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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문이 빡빡해요"... 목재는 왜 늘거나 줄어드는가

숨 쉬는 건축, 살아있는 목재 ③

by 우드코디BJ

겨울, 문짝이 헐거워졌다


아무리 잘 건조된 목재라도, 습기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가구의 문짝이 여름에는 빡빡하고 겨울에는 헐거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무는 잘려나간 뒤에도 여전히 숨을 쉬며, 주변 공기 속의 수분을 들이마시고 내뿜는다.


앞선 두 편에서 건물의 숨길과 나무의 숨 고르기를 살폈다면, 이번 편은 목재 자체가 어떻게 호흡하는지 그 본질을 다룬다. 왜 나무는 계절마다 달라지는가. 그 움직임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목공의 출발점이다.


아프젤리아 수종 원목으로 만든 백골문(왼쪽), 마감 처리 후 설치된 원목문(오른쪽)


나무가 보여주는 모습들


목수들은 나무가 일으키는 변형을 뒤틀림(warp)이라 부른다. 판재의 가운데가 미소 짓듯 휘어지면 컵(cup), 길이 방향으로 활처럼 휘면 보우(bow), 위에서 봤을 때 옆으로 구부러지면 크룩(crook), 네 모서리가 비틀리면 트위스트(twist)라 한다.


그리고 건조 과정에서 가장 흔히 나타나는 갈라짐, 즉 체킹(checking)은 수분이 가장 빨리 빠져나가는 단면(端面, end grain)에서 시작된다. 길이 방향(결 방향)으로의 수분 이동 속도가 폭 방향(방사/접선 방향) 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속도 차이로 인해 판재의 끝부분이 먼저 수축하면서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이 모든 변형은 불량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결과다. 나무가 환경에 적응하며 스스로 균형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수축과 팽윤 현상에 따라 달라지는 목재의 형상


왜 이런 모양이 나올까


목재의 수축은 모든 방향에서 동일하지 않다. 나무의 세포 구조는 방향성을 갖기 때문에, 수축률에도 차이가 생긴다. 나무는 나이테를 따라 둥글게 수축한다. 이 방향이 가장 심하다. 나이테를 가로지르는 방향은 그 절반이다. 결 방향, 즉 세로로는 거의 안 줄어든다. 0.1%뿐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렇다. 나이테를 따라 둥글게 도는 방향, 목재 과학에서는 이를 접선 방향(tangential)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6~10% 정도 줄어든다. 폭 30cm 판재라면 겨울철에 최대 2cm까지 수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이테를 가로지르는 방사 방향(radial)은 3~5% 정도로 그 절반 수준이다. 반면 결 방향(longitudinal)으로는 0.1~0.2%에 불과해, 2m 판재가 고작 2mm 정도만 움직인다.


방향별 목재수축률


즉, 목재는 철이나 플라스틱 같은 등방성 재료(모든 방향이 균일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조직처럼 비대칭적으로 반응하는 이방성 재료다. 그래서 같은 나무판이라도 제재 방식에 따라 움직임이 다르다. 연륜을 평면으로 자른 평판제재(flatsawn)는 수축 차이가 크기 때문에 나이테를 세로로 자른 사분원제재(quartersawn) 보다 뒤틀림이 심하다.


밀도가 높을수록 수축도 크다. 이 모든 요소가 겹쳐져, 목재의 치수 변화는 단순한 물리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재질적 변수들의 합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같은 나무로 만든 가구라도, 어떻게 제재하고 건조했느냐에 따라 수명이 달라진다. 싼 가구가 빨리 망가지는 이유는 목재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나무 수종과 형상, 원목의 상태를 판별하는 게 부다시(제재기술자)의 노하우이고 그에 따라 제재 방법이 다르다.


수분과 목재의 과학


목재 과학에서는 이를 섬유포화점(FSP, Fiber Saturation Point)이라 부른다. 쉽게 말해, 나무 세포벽은 물로 꽉 찼지만 세포 안쪽 빈 공간엔 물이 없는 상태다. 함수율로는 약 30%다. 이 지점 아래로 떨어지면 나무는 비로소 줄어들기 시작한다.


목재의 함수율은 항상 주변 공기의 상대습도에 따라 달라진다. 공기 중 습도와 균형을 이루는 상태를 평형함수율(EMC)이라 한다. 습도가 높으면 나무는 수분을 흡수하고, 건조하면 수분을 방출한다. 이 과정은 천천히 반복되며, 목재는 계절에 따라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한다.


그래서 여름에 빡빡하던 서랍이 겨울에는 헐거워지고, 겨울에 딱 맞던 문짝이 장마철에는 잘 닫히지 않는 것이다. 이는 고장이 아니라, 나무가 계절을 따라 숨 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무 세포의 확대 단면: 자유수(Free Water)와 결합수(Bound Water)는 나무의 습기 흡수와 수축, 팽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출처 : core77.com)


틈은 얼마나 남겨야 할까


나무의 움직임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예측하고, 설계할 수는 있다. 옛 장인들은 짜맞춤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 전통 가구의 문짝과 서랍을 보면, 넓은 판재를 틀에 못 박지 않고 홈(groove) 속에 살짝 끼워 넣었다. 판재는 홈 안에서 자유롭게 미끄러지며 팽창하거나 수축한다. 틀은 고정되고, 안쪽 판재만 숨을 쉰다. 이것이 프레임-앤-패널(frame-and-panel) 구조다.


