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혜 Jul 11. 2024

엄마도 스스로를 챙겼으면 좋겠어.

루미의 치료를 시작한 지 몇 개월째, 둘째가 방학을 맞으면서 집에 자주 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집에 들러서 루미와 좀 놀기도 하고 오빠와도 투닥댄다. 하지만 공부가 중요한 시기이니 아빠집과 엄마집과 독서실과 학원을 오갔다. 딸애의 왕래와 함께 지숙에게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운전을 시작한 것이다. 아들이 실컷 몰고 다녔던 차로 지숙은 딸 애를 학교나 상준의 집에 데려다주었다. 상준도 둘째 딸애가 엄마집에 갑자기 자주 들르는 것을 이상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지숙은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숙은 루미를 데리고 병원을 갈 때도 차를 몰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가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끌고 와서 물었다. "작은 방 그냥 내가 써도 돼?" 그러면서 "루미랑 더 놀고 싶어." 지숙은 아이에게 부러 루미의 투병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요즘 루미에게 많이 집착하는 것 같았다. 지숙이 묻자. "오빠가 말해줬어."라며 둘째가 말했다. "루미는 내 친구야. 하지만 엄마도 스스로를 신경 썼으면 좋겠어." 지숙은 왠지 자신이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주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전에 마음이 너무 힘들 때는 지숙 자신만을 생각했었다. 루미가 아프고 나서야 미처 보이지 않던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 눈에 걸렸다. 둘째 아이의 어른스러운 모습이 왠지 안쓰럽게 보였다.



  어느 날, 루미가 다소 활기를 찾은 것처럼 보였다. "산책 갈까?"라는 말에 신나서 현관에 나선 루미를 보며 지숙과 딸이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과 루미가 함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작은 강아지는 조금 걷다가 지치면 헥헥대며 안아 달라는 듯 지숙의 다리를 살살 건드렸다. 그러다 또 힘이 나면 내려달라고 버둥댔다. 지숙은 루미가 공원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루미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 기억나? 루미가 쪼그말 때 나도 쪼그맸던 거 같아." 딸애가 말했다. "맞아. 많이 컸네. 둘 다." 지숙이 답했다.


 



  "엄마, 저기 서 봐. 루미 안고." 둘째 딸애는 핸드폰 카메라를 들며 말했다. "다른 포즈!" 아이는 제법 프로다운 폼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루미가 잔뜩 신이 났다. "엄마, 자전거를 한대 사주면 안 돼?" 딸이 말했다. 지숙이 웃으며 말했다. "한창 바구니 앞에 담요를 깔고 루미를 태워서 다니던 시기가 있었지." 어린 시절 아이에게는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가 있었다. 루미는 바람을 맞으며 속도를 즐겼었다. "사 줘~!" 아이가 졸랐다. 아이가 뭘 사달라고 하는 건 처음이었다. 지숙이 말했다. "그러자." 루미도 신난다는 듯 왕왕대며 갑자기 흙을 파헤쳤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루미는 지친 듯 잠들었다. 지숙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깽 ㅡ." 밤중에 루미의 새된 소리에 지숙이 깨서 거실에 나왔다. 루미가 끙끙대고 있었다. 지숙은 급할 때 사용하도록 안내받은 진통제를 챙겼다. 하지만 루미는 약을 먹고 싶지 않은지 고개를 홱 돌렸다. 지숙이 루미를 쓰다듬자 루미는 조금씩 진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더 낑낑되면 약을 먹일 거라는 것을 아는 것일 수도 있었다. 강아지의 차가운 몸이 조금 따뜻해질 때까지 지숙이 쓰다듬어 주다가 결국 강아지를 방으로 데리고 갔다. 온열 매트를 깔아주자 루미는 조금 편안해진 듯 다시 잠들었다. 



  '낮에 산책 간 건 너무 좋았는데, 루미는 좀 힘들었던 걸까?' 지숙은 루미의 아픔을 덜어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동시에 몇 번이고 이것보다 더 심하게 아픈 모습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고민이 깊은 밤이었다. 고민하던 지숙이 핸드폰을 켜서 보았다. 딸이 사진을 잔뜩 보내두었다. 낮에 루미와 찍은 사진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찾아냈는지 옛날 앨범 속 사진들도 다시 사진을 찍어 보냈다. 오래된 사진 속에는 딸 애의 첫 돌 때 청진기를 들어 올린 딸의 모습과, 어린 시절 자전거 바구니에 루미를 담고 달리는 딸애의 모습, 지숙이 루미를 번쩍 들어 올리는 모습, 아들이 딸애를 놀려서 딸애가 엉엉 울던 모습들이 담겨있었다. 



이전 12화 루미, 이제 편히 쉬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