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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Jul 11. 2024

루미, 이제 편히 쉬렴

루미는 교수가 이야기한 6개월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살아있었다. 하지만 모든 계절을 한 번 더 겪고, 일 년 차를 지나는 무렵부터 강아지가 좀 힘들어했다. 누워있는 시간이 눈에 띄게 길어졌고 대소변 실수가 잦아졌다. 여기저기서 대변과 소변이 발견되었지만 그마저도 범위가 점점 줄어가서 늘 자기가 누워있는 담요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소변을 누었다. 



  어느 날은 눈이 많이 왔다. 지숙은 마트에 문화센터에서 일했다. 애기들을 가르치는 강사자리였다. 한 10명 정도의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함께 찰흙 놀이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수업이었다. 수업을 하고 나서 지숙이 장을 보고 마트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서는 한 송이씩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지숙이 집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눈이 펑펑 쏟아졌다. '루미를 데려오던 날도 눈이 많이 왔었는데..' 지숙이 집에 도착했을 때, 루미가 지숙을 힘겹게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지숙은 루미를 보며 소파에 앉아있다가 문득 잠에 들었다. 루미도 그런 지숙과 같이 잠이 들었다. '어우. 몇 시야' 일어났을 무렵엔 벌서 새벽 두 시였다. 루미는 지숙의 옆에 붙어 숨을 쌕쌕이며 잠들어 있었다. 소파에 잘 올라오지 않는 루미가 옆에 붙어있는 것이 조금 의아했다. 지숙이 옆구리에 붙은 루미를 들어 올려 배 위에 놓고 쓰다듬어주었다. 루미가 몇 번 꼬리를 흔들었다. 루미가 밥을 먹지 않았는지 밥그릇이 밥을 줬을 때의 상태와 똑같았다. 사료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캔사료도 말라 붙어있었다. 루미는 밥먹으러 갈 힘이 없는 것이다. 지숙은 조금 슬픈 표정을 지은 채 부엌에서 루미의 캔과 건사료를 섞었다.



  지숙이 루미의 밥을 챙겨서 루미의 앞에 놓아주었을 때 루미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지숙은 루미의 코에 손을 대보고 몸을 만졌다. 강아지는 아무 미동도 없었다. 지숙은 루미를 안아 올렸다. 그 순간, 루미와 함께했던 모든 기억들이 눈앞에 스쳤다. 문득 지숙은 깨달았다. '이 작은 강아지가 내게 참 많은 것을 주었구나.' 지숙은 마지막으로 강아지를 꼭 안으며 말했다. "사랑해. 루미야. 이제 편히 쉬렴." 왠지 루미가 계속 듣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지숙은 몇 번이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아이들이 나왔다. 아이들은 놀란 듯 했다. 지숙이 먼저 아이들에게 양팔을 뻗자 아이들도 지숙에게 다가가 한참동안 서로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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