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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걷다, 창의를 얻다

초등학생 아이와 창의성을 찾아 떠나는 여행

『유럽을 걷다, 창의를 얻다』


초등학생 아이와 창의성을 찾아 떠나는 여행




프롤로그

 


‘어떻게 창의적인 아이로 키울 것인가?’


     아홉 살 아이와 엄마, 아빠 - 한 가족이 ‘창의성’을 찾아 출발한 긴 여정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창의성이나 육아교육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충분히 창의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을지도, 아이를 창의적이게 돕는 좋은 환경을 주고 있는지도 확신이 없어요. 그럼에도 한 가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창의성을 추구하고, 아이가 창의적으로 자라는 데 도움이 될만한 일을 찾아 실천하고자 노력해 왔다’고.


     어린 시절의 저는 사실 창의성과는 거리가 좀 있는 아이였어요. 일찌감치 ‘국영수’만 강조하던 부모님은 제가 학교에서 받아온 미술이며 음악 숙제에 조금이라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셨지요. 이런 환경에서 독창성이나 창의성이 싹트기는 힘들었겠죠? ^^;


     중학교 2학년 때의 일. 같은 학교에 다니던 사촌 형과 집에서 함께 미술 과제를 준비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형과 ‘똑같은’ 디자인의 작품을 만들어 가지고 갔지요. 뭐가 문제인지,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건지조차 몰랐어요. 과제를 하나하나 검사하던 선생님이 마주한 것은 바로 전 시간 옆 반에서 본 어느 학생의 것과 똑같은 작품! 선생님은 ‘감히 겁도 없이 남의 숙제를 빌려다가 눈속임하려 했다’ 여기시고 저를 크게 꾸짖으셨지요. 오해는 곧 거두셨지만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따로 저를 불러 타이르셨습니다. ‘독창성’에 대한 그 때 그 선생님의 가르침은 이후의 저를 크게 바꿔 놓았답니다.


     ‘르네상스형 인간Renaissance man’이라는 표현이 있지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수학, 과학은 물론, 미술, 음악, 건축 등 다방면에 걸쳐 천재성을 보인 다재다능한versatile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모든 영역에서 천재성을 보인다는 게 노력으로 될 일은 결코 아닙니다. 한 분야에서 천재가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요. 하지만 꼭 천재가 아니라도 좋으니 기준을 조금만 낮춰 보면 어떨까요? 삶을 살아가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나를 둘러싼 중요한 것들에 관심을 갖고, 문학, 역사, 철학, 시, 그림, 음악과 같은 것들 중 하나, 둘 그 의미를 조금씩 더 알아가고, 나아가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 이런 모습이 극소수의 천재만이 아니라 많은 평범한 이들도 추구할 수 있는 ‘르네상스적 인간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직접 연주회를 열 만큼의 실력은 아니더라도 취미로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즐기고, 전업 작가로 나설 정도는 아니라도 때때로 도화지 위에 자신만의 무언가를 표현해 보고. 그런 것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일구어 가는 것은 물론, 타인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아이작 뉴턴부터 가까이는 스티브 잡스까지 그렇게 특출난 르네상스 맨은 아니어도 말입니다.


     21세기 들어 더욱 주목 받는 이런 르네상스적 인간형의 사례들을 가만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적인 핵심 요소가 발견됩니다. 바로 ‘창의성’입니다. 인공지능, 로봇 등 기술 발달로 많은 직업이 사라질 거라는 미래, 꼭 필요한 인재상으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것도 다름 아닌 창의성이죠. 창의성-창의력은 과연 어디서 오는 걸까요? 극소수의 천재만 타고나는 걸까요? 아니면 누구나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걸까요? 혹은, 다들 창의적인 잠재성을 갖고 태어나지만 어떤 이는 그것을 잘 끄집어내서 최대로 발현시키고, 또 어떤 이는 그것이 꽃 피기도 전에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리고 하는 건 아닐까요?


     대학 졸업 후 언론사 기자로 출발해 외국계 회계컨설팅 회사, 글로벌 게임 회사를 거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IT 스타트업 회사까지 여러 조직에서 홍보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일해 온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창의성’은 언제나 제게 가장 큰 화두가 되어 왔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차별화된 문제 해결법, 창의적으로 일하고 창의적으로 노는 법을 궁리하고, 또 수많은 책과 연구 보고서, 강연 자료를 찾아보고 적용해 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그런 노력이 일과 생활 모두에서 어느 정도는 효과를 내 온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온전한 삶의 주인으로서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 르네상스적 인간형은 여전히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실현되지 않은 이상향으로 남아 있습니다. 남은 생에 늦으나마 악기를 하나 더 익히고, 그림을 배우고, 그렇게 더 노력한다 한들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애석하지만 아빠의 못다 이룬 꿈은 그렇게 아이에게로 떠넘겨집니다.(미안하다, 민아~ ㅎㅎ)



 

‘창의성을 찾아 유럽엘 간다고?’


