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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트 Oct 02. 2021

용기백배

그래도 넌 오뚝이잖아

일어나야 오뚝이지

멋진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야무지게 꿈꿨다. 꿈이란 생각한 대로 계획 짜고 열심히 하면 이루어질 거라 믿으려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세상살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계속해서 알려주듯 어찌 잘 되는 일이 하나 없는지 매번 다시 용기내고 다짐해서, 힘겹게 발끝까지 모아 쥐어짜듯 힘내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또 넘어져도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려 애쓴다. 그래도 이미 고장 난 오뚝이처럼 "고장 났으니까 애쓰지 마.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는 번번이 거절당하며 또 넘어진다. 그래도 용기백배 내어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해본다.


illustrated by 반트 ( thyme* )

   "수험번호 00000번 000님은 불합격하셨습니다" 대체 몇 번을 더 들어야 하는 건가 싶다. 비싸도 유명한 미술학원을 다니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다르다. 마지막 학력고사에 이어, 재수는 처음 시도하는 수능으로 치러야 하는 상황에선 재수학원을 다니는 것이 나은 걸 알지만, 그럴 형편은 못되니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참 용감하다. 내신 40, 실기 40, 수능 20이니 충분히 가능하리라 착각한 입시는 또 보기 좋게 불합격해 주신다. 좀 덜 유명한 미술학원을 재수학원과 병행했다면 달라졌을까 하는 후회 섞인 변명을 해본다. 낮춰 넣은 학교도, 가고 싶어 욕심부린 학교도 낮은 점수의 수능이 발목을 잡아 내신이고 실기고 소용없다는 결론이다. 불합격 소식만 안고 부산 가서 동기 친구들과 소주를 엄청 마시며 울고 불고, 그것도 모자라 보이는 공중전화마다 엄마에게 전화 걸어 미안하다고 펑펑 울어댄다. 길거리에 버리지 않고 끝까지 챙겨준 그들에게 너무 감사하고, 다음날 변기를 붙잡고 확인 사살하는 딸을 보며 애가 달아 어쩔 줄 몰라하시는 엄마한테 미안하다. 하찮은 자존심으로 후기대학 지원도 하지 않은 딸은 빚을 내서라도 삼수를 시켜주신다며 달래시는 엄마에게 너무 죄송해서 전문대라도 가는 게 맞는 거 같다고 생각하고, 결국엔 이모집에서 가장 가까운 전문대를 골라 시험 보고 처음으로 '합격'이라는 음성을 듣게 된다. 늘 그렇듯 실망스러워도 받아들이는 성격 탓에 2년이란 시간은 어느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죽어라 한다. 열심히 공부하면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믿고, 힘겹지만 끝까지 해낸다. 다만 시대적 어려운 상황과 부딪히니 기회라는 것조차 가질 수 없다는 안타까움은 지금도 안쓰럽게 생각한다. IMF 전초전의 기운이 졸업 후에 아무리 이력서를 수십 군데 돌려도 취업은 고사하고 면접도 볼 수가 없도록 어둡게 드리운다. 지금과 다른 시대적 문화라고나 할까? 스물여섯의 나이 많은 여자고 업계 경력도 없고 가방끈은 짧아, 아무리 애써도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될 수 없다 수긍하고 포기를 생각하게 된다.


   결국 부산에 빈손, 아니지 빚을 잔뜩 진 채 돌아가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 그 많던 보험회사, 증권회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은행들도 합병하며 새로운 이름을 내걸고 있다. 그래도 미대를 졸업했으니 그 와중에 겨우 갈 수 있는 미술학원이 있어 다행이다. 어린이집의 시스템을 갖고 있는 미술학원 강사로 5~7세 반은 오전에, 초등 1~6학년은 방과 후에, 그리고 마지막 중등 예고 입시까지 빡빡한 일정이지만 박봉이다. 퇴근 후 뭔가를 해보겠다고 영어학원도 다니면서 자기 계발해보아도, 아이들을 돈으로 보는 원장의 가치관에서 한통속이 되는 듯하여 이 일도 오래 하지 못한다. 그 뒤 놀 수는 없으니 롯데 백화점 판매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로 한다. 장사에 소질이 있다.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고객을 대하고 있는 모습에 놀랍기까지 하다. 어느 날 복도 벽의 롯데 호텔 직원 채용 공고 포스터에서 '광고디자이너' 모집이 눈에 들어온다. 왠지 넣고 싶다는 생각에 입사지원서를 받아와서 예전 실력 다시 발휘해본다. 펜글씨 1급에 준하는 깔끔한 글씨를 뽐내며 지원서를 메우고 자기소개서 자리가 모자라 A4 한 장을 덧붙여서 눈에 띄게 한 것도 전략이다. 지원서를 제출하니 원서받는 분이 "하실 얘기가 많으신가 봐요? (미소 지으면서)" 말씀하신다. 허걱! 1차 서류심사가 통과된 것이다. 전문대졸에 관련학과도 아닌데 통과가 되다니 하는 놀람도 잠시, 다음 단계인 영어, 일본어 선택 면접에서의 부끄러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준비되지 아니한 자가 질러본 것이니, 불합격은 당연하다. 그래도 기분 좋다. 반은 성공했으니까. 긍정을 내세워 희망을 가져 본다.


