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감고래 Sep 09. 2020

회복이 필요할 땐, 미역국

미역국은 내가 결혼한 후 가장 즐겨 만드는 음식 중 하나다.


미역국을 자주 끓이는 건, 그것이 남편의 소울푸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역국은 가장 기본적인 재료만 있으면 어디에나 두루 잘 어울리는,

소박하고 둥글한 성격을 가진 탓이다.


미역국은 끓이는 사람의 형편을 가리지 않아서 좋다.


소금과 참기름 조금만 있어도 누구나 맛있게 끓여낼 수 있다.

소고기나 조개를 넣어 고급진 맛을 내도 좋지만,

미역 하나만으로도 깔끔하면서 깊은 맛을 선물한다.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

케이크처럼 화려한 옷을 입어본 적 없어도,

미역국 없는 밥상은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다.


미역은 피를 맑게 하고, 지혈을 도우며, 칼슘이 풍부하다.

아이를 낳은 산모가, 몸에서 빠져나간 영양분을 보충하고

아기에게 젖을 먹이며 몸을 회복하기 위해, 미역은 예로부터 꼭 필요한 약재였다.

결국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이유는, 산모에게 주는 보약이었다.


인류에게 최초의 미역국을 끓여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미역국 끓이기의 정석은

아기를 낳은 딸과 며느리를 위해,

그리고 갓 태어난 손주를 생각하며

불린 미역을 기름에 볶고 있는 할머니의 두툼한 손에 있다.

셰프의 화려한 손재주가 미역국 앞에선 도리어 쓸데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몸이 안 좋거나, 마음이 안 좋을 때면... 미역국이 생각난다.


오싹하게 한기가 느껴질 때,

두통으로 소화가 되지 않을 때,

스트레스로 몸이 축나고 속이 쓰릴 때,

미역국은 들뜬 속을 진정시키고, 맺힌 속을 풀어주며, 몸의 온기를 되찾아준다.

 

따끈하게 끓인 미역국 한 그릇이 항생제보다 강하다.


매일 먹어도, 자주 먹어도, 아무리 먹어도,

미역국이 물리지 않는 까닭은... 

치유와 회복,

그리고 진한 사랑의 맛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미역국 레시피의 등장인물을 소개합니다.


미역(주연): 나를 적당량 덜어 물에 불린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줘요.

잘린 미역: 난 그냥 불리기만 하면 된다고요~! (헤헤)


소금: 나를 조금만 가져가도 아주 좋은 맛을 낼 수 있어요. 난 마법의 가루라고. (깔깔깔)

참치액: 하지만 나로 간을 한다면, 소금에겐 2프로 부족한 깊은 맛을 더할 수 있답니다. (므흣)

멸치액젓: 참치액, 뭐니 뭐니 해도 한국 음식엔 액젓의 전통이 더 오랜 법이죠. (엣헴 엣헴)


소고기: 난 씬스틸러. 미역국에 숨은 주인공은 바로 나라고 할 수 있지. (허허)

조개와 홍합: 육지 친구, 미역은 우리와 같은 고향인 바다에서 왔다고요. 우리가 절친인 거 아시죠? (눈누난나)


된장 할아버지: 미역국에 된장을 넣으면 일석이조란 걸 젊은 세대가 모르는구먼!

들깨 할머니: 날 믿고 들깨가루를 듬뿍 넣고 끓여봐요, 깊은 맛이 두배, 세배가 되니까능. 오메가 3도 풍성해 진다잖여.


계란 아줌마: 오지랖 넓은 계란도 하나 넣어봐요. (호호) 끓는 국에 퐁당 빠트리면 수란, 휘저어 풀어 넣으면 단백질도 플러스! (호호호호)

떡이랑 어묵이랑(카메오): 우리가 특별 출연하면 아이들이 좋아해요. 마치 떡국처럼, 어묵국처럼 미역국을 변신시켜봐요. (데헷, 브이)




나는 소박하게 소금+참기름 미역국을 끓여 출발하지만,

마지막엔 들깨 할머니와 카메오들이 출연하는 미역국으로 마무리한다.


미역국은 중간중간 물을 붓고 다른 재료를 첨가해가며 계속 끓여도

짜지거나 맛이 변질되지 않고, 우릴수록 깊은 맛이 더 증가하는 매력도 있다.


요즘처럼 우리들의 몸과 맘이 지친 적이 또 있을까?


무기력한 집콕 생활,

모든 것이 멈춰버림으로 비롯된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해,

매일 먹어도 푸근하고 따듯한 미역국 레시피를 띄운다.

당신의 소울푸드가 되어 주기를 바라며......

 

그림 by 공감고래



소박한 회복 미역국 끓이는 법

1. 소고기를 준비했다면, 밑간 하여 참기름에 살짝 볶는다. 이때 고기를 완전히 익도록 볶지 않는다.

2. 소고기가 없다면, 불린 미역을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볶는다.

3. 물을 붓고 물이 한소끔 끓어오르면 소금과 참치액 등으로 간을 맞추면 완성 :)

4. 부재료로 들깻가루, 떡, 어묵, 계란 등을 취향에 따라 넣는다. 




이전 03화 취향 존중, 마늘장아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