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킬번댁 Nov 06. 2020

구글맵만 있으면 된다면서요!

할비넴이 부릅니다. 굿바이 쓰댕.

유럽을 여행할 시 조심해야 할 세 가지를 꼽아 보자면 대략 이러하다.


1. 소매치기

2. 집시

3. 사기꾼


그리고 이 세 가지 중 특히 3번. 별것 아닌데도 걸렸다 하면 여행의 기분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요 사기꾼 부분을 다시 세분화해 보자면 요렇게 되겠다.


1. 팔찌 사기단

(얇은 실 팔지를 공으로 준다며 팔에 억지로 채워 놓고 돈을 달라 협박하는 타입)


2. 개떡 같은 레스토랑 직원.

(해준 것도 없으면서 무리한 서비스 금액을 나도 모르는 사이 영수증에 포함시키는 타입)


3. 택시 기사

(길을 모르는 여행자가 주된 타깃이고, 그것을 꼼수 삼아 여기저기로 빙빙 돌다 어처구니없는 택시비를 요구하는 타입)


물론, 그 외에도 -'사인단(이상한 종이판을 들이밀며 싸인해 달라고 정신없게 한 뒤 귀중품을 털어가는 멍청이)' 라던가 '오물(케첩이나 기름, 물감 등)을  뿌리고 닦아주는 척하면서 돈을 훔치는 못난이'

같은 변수들도 있지만. 이런 부분들은 정신만 단디 잡아두면 충분히 피할 수 있어 문제 될 게 없는데, 사기꾼들은 조금 다르다. 예상 밖의 형태로, 예고하지 않은 상태로 방심한 틈타 '반드시' 사단을 내기 때문에 특히나 조심해야 .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나는 어찌하여 포르투갈에 도착하자마자 뒤통수를 맞아야 했을까?

대체 왜! 그동안 잘 간수해오방심 이를 유럽의 천국이라 말하는 이곳에서 놓쳐 버린 까.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 승강장 표식을 찾았다. 그리고는 별다른 생각 없이 주차되어 있는 택시 중 하나를 골라 숙소 주소를 보여주었다. 약간의 언어 장벽이 보이는 듯했으나 택시 기사의 걱정 말라는 표현과 짐가방부터 받아 들기 시작한 친절에 혹해 덥석 택시를 잡아타고 말았다.


그런데 아차차! 택시 타기 전 다시 한번 금액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스페인에서 이동하는 내내 긴장했던 마음이 친절한 응대에 풀어져서 그랬는지 그 중요한 걸 놓치고 말았다.


'아 어쩌지? 에이! 뭐~별일 있겠어? 포르투갈은 유럽의 천국이라고 하잖아. 인심 좋고 정 많은 사람들만 가득하다잖아. 그러니 괜찮아. 괜찮을 거야. 이상하다 싶으면 구글맵 보여주면 된다니까 문제없겠지.'


그렇게 정신 승리를 한 뒤 안전벨트를 확인한 기사의 출발 신호를 시작으로 우리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창밖으로 기존의 유럽과는 또 다른 낯설지만 익숙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후끈한 바람과 함께 느껴지는 리스본은 이제 막 개발을 시작해 정돈되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이 마치 80년대 우리나라와 비슷해 친숙하고 또 신기했다.


한참을 리스본의 매력에 빠져, 의사소통의 불편을 뛰어넘어 여전히 현지인과 수다 삼매경인 아빠를 보며 웃고 있길 얼마나 지난 걸까? 분명 공항을 출발해 한 참을 달려온 것 같은데 우린 여전히 별것 없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여행 오기 전 알아본 바로는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거리는 자동차로 20분 내, 대중교통으로도 3~40분이면 충분히 오가는 거리였는데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대체 이곳은 어디기에 어찌하여 우린 고풍스러운 타일로 만든 거리가 아닌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 해안 도로를 달리고 있는 것인가.


느낌이 싸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택시 기사에게 숙소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시킨 뒤 제대로 가고 있는지 묻자 돌아온 대답은 고작해야. " 노 잉글리시. 오케이! 오케이!"


오케인 건 알겠는데 지금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전혀 오케이스럽지 않다며 그에게 따져 묻자 아니란다. 맞게 가고 있는 거란다. 자기를 믿으란다. 그런데 왜!! 방금 전 돌아본 거리 같기도 하고, 조금 전 지나친 건물 같기도 한 곳을 왜 자꾸 맴도는 것 같은 거지?