   그렇게 부산 간지 1년이 모자랄 즈음, 가구 디자인 교수님이 오픈하신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주신다. 새로운 마음을 다잡고 가구 디자이너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지만, 이 또한 이용만 하시려 한 것 같은 나쁜 교수님과 인연이라 기억된다. 벼룩시장, 교차로를 잔뜩 들고 와 구인란을 훑어 가능하거나 관심이 가는 직종에 네모 박스를 그린다. 전화번호는 형광펜으로 표시를 해두지만 막상 전화를 하고 싶은 곳은 많지 않다. 그중에 '지드코아'라는 디자인 회사의 박스 광고가 눈에 띈다. 디자인과 사무를 둘 다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고 한다. 그래 IMF가 닥쳤으니 이것도 감지덕지고, 신입의 자세는 뭐든 예스라고 해야 한다 여기고 일을 시작해 본다. 이 놈 역시 사기 치는 사장이다. 디자인은 고사하고 월급도 주지 않는다. 솔직히 너무 바닥을 치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인지, 멍청하게 6개월이나 버티게 된다. 겨우 절반의 급여를 받고 나서야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또다시 벼룩시장, 교차로를 뚫어져라 보며 형광펜으로 긋고 긋고를 반복하여 찾아낸 회사는 '천공전기' 캐드직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면 쓰게 될 거라 캐드를 배웠는데, 다른 업종에서 밥 벌어먹고 살게 될 줄 모르는 이것이 인생사다. 아파트 공사현장에 있는 사무실이지만 서울에서 처음으로 즐겁게 일한 1년이다. 그러나 욕심 많은 대리 때문에 애초 계획한 3년을 채우지 못하게 된다. 어쩔 수 없다. 맞설 수 없는 힘만 남았으니...


    방황의 시간은 길어진다. IMF를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 정부 지원책으로 취업을 위한 여러 가지 교육지원이 나름 도움을 준 셈이다. 자비를 들여 3D MAX를 해 보았지만 실력이 미치지 못한 경험이 있어,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포토샵, 일러스트 과정을 신청하여 시작한다. 훨씬 재미있고 적성에 딱 맞다 여기게 되지만 짧은 6개월 과정이 취업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통장 잔고는 늘 저렴하여 카드 돌려막기를 하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버티기도 한다. 비참하다 여기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써본다. 다 부족한 능력을 탓이기에, 더 노력할 수 있다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슬러본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학원 친구 몇몇과 머리를 맞대어 밸런타인, 화이트 데이에 맞춘 노점상을 해보기로 한다. 말 그대로 가내 수공업이다. 초코렡 바구니와 사탕 바구니 외 단품으로 초코렡 케이크 모양의 상자 등을 제작하여, 처음에는 건대 입구 근처에서 판매해 보지만 길이 넓지 않고 주위에 팬시 용품점, 꽃가게 등이 있다 보니 쉽게 자리가 허락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신천역 근처로 옮겨 커피숍의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가게 앞에서 판매를 한다. 다행히 제작한 모든 바구니들과 단품들을 팔지만 노동 시간에 비례해 수익창출은 전혀 되지 못한 경험이다. 그래도 뭐라도 하려 애썼으니 괜찮다고 외치며 재료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회식하여 탕진한다.




* 타임 (Thyme)의 꽃말은 '용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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