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냥 May 01. 2021

아이가 행복하게만 크면 좋겠어요

보통의 교사가 혁신학교에 발령났다.


마음에 걸리는 한 아이가 있다. 집에서 내 아이를 앞에 보고 있으면서도 이따금씩 M의 표정과 말이 지나간다. 


M은 눈에 띈다. 핵심을 바로 짚어내면서도 상상초월 엉뚱한 발언을 하고, 내 말의 내용보다 나의 발문 스킬과 의도를 생각하며 대꾸한다. 수업 시간 나의 발문에는 대뜸 응답하면서도 막상 정식으로 발표하는 자리에 서면 하기 싫다고 온몸으로 말한다. 저 정도 끼면 충분히 잘 할텐데, 저 정도 재치면 충분히 잘 할 수 있는데 왜 안할까 의아했는데 <수줍어서>라고만 보기에는 아이가 자주하는 말들이 자꾸 걸린다. "안할래요", "저는 일기 길게 못써요", "저는 원래 잘하는데 이것만 못한 거에요.", "하기 싫어요",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얘가 저한테만 뭐라고 해요. " ,"얘가 제가 발표할 때만 한숨쉬어요.", "제가 맞는데 왜 다들 틀렸다고 하죠?", "솔직히 학교 과제는 대충해도 되지 않아요?" 다른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면 시원하게 야단쳤을 텐데, M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M의 표정과 행동이, 그의 말이 <저는 상처입고 싶지 않아요>라는 외침으로 보였다



가정에서의 정서적인 지지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원인을 찾으면 좋을텐데, M의 부모님은 M에게 충분한 지지와 사랑을 보내는 듯 보인다. 따뜻한 응원, 학교 생활을 들여다보기, 아이의 기분을 위해 단란한 시간 보내기 등 학부모 상담 때 하신 말과 동일하게 "저희는 M이 행복하게만 자라면 돼요."를 충실히 실천한다. 

하지만, M이 행복하게만 자랐으면 좋겠다는 무심코 들었던 그 말이 종종 굳는 M의 표정과 오버랩되며 M이 행복한가 살피게 된다. M은 지금, 요즘 행복한걸까.  


행복하게 자라는게 당최 뭘까



나도 내 아이가 행복하게만 자랐음 좋겠다. 유명세를 얻거나 큰 부자가 되진 못해도 자신의 상태를 만족스럽다 느끼면 되겠지 생각한다. 결과가 어떻든 열심히 시도하고, 몰입에서 주어지는 과정을 받아들이면서 즐거워 하면 좋겠다. 아이에 대한 정서적인 지지를 해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받아쓰기 점수가 잘 안나와도 괜찮다. 공부를 못해도 괜찮다. 스스로 밥 벌어 먹을 준비만 되어 있으면 된다. 기왕이면 좋은 밥을 먹었으면 좋겠지만. 


행복하게 자라기 위해 남과 비교하기 보다 자신을 들여다 봤으면 좋겠다. 지레 겁먹고 어려운 과제를 피하지 말고, 결과가 어떻게 예상되든 부딪혀 볼 배짱과 오뚜기 같은 회복력이 있으면 좋겠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라는 오래된 격언을 아이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겉모습이 화려한 사람 보다는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비록 나는 놀이터 다른 엄마들의 모자를 부러워 하는 작은 마음을 가졌지만,  아이가 나보다 더 마음 수련을 잘 할 수도 있는거 아닌가. 


그러고보니, 행복하게만 자라면 된다는 소박한 소망이 제일 어렵다. 



틀려도 안 괜찮아. 



M에게 틀려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틀리면 지우고 다시 풀고, 지우개질이 귀찮아 연필로 찍찍 그으면 "다시 하세요."단호하게 말할거다. 어떤 이유든 늦으면 지각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과제를 안하면 과제에 대한 책임을 지면 된다. 이유가 있을 때 안해도 되는 과제라면, 과제보다 무거운 이유를 찾아내는 게 더 빠르지 않겠는가. 이유는 마감기한을 연장할 수는 있어도 과제를 무(無)로 돌릴 수는 없다. 틀려도 괜찮으니 쫄지 말라는 나의 격려를 학교 과제는 안해도 된다고 오해하지 않게 전달할 자신이 없기도 하다. 사정을 이해하지만 주어진 과제는 다 하도록 한다. 그게 학생 M의 책임이니까. 그리고 책임을 다하며 뿌듯함을 느끼면 좋겠다. 작은 뿌듯함이 쌓이면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겠는가. 


더불어 M의 부족한 점을 꾸짖기 보다 조금이라도 잘한 점을 폭풍 칭찬 한다. "오늘은 선생님이 잔소리를 하지 않았는데도 과제를 알아서 냈구나. " "일기쓰기 싫은 이유를 주제로 일기를 정말 잘 썼는 걸?" "틀린 걸 고치는데 지우개를 썼구나!" "어제 보다 오늘 덜 쓰기 싫어 하는 걸?" 자존감은 인정받고 칭찬받을 때 올라가고, 그렇지 않을 때 내려가는 근육과 같은 것이라 했다. 충분히 인정받고 칭찬받은 경험이 아이가 실패했을 때 단단한 지지가 될 것이다. 



M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옆 반 선생님과 대차게 싸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