     ‘아이와 부모가 창의성을 찾아 떠나는 한 달 간의 유럽 여행.’


     이 거창한(?) 기획은 직장으로부터 받은 뜻밖의 선물, ‘특별 육아 휴직’ 제도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평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는 구성원에게 자신과 가족을 위한 ‘소중한 시간’을 선사하는 것을 복지의 중심 축으로 삼은 회사였거든요. 이미 다른 좋은 복지 제도를 많이 두고 있었지만 어린 자녀를 둔 구성원이라면 (법에서 규정하는 것에 더해) 한 달 동안 별도의 유급 휴직을 추가로 누릴 수 있도록 한 거였어요.


     언제 다시 잡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이 기회를 초등학생 아들 민 군 그리고 아내와 함께 두고두고 기억할만한 특별한 추억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한 달을 꼭꼭 채워 해외 여행을 다녀오자!’


     그렇게 가족 여행을 결정하고 목적지로 유럽을 선택하기까지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저나 아내 모두 몇 번의 여행으로 유럽에 대한 강한 동경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파리의 공원, 로마의 유적, 프라하의 고성, 유럽 곳곳의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거리와 시장에서 만날 현지 사람들의 일상적인 풍경들. 이 모든 것을 민 군에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아이도 이런 부모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해 줬습니다!


     하지만 ‘해외 여행’ 하면 흔히 떠올리듯 유명 관광지만 둘러보는 뻔한 일정보다는 우리의 여정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줄 무언가가 필요했어요. 머지 않아 우리는 바로 ‘그것’을 찾아냈습니다. 다름 아닌 ‘창의성’을 찾아 떠나는 유럽 여행!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넘어서 중세 천 년을 지배한 기독교 문화, 그리고 르네상스, 과학혁명,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많은 역사적 흔적들이 바로 유럽에 있기 때문이지요. 21세기 내 아이와 함께 살아갈 다음 세대에게 절실히 필요한 창의성, 그 단초가 될 줄 무언가를 그 곳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때만 해도 이런 생각들이 그저 막연한 꿈처럼만 그려졌답니다.


     바쁜 일상에 한동안 계획은 더 구체화되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어요. 무심히 시간만 흐르던 2018년 초 어느 날,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일단 눈 딱 감고 유럽행 항공권부터 예약했습니다. 이후 반 년에 걸쳐 동선과 일정을 구체화하고, 현지 숙소며 이동 수단 등 미리 예약해 둬야 할 것들을 틈틈이 챙겼지요. 막연한 첫 구상에서부터 구체적인 여행 준비를 거쳐 실제 여행을 떠나기까지 대략 1년이 걸린 셈입니다.


     특별한 여행을 기획한 김에 다녀와서 보고, 듣고, 경험하고, 느낀 것을 부모와 아이가 함께 담아내는 형식으로 글을 써 보면 어떨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책을 낸다면 이미 여럿 나와 있는 ‘아이와 함께 OO에서 한 달 살기’과 같은 해외 여행, 체류 에세이나 여행 가이드보다는 육아, 교육, 아이의 창의성에 대해 고민하는 수많은 엄마, 아빠들과 함께 나눌만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른들을 위한 창의성에 대한 책은 이미 많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같이 너무 진지한 연구, 학술 서적에 가깝거나, 아니면 직장에서 업무에 적용할 실용서가 대부분이죠. 부모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내 아이를 더 창의적으로 자라도록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다루고, 쉽게 이야기로 풀어낸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이 글을 준비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가 됐습니다. ‘평소 창의성에 대해 고민해 온 것들과 이번에 아이와 유럽을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낀 것을 씨줄과 날줄 삼아 부모의 마음으로, 부모의 눈높이에서 풀어보자!’


