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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고래 Aug 31. 2020

먹어도 먹어도, 두부조림


‘딸랑, 딸랑딸랑...’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부 파는 아저씨가 한 손으로는 자전거 핸들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종을 흔들고 있을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엄마~~, 두부! 두부!”


나는 발을 동동 굴리며 말했다.
머뭇거리는 사이 아저씨가 동네를 완전히 지나가버릴까 봐서였다.

엄마는 내 손에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쥐어 주었다.


골목으로 뛰어나간 나는, 탐정이라도 된 듯 종소리를 쫓았다.

숨을 멈추고 깊은 밤 허공 속으로 귀를 기울였다.
어디선가 흐릿한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다급한 마음에 마치 아저씨가 내 목소리를 듣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아저씨, 아저씨~”라고 외치며 뛰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귀 밑에 스치는 밤바람 소리, 아저씨의 종소리를 들으며 나는 달렸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몇 번 방향을 옮겨 잡은 나는,
어느 골목에 멈춰 서서 봉지에 두부를 담고 있는 아저씨의 옆모습을 보았다.


‘휴......’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만든 지 얼마 안 된 따끈한 두부 한 모를 품에 안고는
마치 경기에서 이긴 사람마냥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두부 한 모를 내밀 었다.
벌써부터 내일 아침이 기다려졌다.


그림 by 공감고래




어릴 적 내가 가장 많이 먹은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두부다.

두부조림이 내 영혼의 음식인 이유는 그것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늘 가까이, 일상에서 자주 맛보던 음식이었기에,

내 몸의 살과 뼈를 만들고 나를 키워준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두부처럼... 인생에서 소중한 것은,
화려한 이벤트가 아닌, 소소한 일상에 녹아 있는 것인지 모른다.



두부와 나 사이가 가깝고 친한 만큼,
나는 두부조림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좋아한다.




* 우선, 두부를 적당한 두께로 썰고 수건으로 받쳐 물기를 빼준다.


이때 한 조각을 집어 먹는다.
겉은 단단해 보이지만, 부드럽게 으깨지는 두부의 맛은 입 안에서 고소하게 퍼진다.


* 그다음, 소금 간을 살짝 하고 기름을 두른 팬에서 굽는다.


이때도 어김없이 한 조각을 먹는다.
두부 속에서 나오는 짭조름한 물과 두부 겉을 두른 기름이 섞이며 깊은 맛을 낸다.
날 것으로 먹었던 것과는 또 다른 맛이다.


* 노릇하게 구운 두부를 냄비에 옮겨 담고, 그 위에 갖은양념을 올린 후 중간 불로 조린다.


완성된 두부조림의 첫맛은 짭짤하고 매콤하다.
하지만 씹을수록 두부의 담백한 본연의 맛이 나와 자극적인 맛은 사라진다.

끝 맛은 오히려 부드럽고 고소하다.


빨갛게 조린 두부를, 양념으로 얹은 대파와 함께 씹으면,

파의 시원한 향이 두부의 맛에 감칠맛을 더한다.
또 색다른 맛이다.




두부조림은 자주 먹는 익숙한 음식이지만

먹는 방법에 따라서 다양한 맛을 선보인다.

그래서인가 보다.

자주 먹어도 항상 먹고 싶다.


두부조림은 나의 모습과 참 닮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것 같아 보여도 매일 똑같지는 않다.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조금씩 차이 나게 살아가고 싶은 나의 욕망과도 닮았다.


그래서인가 보다.

두부조림은 내 몸과 영혼의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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