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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를 만드는 마음

[제재소 다니는 직장인의 일상]

by 우드코디BJ

흔히 '오래된 것' 하면 '옛 것', '낡은 것'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1년은 365일이라는 변함없는 속도로 흐른다. 하지만 유행은 점점 빠르게 변하고, 새것에 만족하는 유효기간은 되려 짧아진다. 2010년대 중반 폭발했던 '대왕 카스텔라' 열풍은 '전국 5대 짬뽕' 보다 더 빨리 사그라졌고, 최근 한 탕후루집 사장님은 가게 연지 9개월 만에 유행이 끝났다는 한탄을 온라인에 올렸다. 패션, 여행, 육아, 취미, 재테크 등 다양한 분야에 끝없이 바뀌는 흐름을 좇으려 각종 트렌드 전망서가 쏟아진다.


유림농원에서 수확한 배추로 김장 담그는 날


시간이 지나 수명이 다하면 폐기되는 것도 있지만 오래될수록 더 값진 것도 있다. 나무가 그러하다. 수확시기를 놓쳐 시든 배추는 결국 썩는 것처럼 수명을 다한 나무도 그 자리 스러져 오랜 시간 동안 썩어 들어간다. 하지만 사람의 손을 거치면 유용한 재료로 쓰인다. 배추는 김장을 담그면 발효되어 김치가 되고, 나무는 켜서 말리고 숙성하면 좋은 목재가 된다. 김치는 주부의 정성과 손맛에 달렸다는 말처럼, 재목(材木)을 만들기 위해 목장(木匠)은 땀과 노력을 쏟는다.


오랜 경험을 지닌 목장(木匠)들이 파푸아뉴기니산 크윌라 원목을 제재하고 있다


배추에 소금을 뿌리는 것으로 김장이 시작된다. 수분이 많으면 부패가 일어나므로 소금에 절여 수분을 빼는 것이다. 원목 상태의 나무는 수분으로 가득 차 있다. 막 켜낸 나무판을 손으로 만져보면 축축함이 느껴질 정도다. 다 켜낸 판재와 각재를 잘 쌓아 너비 약 넉 자에 높이가 석 자 정도되는 무더기를 만든다. 마당으로 옮겨진 나무 무더기는 오랜 기간에 걸쳐 바람을 쐬며 천천히 마른다. 그 후 뜨거운 가마로 넣어져 속 깊숙이 배어 있는 수분까지 빼면 비로소 나무는 재목(材木)으로 쓰일 목재가 된다.


나무 수종에 따라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 동안 자연건조(air-drying)가 이뤄진다


최근 어느 대기업 건설사가 짓는 고급 브랜드 아파트에 곰팡이 핀 목재가 사용되어 논란을 빚었다. 천장에서 떼어낸 각재(가늘고 긴 목자재)를 하얀 포자가 덮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을 탔다. 곰팡이는 입주민의 호흡기와 피부 등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2008년부터 전국적으로 새 아파트에서 발생해 입주민을 괴롭힌 '대규모 혹파리 떼'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곰팡이 포자를 먹이로 삼는 혹파리는 대부분 신축 아파트에서 떼로 발생하기 때문에 '아파트 혹파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자연건조가 끝난 목재 무더기가 열기건조(kiln-drying) 가마에 입로되고 있다


건조가 제대로 되지 않은 목재는 함수율(재료가 함유하고 있는 수분의 비율)이 높아 곰팡이에 취약할 뿐 아니라 뒤틀리기 십상이다. 김장철이 다가오면 우리는 갓 담은 김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고기 수육 한 점을 먼저 떠올린다. 사실 김장은 고된 일이다. 김장 다음 날이면 몸 곳곳에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이 '김장 증후군'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다. 식구들 먹일 뿌듯함이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목재를 생산하는 마음도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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