이러다간 고기잡이 배에 팔려 갈 것만 같아 핸드폰을 꺼내 손 안의 내 세상 구글 지도를 켰다. 그리고 두고 보잔 심산으로 공항에서부터 숙소까지의 길을 입력 한 뒤 경로 검색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지금 우린 시내 중앙과 한참 떨어진 동선 밖 어디 매를 열렬히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아!! 당했구나!!' 아니 ' 아! 포르투갈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구나!'


안 되겠다 싶어 소매치기 퇴치의 달인인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빠! 이 사람 사기꾼인가 봐. 그 있잖아. 유럽 여행할 때 택시기사들이 가자는 데로 안 가고 이상한 길로 뱅글뱅글 돌아서 택시비 폭탄 나오게 한다는 그거. 지금 구글 지도로 확인했는데 길이 정말 틀려. 우리 이상한 바닷가로 가고 있어.  "


"뭐? 그런 게 어딨어. 이리 줘봐."


핸드폰을 낚아채듯 가져간 아빠가 화면에 나와있는 지도와 현재 위치와 뻔뻔한 기사 얼굴과 택시 안을 둘러보더니 하는 말씀.


"야야.... 이거 뭐다냐. 원래 포르투갈 택시는 미터기가 없는 거야? 그럼 공항에서 시내까지 요금이 정찰제로 정해져 있는 거야? 그럼 얼마에 가기로 했어? "


"???!!!"


그랬다. 아빠 말처럼 미터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돈이 없어 차마 미터기를 매입하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설정이었고 출발 전 교통비에 따른 이렇다 할 얘기도 나누지 않았다. 그럼 대체 이건 뭐하는 시추에이션이지?

그제야 복잡한 머릿속을 울리는 생각이 있었으니,

'어머나! 나 지금 택시 사기당하는 중인가 봐.'

'어쩌지? 조만간 택시비 폭탄 제대로 떨어지겠는데?'


그동안 익히 읽어온 정보에 따르면 이럴 경우 택시 기사에게 구글 지도를 들이밀면 열에 아홉은 꼬리를 내린다고 했다. 거기에 '당신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지만 천만에 난 이미 이곳의 지리를 알고 있으니 허튼짓하지 말라'는 말까지 붙이면 사기 칠 생각은 꿈에도 못 한다고 그랬는데. 왜 하필이면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이 사람은 열에 아홉이 아닌 열에 하나밖에 없는 완전 독한 사기꾼인 걸까.


" 이 사람이! 여기가 대체 어딘데! 말해봐! 우리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노 프라브럼,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고 저케이고 간에 여기 어디냐니까? 얼마나 남았냐니까?"


" 노 프라브럼, 오케이! 오케이!"


일부러 그러는 건지, 정말 이해를 못하는 건지 택시 기사는 한결같이 평화로운 표정을 유지하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앞만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에 약이 오른 아빠가 우렁차게 호통의 한 마디를 했고 그 소리에 놀란 기사가 그제야 아빠를 흘깃 쳐다보더니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180도 달라진 택시기사의 행동에 충격받은 아빠가 당장이라도 운전대를 돌려 버리겠다는 기세로 몸을 틀어 그를 노려봤다. 아.... 이건 아닌데. 자칫 잘못했다간 유럽의 끝에서 멱살잡이가 일어날게 뻔했다. 모두가 긴장한 일촉 측 발의 상황.


그때였다. 오늘따라 있는 듯 없는 듯했던 딸내미가 속삭이듯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엄마..... 나.... 쉬야 마려."


에헤라디야. 올 것이 왔구나. 아이와 장거리 유럽 여행을 하며 제일 걱정되고 두려웠던 그것. 바로 끙아와 쉬야 바람. 그것도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밀폐된 공용 공간(택시) 안에서, 그것도 눈뜨고 택시 사기를 당하고 있는 이 와중에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불행은 한꺼번에 손을 잡고 온다더만 택시 사기도 억울한데 이젠 친절하지 못한 딸내미의 쉬야님 방문 덕에 택시 시트까지 갈아줘야 하는 지경에 놓이고 말았다.


"얼마나 참을 수 있어?"


" 조금"


"조금이 얼마 큼이야. 5분? 10분?"


"응... 몰라. 20분?"


"정말이야? 20분? 20분이 얼마 큼의 시간인 줄은 알고?"


"아니 모르겠어. 엄마가 물어보니까 대충 대답한 거야."


"아니 쉬야 마렵다며. 지금 차에서 쌀만큼이야? 아니면...."


어마나 세상에!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다리를 베베 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쯤 되면 길어야 10분 안쪽, 최악의 상황은 5분도 참을 수 없는 시간일 게다.

