마움의 정서가 스쳐가는 듯했다.
난 마늘이 부끄럽지 않아.
서양 중심의 시선으로,
한국인의 마늘, 또는 마늘 냄새가 다소 부정적인 어감을 풍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음식의 대부분에는 마늘이 빠지지 않는다.
그 가까움 때문인지 우리나라 고대 신화에도 마늘은 중요한 식재료였다.
마늘의 효력으로 무려 곰이 인간이 되었으니 말이다.
마늘은 그 알싸한 향긋함과 더불어 몸에 좋은 효능으로도 유명하다.
마늘이 으깨질 때 나오는 알리신(allicin) 성분은 살균 작용이 강하여 음식에 곰팡이가 피지 못하게 막는다.
그것은 인간의 몸에도 항암, 항균 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친구들의 비웃음과 마늘장아찌로 위축되었던 나의 자존감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어른이 되어서야 회복되었다.
여름 더위에 밥맛을 잃거나 입맛이 사라졌을 때
내 입맛을 다시 돋우어주는 건, 마늘장아찌다.
여전히 나에겐 둘도 없는 소울푸드다.
친정에 가면 마늘장아찌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엄마는 종종 반찬으로 꺼내놓았다.
어느 날 함께 식탁에 있던 언니가 날 보고 웃으며 말했다.
“넌 어릴 때부터 마늘을 정말 좋아했어. 그땐 몰랐는데, 생각해보면 네 입맛이 참 세련됐던 것 같아.”
마늘장아찌를 좋아하는 내 기호는
수십 년 만에 타인에 의해 재평가되었다.
그 날 언니에게 보인 내 미소는, 언젠가 캄보디아에서 만났던 그 아주머니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표정이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릇에 담긴 갈색 마늘 한 알을 입에 넣고 씹었다.
처음엔 얼얼하고 알싸한 매운맛이 퍼졌지만 씹을수록 입 안이 개운하고, 끝 맛은 달콤했다.
마늘장아찌를 좋아했던 나,
어린 시절의 내 입맛이 보편적이 아니었을지라도, 부끄러운 것은 아니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그것이 건강한 맛, 한국인의 얼이 담긴 세련된 맛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마늘장아찌가 오늘 나와 너에게 하는 말,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