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고요함이 서울에서 30초 만에 무너진 날
나는 30대를 이혼으로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아빠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왔다. 최대한 빨리 가정을 이루고, 멋진 아빠가 되는 것. 그것이 어린 시절부터의 소원이었다. 20대 후반에 결혼했고, 정확히 30세가 됐을 때 이혼을 결정했다.
이혼 이후의 30대는 불안으로 가득했다. 무언가를 갈구했다. 확실히 나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달만 살겠다고 내려간 제주에서 2년을 머무르게 되었다.
그사이 『요가수트라』라는 책을 알게 되었고, 첫 번째 장 두 번째 절에 적힌 요가의 정의를 읽었다.
yogaś citta-vṛtti-nirodhaḥ
요가란, 마음의 작용을 멈추는 것이다.
이 한 줄을 읽는 순간, 강하게 끌렸다. 나는 정말이지, 평생 마음에 끌려다녀서 이 꼴이 됐다고 생각했다. 감정에 휘둘렸다. 충동에 끌려다녔다. 불안이 시키는 대로 살았다.
다시는 마음에 끌려다니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욕망에 불이 붙었다. 요가수트라가 붙인 불이었다.
수련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명상이었다. 제주에서 하루 종일 수련하자고 마음먹었을 때, 오전에 운동 삼아 아사나(āsana, 요가 자세 수련)를 약 1시간 하고, 그 외에는 눈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못해도 하루 4시간 이상.
아사나 1시간, 명상 4시간. 비율로 보면 아사나는 내 수련의 5분의 1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의 기준을 세웠다.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 내가 얼마나 평온히 머물 수 있는가. 이것이 내 수련의 유일한 척도였다.
첫 번째 서울 방문을 기억한다.
평온한 제주에서 시간을 보내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공항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그 몇 분 사이에, 제주에서 쌓아둔 평온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엄마를 만나서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나 이제 요가 수련합니다'라고 말했다가, 엄마의 사전에 새로운 항목을 하나 추가해주고 말았다.
"요가한다는 애가 왜 그러니?"
이후로 내가 조금이라도 감정적으로 반응할 때마다, 엄마는 이 문장을 꺼내 들었다. 정확히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더 아팠다. 그런데 이상한 건, 엄마가 미운 만큼 엄마 앞에서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 모순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그날 제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매트 위에서 아무리 고요해져도, 매트를 말고 나면 소용없다.
그때부터 내 질문이 바뀌었다. '어떻게 하면 명상을 더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매트 위에서의 수련을 매트 밖으로 어떻게 가져갈 수 있을까'로.
몇 년이 걸렸다. 수많은 실패와 실험이 있었다.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건,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여러 상황에서 직접 부딪히며 살아낸 수련이었다.
결과적으로 엄마와 얼마든지 평온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상태. 어떤 상황에서도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상태. 그렇게 되었다. 내 마음의 주인은 나다. 그리고 그 변화의 대부분은, 아사나가 아닌 곳에서 일어났다.
아사나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요가의 시작과 끝은 매트 위가 아니다. 삶 그 자체다.
이 글은 그 간극을 건너온 기록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 간극을 건너는 데 함께하고 싶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먼저 건너본 동료 수련자로서.
당신의 삶 전체가 매트다. 수련은 매트를 펴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다.
오늘 하루, 매트를 말고 난 뒤에도 수련자로 살아보시라. 아침에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