자식의 아픔을(쉬야를) 내가 대신하고 싶다는 느낌이 이런 것이었을까? 안쓰러우면서도 불안해 미쳐 버릴 것 같다가도 당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팔짝 뛸 지경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내리겠다고 택시를 세우고 싶었지만 눈에 드는 건 이상한 바다를 끼고 있는 이상한 공장지대였다. 여기서 내려 쉬야를 누킨들 다시 숙소를 찾아갈 고민에 빠져야 할 것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최선의 방법은 택시 사기고 뭐고 간에 지금은 어떻게든 빨리 시내에 도착을 해야 했다. 아니면 혹시 모르니 쉬야를 담을 무언가를 찾아보던가.


배낭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거다! 면세점 비닐가방.

그리고는 손에 잡히는 옷가지를 비닐 가방에 넣었다. 5분 내에 숙소에 도착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여기다 거사를 치르고 혹시 삐져나올 쉬야님은 꺼내놓은 옷가지로 닦으면 될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구차해지자 그 모습을 본 아빠의 얼굴이 민머리 저 끝까지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동안 눌러왔던 분노 게이지를 폭발시키며 택시기사에게 따져 묻기 시작했다.


"야이! 이 양반아! 가긴 어딜 가는 거야 이 양반이. 내 손녀딸 쉬야 마렵다는데. 쉬 알아? 쉬? 피(pee: 소변) 말이야! 피! 빨리 안가? 제대로 못가?  내 말 알아들어 말어! 파워 액셀 몰라? 스트롱 파워! 파워! 아니 이 사람이 빨리 가라고 빨리. 밟아보라고. 퀵퀵 몰라 퀵(quick:빨리)? 오 마이갓. 퀵퀵 스트롱(strong:세게)  고고, 스트롱 모어 모어 퀵퀵 고고.(빨리 세게 밟아봐. 어서!)"


아... 그런데 뭐지? 이 심각한 순간에 다급함의 정점에 분노를 찍으며 말을  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에 현란한 라임을 읊조리며 랩을 하던 에미넴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걸까? 왜 하필이면 이 상황에 블링블링한 힙합용 액세서리를 달고 까만 선글라스에 모자를 옆으로 눌러쓴 채 랩을 하는 아빠의 모습이 상상된 걸까?


'요! 췌키라웃! 쉬쉬~ 피피~ 마려워. 요! 퀵퀵 밟아 액셀! 야이 이양반, 어이 저양반. 어딜 가 양반. 욥~! 자 다 같이 푸쳐핸섭 앤 스트롱 요! 모어 모어! 퀵퀵 모어!'


결국 분위기 파악보다 웃음이 먼저였던 나 (우리 엄마 말마따나) 주책바가지처럼 미친 여자 산발하듯 웃어 젖히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택시 안은 정신 나간 여자처럼 웃는 나와 화가 나 얼굴이 달아오른 아빠와 당장이라도 나올듯한 쉬야에 당황한 아이와 그런 상황을 수습하는 엄마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렇게 각자가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고 있을 무렵 아빠의 피(pee: 소변) 이란 말을 기막히게 알아들은 택시기사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갑자기 골목골목을 쏜살같이 휘집어 달리더니 얼마 후 급정거를 했다. 그러더니 하는 말.

숙소에 도착했으니 여기에 소변보지 말고 어서 150 유로나 내놓으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 양반이 어디서 사기를 칠라고 그래?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이미 다 알아봤거든? 팁까지 포함해서 넉넉잡 30~35유론데 어디서 뒤통수를 치려고 그래?" 


하지만 택시 기사는 되려 택시비를 안 주려는 날 범죄자 취급하더니 경찰을 부르겠다며 협박을 하는 게 아닌가.

뭐야! 영어 못한다고 그러더니 말을 왜 이렇게 잘해! 그리고 지금 날 호구로 보는 거야? 어디서 150유로에 경찰을 찾아? 약이 올랐다. 여기서 그의 조건을 들어줬다가는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게 당연했다. 호락호락 넘어갈게 아니었다!


"에이씨! 불러! 경찰 불러! 어디 끝까지 가보자!"


든든한 조력자를 곁에 둔 이유에 설까 난 기세 좋게 삿대질까지 해가며 그를 몰아세웠다. 그리고 경찰서 번호를 찾고 전화를 걸려는데 그가 100유로로 깎아 주겠다며 인심을 쓰는 게 아닌가. 웃기네! 넘어갈 내가 아니다.