프레임 앤 패널 구조 출처 : woodcraft.com)


틈은 얼마나 남겨야 할까? 노련한 북미 목수들은 유격을 재는 도구로 동전을 썼다. 겨울엔 두꺼운 니켈(약 1.95mm), 여름엔 얇은 다임(약 1.35mm).


국내 현장에서도 비슷한 지혜가 있다. 연륜 있는 목수들은 10원, 100원, 500원짜리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마루재나 사이딩을 연속 시공할 때 일일이 자로 재는 대신, 그날의 온습도와 계절을 보고 적당한 동전을 틈 사이에 끼워가며 간격을 맞춘다. 빠르고, 정확하고, 몸으로 익힌 감각이다.


동서양 막론하고 장인의 손은 같은 리듬을 알고 있었다. 계절의 리듬을 계산한 이 작은 간격이, 가구의 수명을 결정했다.


목수가 원목마루를 시공하고 있다.


균일하게 줄지 않는 이유


목재를 건축재나 가구재로 쓰려면, 건조(drying) 과정이 필수다. 수분이 너무 많으면 접착이 약해지고, 마감재도 제대로 먹지 않는다. 반면 너무 급하게 말리면 세포벽 안팎의 수분 농도 차이 때문에 바깥층이 먼저 수축하면서 안쪽이 팽창하려는 힘과 충돌해 '응력(stress)'이 생긴다. 이를 방치하면 판재가 휘거나 터진다.


자연건조(air-dry) 단계를 거치는 이로코 수종의 함수율을 측정하는 기술자


그래서 제재소의 건조실(킬른)은 단순히 뜨거운 방이 아니다. 온도, 습도, 공기 흐름을 끊임없이 조절하는 하나의 조율 시스템이다. 숙련된 건조 기술자는 일정 간격으로 판재를 잘라 단면을 관찰한다. 그 단면의 색 변화나 미세 균열이 곧 나무의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다.


이처럼 세심한 조율이 결국 균형 잡힌 응력을 만들고, 그 결과로 얻어지는 목재가 뒤틀림이 적고 마감이 고운 고급재다. 목재를 구입할 때 "킬른 드라이(kiln dried)" 표시를 확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대로 건조된 목재는 이미 응력이 해소되어 있어, 집에 들인 후에도 안정적이다.


자연건조 과정을 거쳐 기건(air-dried) 상태에 도달한 목재는 건조가마(kiln)에 입로되어 인공건조(kiln dry) 단계로 돌입한다


마감과 결구의 지혜


아무리 완벽하게 건조해도, 목재는 다시 주변 공기에 반응한다. 그래서 목수들은 마감재(finish)를 칠해 수분의 이동을 늦춘다. 단, 마감은 수분 교환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그저 속도를 늦출 뿐이다. 그래서 좋은 목제품일수록 모든 면을 균일하게 마감한다. 보이지 않는 뒷면이나 바닥면까지도 말이다. 이는 나무가 모든 방향에서 고르게 호흡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결국 핵심은 움직임을 막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을 설계하는 것이다. 앞서 본 프레임-앤-패널 구조가 바로 그 예다. 서랍, 문짝, 벽 패널 같은 가구에서 패널은 프레임에 못이나 접착제로 고정하지 않고, 홈 속에서 살짝 떠 있도록 설계한다. 이러면 나무가 계절 따라 팽창하거나 수축하더라도 전체 구조는 변형 없이 제자리를 유지한다.


움직임을 이해하는 설계


목재의 수축과 팽창은 자연의 언어다. 이를 억누르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로 끝난다. 진정한 목공의 기술은 나무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그 리듬을 구조 속에 품는 일이다.


그리고 목제품을 사용하는 우리도 이 리듬을 존중해야 한다. 나무 가구나 마루를 오래 쓰고 싶다면, 환경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실내라면 함수율 6~11%, 실외라면 12~15%가 나무가 편안하게 숨 쉬는 범위다.


따라서 목제품을 지나치게 습한 곳에 두거나, 직사광선에 오래 노출시키거나, 난방기구 바로 옆에 놓는 것은 피해야 한다. 여름철 장마에 창문을 열어둔 1층 거실, 겨울철 보일러 배관 위 마루, 베란다 한쪽 구석에 방치된 목재 가구. 이런 환경은 나무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준다. 급격한 함수율 변화는 갈라짐과 뒤틀림을 부른다.


문짝과 프레임 사이의 1.5mm 틈, 서랍이 밀고 들어갔다 빠질 때의 미세한 저항감. 그 모든 것이 계산된 호흡이다. 장인이 남겨둔 이 여유를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목제품과 오래 함께할 수 있다.


결국 나무를 이해한다는 것은 자연의 변화와 함께 호흡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수축과 팽창은 단점이 아니라 생명력의 표현이다. 우리가 그 움직임을 받아들이고 적절한 환경을 제공할 때, 그 가구는 더 오래, 더 안정적으로, 그리고 더 아름답게 존재한다.


향나무(aromatic cedar) 수종으로 제작한 원목테이블


자연의 시간


균질한 물성을 가진 인공 재료 덕분에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고유의 물성을 가진 자연 재료에 대한 우리 감각은 무뎌졌다. 자연 재료가 발효된 건강한 음식을 느긋하게 먹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면 화학 조미료가 들어간 인스턴트 식품을 자주 먹게 된다.


좋은 목재를 만들려면 긴 기다림의 시간들이 필요하다. 목제품을 쓰면서 손때가 묻어날수록 나무는 숙성된다. 물성은 더욱 안정되고 색상도 짙게 우러난다. 결국 나무를 쓴다는 것은, 이해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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