     구체적인 여행 일정은 자연스레 아이 위주로, 창의성을 중심에 두고 짜 나갔습니다. 그리니치 천문대와 영국박물관부터 지구의 오랜 역사가 살아 숨쉬는 자연사 박물관, 안토니 가우디와 같은 천재 건축가의 작품을 만나볼 거리들, 피카소, 샤갈, 클림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미술관, 모차르트의 생가, 고흐, 세잔이 머물며 영혼을 담아 작품 활동을 했던 장소들, 그리고 도심의 공원들, 현대인의 일상 곁 강과 다리, 카페와 시장까지… 창의성의 단초를 엿볼 수 있을 법한 곳을 중심으로 방문지를 골랐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며, 또 실제로 여행하는 과정에서, 창의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이 ‘실체 없는 허상을 좇는 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너도나도 창의성, 창의성~ 외쳐 대니 마치 그것이 하나의 절대선인 것처럼 맹목적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창의성을 찾아 떠난다’는 애초의 계획을 접을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틈틈이 창의성과 관련된 국내외 서적과 연구 보고서, 영상 자료도 더 많이 찾아봤습니다. 그렇게 아홉 살 아이와 40대의 아빠, 엄마는 계속해서 함께 여행을 준비했고, 마침내 2018년 8월 하순부터 9월 말까지 5주, 정확히는 35일 간의 유럽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가족은 과연 이 여정을 통해 창의성에 대한 뭔가를 찾아 냈을까요?



 

창의성을 찾는 과정 - 현재진행형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실제 글로 정리하는 작업은 오래도록 뒷전으로 미뤄져 있었습니다. 바쁜 업무와 일상을 핑계로 그 사이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우리의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지요. 유럽 여행 당시 2학년이던 민 군은 3학년을 지나 벌써 한참 전에 4학년이 되었네요. 등교한 날보다 집에 머무는 날이 훨씬 더 많아졌지만. 아무튼, 창의성을 찾아 떠나온 여정은 이후로도 여기 대한민국 서울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름 휴가철, 명절 연휴 때면 들려 오던 ‘역대 최다’ 출국 여행객과 같은 소식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코로나19로 해외에 나가고 싶어도 자유롭게 나갈 수 없는 지금, 2년이나 지난 유럽 여행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글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조금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이야기 나누고자 하는 건 유럽 여행이 아니라 아이의 창의성에 대한 것이니까요. 또 언젠가 코로나가 물러가면 그간 참아왔던 여행을 떠나고자 꿈꾸는 분들도 계실 테니 유럽을 소개하는 측면에서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미완성 원고를 불러냈습니다.


     유럽 여행을 계기로 구상됐지만 애초 이 글을 쓰게 된 의도는 ‘아이와 함께 유럽에서 한 달’과 같은 해외 여행체류의 길잡이로 접근한 것은 아닙니다. 군데군데 여행과는 무관하게 아이와 부모의 일상 속 생각과 경험을 담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 책은 미래 변화에 대비해 자녀의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엄마, 아빠와 대화를 열어보고자 하는 손짓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습니다.


     물론 여행의 기록도 담겨 있지만 단지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입장에서 아이가 어떻게 자라도록 도우면 좋을지에 대한 여러 고민을 창의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함께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각 방문지를 여행한 기록을 사진으로 넣고, 여기에 조금이나마 아이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도 아이의 글과 그림으로 담고자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진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입니다. 비록 전문 작가가 좋은 카메라로 찍은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현지의 정취를 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


     글을 정리하던 중 문득 소설 『파랑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행복’이란 이름의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틸틸과 미틸의 모험을 다룬 벨기에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대표작이죠. 마지막에 이런 문구가 나와요. “우리들이 찾고 있던 것이 이것이다. 먼 곳까지 찾으러 갔으나 여기 있었구나!” 행복은 어딘가 모를 저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깨우쳐 주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어쩌면 창의성도 조금만 다른 눈으로 보면 평범한 일상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파랑새’와도 같은 건 아닐른지요. 유럽 여행을 다녀 와서야 든 생각이지만, 멀리까지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얻지 못했을 깨달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하는 모든 행동은 둘 중 하나입니다. ‘창의성을 살리는 행동’과 ‘창의성을 죽이는 행동’. 아이들 앞에서 우리는 부모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까요? 이 책을 통해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 땅의 수많은 아빠, 엄마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도 ‘전쟁 같은’ 육아와 자녀 교육의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많은 부모님께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이 글을 바칩니다.


     자, 그럼 우리 이제 창의성의 바다로 첨벙 뛰어들어 볼까요?




브런치북 표지 이미지: 이탈리아 베네치아 여행 중 부라노섬에서 행복감에 젖은 류민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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