다 필요 없다며 절대 가만 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데 딸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엄마 나 쉬가 나올것 같아."


'아! 맞! 내 딸내미!'


그제야 생각난 아이의 얼굴을 봤다. 이럴 수가 이미 참기에 한계치찍었는지 노란 얼굴로 다리를 베베  할머니의 손을 잡고 주저앉아 있었다. 난감해도 이렇게 난감하다니.


이대로 리스본 길바닥에서 택시 기사와 싸우는 것도 모자라 딸내미에게 쉬야 실수를 시킬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100유로를 주고 호구 인정하는 것도 싫었고 내 앞을 가로막는 택시 기사를 밀치고 화장실 먼저 찾을 수도 없는 노릇. 기가 막혀 울컥하던 그때.


"아~! 맞다 냄비!"


뜬금없이 냄비를 찾던 엄마가 갑자기 빠른 손놀림으로 수화물 가방을 열더니 독일에서부터 애지중지 품어온 고급 스텐 냄비 박스를 꺼냈다. 그리고는 번개와 같은 속도로 제일 큰 곰솥 냄비의 포장을 벗겨 꺼내 들었다.


'응? 어머님? 그걸 가지고 뭐하시려구요? 설마.. 그런 건 아니죠? 절대 아닌 거죠?'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더니. 엄마는 한 손엔 곰솥을, 나머지 한 손엔 손녀딸의 손을 잡고 개미 쌔까리도 없는 건물 구석 어딘가를 둘러보더니 그곳에서 몸을 돌려 전투 자세를 취했다. 정확히는 엄마 등에 가려 아이의 모습도, 곰솥의 모습도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안다. 나의 독일제 빛나던 스텐 냄비의 최후가 어찌 되었는지를. 그 처참한 모습을.....


손녀딸에게 리스본 오줌싸개라는 오명을 남겨주기 싫었던 엄마는 그 와중에 도덕심까지 충실했던 거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아무도 없는 골목 구석을 찾아 나의 백화점표 WMF 곰솥 안에 쉬야님을 고이 모셔둔 것이겠지.


바이 바이 마이 곰솥~


그런 우리의 저력이 무서웠던 걸까? 아니면 징그러웠던 걸까? 택시 기사가 뻔뻔한 얼굴을 들이밀며 50유로 절대 그 이하로는 안된다며 다시 가격을 낮췄다. 마음 같아서는 한 푼도 주고 싶지 않았고 경찰을 불러 시비를 가리고 싶었지만 지금 내게 더 중요한 건 잠시 동안 창피했을 딸내미와 이래저래 놀랐을 엄마의 마음을 달래고 독일제 냄비에 담긴 쉬야를 처치하기 위해 숙소에 들어가는 일이었다.


열 받은 마음을 택시 기사에게 최대한 각인시키고자 찰진 욕 한마디와 던지듯 50유로를 주자 얼씨구나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그가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이리도 많이 일어났는지. 리스본 시내 한 복판에 널브러진 짐가방과 덩그러니 서 있는 식구들을 보고 있자니 지금 이 순간이 마치 꿈인 듯 몽롱했다.


신고식도 어지간이 시끄럽게 한다는 엄마 말에 정신을 차리고 예약한 숙소 건물을 찾아 벨을 눌렀다. 초인종 소리 너머로 들려온 호스트의 목소리는 경쾌했고 발랄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리셉션에 도착하자 역시나 사람 좋은 모습의 마리아가 우릴 반겼다. 간단한 인사와 숙박계를 작성하자 열쇠를 건네주는 그녀가 커다란 곰솥 손잡이를 불편한 듯 잡고 있는 아빠를 보더니 의아한 시선을 보내며 한마디 건넨다.


" 어머! 맛있는 요리를 해왔나 봐. 그런데 너희 바르셀로나에서 오는 길 아니었니? 혹시 그 냄비 안에 스페인 음식이 들어있는 거야?"


'아이고... 큰일 날 소리. 맛있는 음식은 무슨, 열었다간 큰 사달이 난다구. 조심해 마리아.'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부여잡고 드디어 배정받은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생각해봤다.

유럽여행에서 제일 필요한 건 구글맵이 아니었다. 유럽여행에서 진짜 진짜 필요한 건 바로 방심하지 않는 마음인 것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건 비싼 독일제 냄비고 뭐고 가족이 안전하고 편안하면 그걸로 충분한 거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무사히 포르투갈에 입성한 오늘을 자축하기로 했다. 그러면 내일부터는 사건사고 없이 즐.... 거울수 있겠지?

이전 20화 인생은 타이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