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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Jul 11. 2024

아프면 약을 먹고 치료를 해야지.

너무도 익숙한 집에 지숙과 루미가 도착했다. 루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거실에 깔린 담요 위에 누웠다. 오늘 하루가 고되었을 것이다. 지숙도 소파에 앉아서 루미를 바라보았다. '멀쩡해 보였는데, 오늘 보니 힘이 없어 보이긴 하네. 왜 몰랐을까?' 자책의 목소리가 지숙의 머릿속에 울렸다. 첫째 아이에게 루미가 좀 아프다는 문자를 보냈다. 전남편과 딸에게는 루미의 병치레를 알리지 않을 작정이었다. 상준은 루미를 같이 기르긴 했지만 굳이 말할 필요가 없고, 둘째 아이는 한창 공부할 시기이니 연락이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지숙은 머리가 복잡했다.



  지숙의 핸드폰에서 짧은 알람벨이 울렸다. 메일이었다. 수현은 림프종에 대한 치료 옵션들을 메일에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어떤 약물을 사용하는지 대체 약물은 무엇인지, 가격을 어느 정도로 예상하는지 까지도 상세히 알려주었다. 





  스크롤을 하던 지숙의 손이 어떤 부분에서 멈추었다. 메일의 말미에는 수현의 진심 어린 조언이 빼곡했다. "보호자님 오늘 안락사를 말씀하실 때는 저도 마음이 아팠어요. 하지만 진심이 아니실 걸로 알아요. 저는 보호자님께서 너무 무거운 결정을 하게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가능하다면 치료를 통해서 루미의 남은 시간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또 어떤 결정을 하시든 쉽지 않을 거예요. 이럴 때일수록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시려고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주변의 가족, 친구, 또 저희와 같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최대한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루미도 보호받아야 하지만 치료과정을 함께하는 보호자님 스스로도 아껴주고 보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맛있는 저녁 드시고, 가족분들과도 잘 상의하셔서 결정이 내려지면 말씀 주세요."



  지숙은 수현의 메일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지숙은 인터넷 카페에서 여러 정보들을 찾아보았다. 설명들이 모두 생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생소한 것들이 루미의 삶은 집어삼킬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이 생경한 아픔에 익숙해질 것이다. 지숙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전화기 너머로 굵은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미 어디가 아픈데?" 



  "림프종이래. 이미 전이가 되어서 치료해야 한대." 지숙이 답했다.



  "..." 아들이 대답을 망설였다. 그러더니 "좀 찾아봐야겠네. 어떤 병인지. 이따 집에 갈게."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엄마는?"이라며 물었다.



  "응. 난 괜찮지. 어떻게 치료할지 결정해야 해. 동물병원에서 치료 방법을 메일로 정리해서 알려줬어." 지숙이 말했다.



  "나도 보내줘. 그럼 나 들어가야 해서 이만 끊을게." 아들이 말했다. 아들의 학원수업 시간이었다. 언제 이렇게 해가 졌나 싶게 창 밖이 캄캄했다. 지숙은 식탁에 노트북을 들고 가 앉아서 이것저것 검색을 했다. 갑자기 오른쪽 어금니에서 시작된 통증이 위턱을 타고 광대뼈를 눌렀다. 두통이 관자놀이를 뚫고 들어오는 듯했다. 통증은 더욱 위쪽으로 올라가 정수리에서 머리를 찔러 눌렀다. 몇 번이고 쨍한 통증이 지숙을 괴롭혔다. 지끈한 머리를 붙잡고도 루미의 치료 방법을 열심히 찾고 있는 자신을 보며 지숙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루미의 사료와 병원에서 받은 캔을 준비해서 강아지에게 먹였다. 



  아들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지숙에게 이것저것 묻더니 거실 바닥에 앉아서 루미를 쪼물딱거렸다. 어릴 때부터의 버릇이었다. 아들의 핸드폰이 계속해서 진동했다. 그러다 문득 전화를 받아 들고는 "아 오늘은 본가에 있을 거야."라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것을 끝으로 전화기가 조용해졌다. 지숙의 두통은 여전히 심했다. 





  "머리 아파? 타이레놀 같은 거 없어?" 아들이 말했다. 그리고는 여기저기를 뒤적이더니 비어있는 두통약 통을 흔들다가 쓰레기 통에 던져 넣었다. 그는 지숙에게 "약 좀사올게"라며 겉옷을 걸쳐 입었다. 



  "안 사 와도 되는데." 지숙이 말했다. 



  "아프면 약을 먹고 치료를 해야지." 아들이 말했다.



  "고맙네. 우리 아들." 지숙이 답했다. 식탁에 앉아서 본 아들의 뒷모습이 언제 저렇게 훌쩍 컸는가 싶었다. 아들이 나가다가 다시 들어오며 말했다. "엄마." 지숙이 답했다. "응." 그는 말을 이어갔다. "한 달이든 일 년이든 십 년이든 루미에게 남은 기간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계속 잘해주면 어떨까?" 아들은 그 말을 하고는 쌩하고 집에서 나가버렸다.



이전 10화 어떤 치료 방법을 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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