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건축, 살아있는 목재 ①
비 온 뒤, 외벽이 감춰진 진실을 드러낸다
비가 멎은 도심을 걷다 보면, 숨기려 했던 부실이 외벽에 고스란히 드러난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목재 마감재가 부풀고 들뜨거나, 패널이 떨어져 나간 자국이 선명하다. 많은 이들이 "좋은 목재면 오래간다"라고 믿지만, 그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아무리 내구성이 뛰어난 수종의 목재라도 숨 쉴 길이 없으면 습기와 곰팡이 앞에서 무력해진다. 건물의 수명을 좌우하는 것은 외장용으로 검증된 목재 사용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공기층의 존재 여부다.
강수차단층, 영어로는 레인 스크린(Rain Screen)이라 부르는 이 구조는 건물의 허파다. 외장재와 벽 사이, 그 보이지 않는 공기층이 건물을 살린다. 빗물은 배수시키고, 내부 습기는 건조되도록 한다. 단순해서 더 강력한 원리다. 건물의 내구성은 여기서 갈린다.
실패에서 배운 교훈
강수차단층 개념이 정립되기 전, 건축은 '막는 방식'에만 의존했다. 1980~90년대 캐나다 밴쿠버에서만 수천 채의 콘도미니엄이 누수와 곰팡이로 대규모 소송에 휘말렸고, 수십억 달러 피해가 발생했다. 이른바 리키 콘도 크라이시스(Leaky Condo Crisis)다. 외벽이 숨을 쉬지 못하면 건물 전체가 병든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확인시킨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원리는 사실 새로운 발명이 아니었다. 12세기 노르웨이 울네스 교회 외벽에는 이미 강수차단층의 원형이 적용되어 있었다. 경험에서 얻은 지혜였다. 이후 1940년대 노르웨이 건축연구소의 연구로 재조명됐고, 1960년대 강수차단층 설계 원리로 정립되며 현대 건축의 표준이 됐다. 고대의 직관이 현대 과학으로 증명된 셈이다.
서울 DDP가 보여준 것
우리나라에서도 사례는 많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굴곡진 외벽은 아름답지만, 빗물이 흐를 길이 막혔다. 배수 설계가 미흡해 누수로 이어졌다. 설계와 시공 간 소통 부족으로 구배(빗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는 경사) 조정과 배수 구멍 시공이 부정확했던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부산 현대미술관의 수직녹화 외피는 식물층의 배수 불량으로 누수와 곰팡이가 생겼으며, 공기층 미형성과 배수로 막힘이 문제를 키웠다.
반면, 노원구 '월계문화체육센터(원터어울마루)'는 강수차단층을 제대로 적용해 호평받았다. 벽체와 외장재 사이에 충분한 환기층을 확보하고, 세로 띠장 위에 가로 띠장을 교차 설치해 물길과 바람길을 동시에 열었다. 설계 단계부터 공기층을 필수 구조로 인식하고, 시공 시 배수 구멍의 막힘이 없도록 철저히 관리한 것이 성공 요인이었다. 같은 시기, 같은 도시에서 벌어진 명암이다. 차이는 숨길의 존재 여부, 단 하나였다.
띠장(furring), 드러나지 않는 핵심
강수차단층의 성패는 띠장(외장재를 벽에서 띄우는 가로세로 프레임)에 달려 있다. 띠장은 외장재를 벽에서 살짝 띄워 고정하는 나무 또는 금속 프레임이다. 마치 옷을 겹쳐 입듯, 띠장은 외장재와 벽 사이에 공기층이라는 속옷을 입힌다. 그 작은 틈이 배수로이자 환기구가 된다. 침투한 빗물은 아래로 흘러내리고, 벽 안쪽의 습기는 위아래로 빠져나간다.
현장에서는 이 띠장을 설치하는 작업을 '상을 건다'라고 말한다. 세로 띠장을 먼저 벽에 고정하고, 그 위에 가로 띠장을 걸어 격자를 만든다. 이 이중 구조가 물길과 바람길을 동시에 열어준다. 일반적으로 25~50mm 두께면 충분하다. 반대로 띠장이 끊기거나 부실하게 시공되면 습기가 고여 곰팡이, 결로, 구조체 부식으로 이어진다.
재료 선택도 중요하다. 가벼운 목재 사이딩에는 방부 처리된 침엽수 띠장이 적합하다. 그러나 크윌라(kwila)나 이페(ipe) 같은 무겁고 단단한 열대 경재에는 나사 고정력이 뛰어난 활엽수 띠장이 더 안정적이다. 바닥 데크에는 아연도금 철제 각파이프를 활용해 기초 프레임을 짜기도 한다. 결국 외부 마감재의 무게와 특성에 맞는 띠장을 선택하고 정성 들여 시공하는 것이 건물 수명을 좌우한다.
콘크리트가 내뿜는 습기
특히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은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콘크리트가 경화되는 과정에서 내부에 갇힌 수분은 무려 3~5년에 걸쳐 서서히 증발한다. 두께 20cm 콘크리트 벽 1㎡에서 나오는 수분량은 약 20~30L다. 이는 한 달에 걸쳐 내리는 빗물보다 많다.
문제는 비는 밖에서 오지만, 콘크리트 습기는 안에서 온다는 점이다. 이 습기는 벽체 내부에서 목재 외장을 안쪽으로 지속적으로 적신다. 신축 건물에서 유독 목재 외장 하자가 많은 이유가 여기 있다. 이것이 RC 구조물에 목재 외장을 시공할 때 단순한 방수층이 아니라 배수와 통기를 보장하는 강수차단층이 필수인 이유다.
보이지 않는 것에 투자하라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아직도 많은 현장에서 강수차단층은 '있으면 좋은 옵션' 정도로 취급된다. 설계 단계에서 누락되거나, 공사비 절감을 이유로 생략되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초기 비용을 아낀 대가는 혹독하다. 조금의 절약이 결국 수억 원의 보수 비용과 신뢰 상실로 돌아온다. 우리나라에서도 강수차단층 부실시공으로 불과 10년 만에 토대가 부식된 사례가 빈번하다. 대형 건축물도 예외는 아니다.
건물의 품질은 보이는 자재가 전부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부위에 숨은 섬세함에서 결정된다. 강수차단층은 단순한 방수층이 아니다. 그것은 배수와 통기를 보장하여 건물이 숨 쉬고, 목재가 살아남는 생명줄이다. 외벽이 숨을 쉴 때, 집은 젖지 않는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외벽의 목재만이 아니라, 집 안의 나무도 제 호흡을 되찾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음 편에서는 실내로 들어온 목재가 어떻게 숨 쉬고, 공간과 사람에게 무엇을 주고받는지 이야기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