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건축, 살아있는 목재 ②
새 집인데 마루판 사이가 벌어지고 문이 잘 맞지 않는다. 사람들은 곧바로 '불량 목재'를 탓한다. 하지만 아무리 단단하고 값비싼 나무라도, 새로운 환경에 맞춰 숨 고르는 시간을 주지 않으면 결국 뒤틀림과 갈라짐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목재의 품질이 아니라, 기다림의 부재였다.
지난 편에서 외벽의 숨길을 살폈다면, 이번 편은 나무 자체의 숨 고르기를 다룬다. 목재 순응(Wood Acclimation)은 바로 그 시간을 주는 과정이다. 나무가 집 안의 공기와 습도, 기후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숨 고르기다.
국내 한 신축 아파트에서는 입주 몇 달 만에 마루판이 갈라지고 들뜨는 하자가 속출했다. 바닥 시멘트에 갇혀 있던 수분이 마루판을 적시며 불균형을 만들었다. 목재 자체의 불량이 아니라 순응 과정의 부재가 원인이었다.
해외에서도 같은 실수가 반복되었다. 시공 직후에는 아무 문제 없던 원목 마루가, 계절이 바뀌는 순간 갈라지고 들떴다. 제조사와 시공사, 소비자는 서로를 탓했다. 그 사이 수천만 달러가 증발했다. 불과 반년 만에 아파트 단지 전체의 마루를 다시 뜯어낸 사례는, 순응 없는 시공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좋은 수종을 썼느냐"가 아니라 "충분한 순응 시간을 주었느냐"였다. 며칠의 기다림을 아끼려다 수억 원의 손실로 돌아온 셈이다.
순응이란 무엇인가
목재 순응이란, 나무가 새 집의 공기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최소 1~2주, 시공 장소에 그냥 둔다. 그게 전부다. 하지만 이 단순한 과정이 목재의 수명을 결정한다.
나무는 벌채된 뒤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재료다. 세포 구조에 남은 미세한 통로를 통해 공기 중 수분을 흡수하고 방출한다. 주변 환경의 습도에 따라 크기가 늘어나거나 줄어든다. 이 수분 평형을 찾아가는 과정 없이는 본래의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이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고대 이집트 장인들은 나일강의 범람기와 건조기를 이용해 목재를 보관했고, 동아시아 전통 목조건축에서는 "베어낸 나무를 바로 쓰지 말고 계절을 지나게 하라"는 지혜가 전해졌다. 중세 유럽의 목수 길드 규칙에도 "겨울에 베어 여름을 지나게 하고, 여름에 베어 겨울을 지나게 하라"는 말이 있었다.
20세기 들어서야 이 경험적 지혜는 함수율(Moisture Content)과 평형함수율(EMC)이라는 과학적 원리로 설명되기 시작했다. 목재가 주변 환경에 반응해 평형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수축과 팽창이 일어난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시공하면, 설치 후 환경 변화에 따라 뒤틀림과 갈라짐이 발생하는 것이다.
순응은 단순히 방치하는 게 아니다. 포장을 벗기고, 바닥에서 살짝 띄우고, 판재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게 한다. 온도는 18~24℃, 습도는 40~60%. 이 범위 안에서 최소 1~2주, 나무는 제 숨을 찾는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목재를 시공 장소에 반입하면 즉시 포장을 푼다. 바닥에서 5cm 이상 띄워 각목 받침을 두고, 판재 사이는 1cm 간격을 유지한다. 온습도계로 매일 기록한다. 여름 장마철엔 3주, 겨울 난방 강한 실내는 1주면 충분하다.
반대로 하면 안 되는 것도 명확하다. 포장된 채로 방치하거나, 지하실이나 창고에 보관하거나, 한쪽만 햇빛에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실무에서는 함수율 측정기로 일부 표본을 검사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충분한 순응 기간이 보장되는가다. 이것이 수치를 맞추는 것 이상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순응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 '잘 건조된 목재'라는 대전제가 깔려야 한다. 순응은 마법이 아니다. 이미 잘 건조된 목재여야만 순응이 의미를 갖는다. 목수가 믿을만한 목재소를 찾는 이유다.
좋은 목재는 세 단계를 거친다. 결이 고른 원목을 선별하고, 결을 읽는 장인이 눈썰미 있게 제재하며, 자연건조로 서서히 원목의 응력을 줄이고 인공건조로 정밀하게 목표 함수율까지 도달시키는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잘 건조된 목재'가 새로운 집이라는 환경에 최종적으로 적응하는 마지막 단계가 바로 순응인 셈이다.
수종에 따라 순응의 필요성도 달라진다. 참나무와 단풍나무 같은 활엽수는 수분 변동에 민감해 더 긴 순응 기간이 요구된다. 반대로 소나무나 전나무 같은 침엽수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어서 짧은 기간에도 큰 변형이 적다.
흥미롭게도 티크나 이페 같은 열대 경재는 치밀한 조직 덕분에 일상적인 습도 변화에는 강하지만, 그 뛰어난 내구성 자체가 함정이 될 수 있다. 내부에 쌓인 응력이 임계점에 이르면 변형이 한순간에 크게 터져 나오고, 단단한 만큼 되돌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수종일수록 더 철저한 순응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목재 순응의 부재로 인한 하자는 흔하다. 특히 빠른 공정을 요구하는 현장에서 목재 순응은 '생략 가능한 절차'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순응 과정을 생략한 마루와 가구는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하자가 드러나고, 이는 소비자에게 목재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각인된다.
이 문제는 시공자만의 책임이 아니다. 건축주 역시 목재가 현장에 반입된 후 최소 1~2주의 순응 기간을 계약에 명시하고, 그 기간 동안 실내 온습도가 실제 거주 환경과 유사하게 유지되었는지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온습도계 사진, 환경 관리 일지 같은 것들이다.
반대로, 충분한 순응을 거친 목재는 작은 틈이나 변형이 있더라도 구조적으로 안정적이며, 이는 목수가 나무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설계했음을 보여준다. 순응의 책임은 시공자만의 것이 아니다. 건축주도, 소비자도 알아야 한다. 목재가 반입된 날짜와 실내 온습도 기록. 이 작은 증거가 신뢰를 만든다.
보이지 않는 시간
목재 순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 시간이 나무의 수명과 건축의 신뢰를 결정한다. 좋은 목재를 고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목재가 숨 쉴 시간을 주는 일이다.
건축의 본질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 공간 안에서 나무는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 그 숨을 존중하고 기다려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