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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고래 Oct 10. 2020

달라서 더 좋아, 멸치 볶음


다른 학교로 전학을 하루 앞둔,

중2 초여름 어느 날,

나와 헤어지게 된 슬픔을 친구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제 너희 엄마 멸치볶음을 못 먹는다니...
정말 슬퍼!


친구는 나와의 헤어짐보다,

우리 집 밑반찬과의 이별을 더 아쉬워했다.




멸치볶음,

어느 집 냉장고에나 들어있을 법한 반찬이면서,

집에서나 식당에서나 자주 등장하는 단골 밑반찬이다.


학교에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던 시절,

친구들과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도시락을 내보이던 순간,

모두의 반찬이 멸치볶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우리는 실망반 놀라움반으로 까르르 웃곤 했다.


더 놀라운 것은,

흔한 먹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맛이 집집마다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집 멸치볶음은 물엿을 많이 넣어 쫀득쫀득하고 달달했다.

친구네 멸치볶음은 기름에 튀긴 것처럼 바삭바삭하고 짭짤했다.

또 다른 친구의 멸치볶음은 고춧가루를 넣어 매콤하거나, 꽈리고추를 함께 넣어 만든 것도 있었다.  

내가 먹어 본 것 중 가장 화려한 맛은, 아몬드, 호두와 같은 견과류와 여러 종류의 씨앗들이 들어간 멸치볶음이었다.

 

내 친구는,

달달하고 소박했던 우리 집 멸치볶음을 무척 좋아했다.


그렇게 우리들은 서로의 반찬과 헤어지면서,

핸드폰도 이메일도 없던 시절, 집 전화로 몇 번의 통화를 주고받은 후

결국 영영 이별을 했다.


이따금 지금도 엄마의 멸치볶음을 마주할 때면,

중이병 사춘기 소녀의 절박했던 마지막 대사가 귓가에 맴돈다.

“너희 엄마 멸치볶음을 못 먹는 건 너무 슬픈 일이야...”  


그림 by 공감고래


맛.

일상에서 오감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가장 감각적인 경험,

아마도 그것은 맛의 세계일 것이다.

 

맛.

개성과 차이가 그토록 분명하게 경험되는 것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대개 익숙하고 편한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의 성격이 고정적인 까닭도

일관되고 안정적이려는 성향이기도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으려는 고집스러움이기도 하다.


사람의 생각도 그렇다.

한 번 들어앉은 것은 꿈쩍하지 않으려 한다.

고정관념인지... 귀차니즘인지... 사람들은 변화에 저항한다.


하지만 맛의 세계에선 조금 다르다.

사람들의 반응이 의외로 유연하고 열려있는 것을 보게 된다.


맛의 차이와 다름,

그 다양성 앞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호기심을 갖는다.

오죽하면 새롭고 낯선 세계를 찾아, 먹방을 보며 맛집 탐험을 떠날까......


우리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식탁의 공간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를 넘나 든다.


멸치볶음을 줌(zoom)으로 크게 확대해보면

한 가정의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멸치볶음은 여러 밑반찬 중 하나인데,

여기서 ‘밑’이라는 것은, ‘바탕에 깔린...’이란 뜻을 갖는다.

결국, 멸치볶음으로 경험하는 맛의 다름은 우리를 둘러싼 밑바탕의 차이, 곧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멸치볶음을 맛보고,

각각의 개성과 조리법의 차이를 존중하는 것처럼,

우리가 생각의 차이와 서로 다른 감정을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을 버겁게 만드는 갈등도 멸치볶음 졸이듯 졸아들지 않을까.


요즈음 우리는 어느 때보다 소통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다문화 사회의 차별과 편견, 언택트 시대의 단절과 연결, 디지털 문화에서 만남과 관계 등등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과제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 가치의 혼돈을 겪는다.


소통의 문제는 언제나 본질적으로 같은 곳에서 출발한다.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돌 같은 마음.

한 번 정한 것은 두 번 돌아보지 않는 눈서리 같은 마음.

나는 옳고 너는 틀린, 평행선을 긋는 직선 같은 마음.     


이러한 마음들이 제자리걸음 하며 딜레마에 빠진다.

집, 학교, 직장, 정당... 곳곳에서 부딪히고 상처 입는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 영혼까지 바사삭 빠사삭 메말라간다.


나와 너의 다름이
집집마다 다른 멸치볶음의 맛처럼,
이해와 존중, 기대와 호기심으로 바뀐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에도 서너 번 마주하는 다양한 식탁 앞에서

문화를 넘나들며 소통하는 배움의 교실이 열린다.


소울 푸드를 통해...


맛의 세계를 넘어,

부드럽고 진정성 있는 소통을 배워가는,

그런 일상을 꿈꾸어 본다.





달달하고 소박한 멸치볶음 만드는 법


1. 아무것도 넣지 않은 프라이팬에 멸치만 넣고 볶아낸다. (멸치 속 수분을 완전히 날린다.)

2.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편으로 썬 마늘을 살짝 볶는다.

3. 불을 약하게 줄이고, 2번에 간장과 물엿, 설탕을 넣어 소스를 만든다. (내가 원하는 소스의 맛으로 재료의 비율을 조절하면 된다.)

4. 3번의 소스가 바글바글 끓으면, 1번에서 준비해 놓은 멸치를 넣고 함께 조린다.

5. 멸치를 넣은 소스가 졸여지면서 쫀득하게 되면 불을 끈다.

6.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어 섞는다.

7. 매콤한 맛을 첨가하고 싶다면, 4번에서 청양고추나 꽈리고추를 함께 넣어도 좋다. (단, 야채가 들어가면 물이 생길 수 있으니 가급적 빨리 먹도록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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