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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Jul 11. 2024

아니, 내 강아지가 암이라니요.

병원은 4층짜리 건물이었다. 3층에 위치한 내과에서는 밖의 나무들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창밖을 보던 지숙의 눈에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학생들의 무리가 보였다. 



  ‘자전거 타기에 날씨가 참 좋구나. 오랜만에 자전거나 타볼까?’ 지숙이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생각할 무렵 카운터에 있던 직원의 활발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루미 보호자분!” 직원은 지숙이 익숙한지 반쯤 일어서서 지숙을 보며 웃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지숙이 진료실에 들어갔다. 진료실에는 교수가 앉아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젊은 수의사 둘이 루미를 안고 교수 뒤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왔다. 진료실이 보호자에게 속한 공간과 의료진에게 속한 공간을 나누었다. 그리고 중간의 그곳에서 지숙이 루미를 다시 만났다. 루미가 지숙과 세상을 이어주었다.



  지숙을 본 루미가 바둥거렸다. 진료실에 있던 사람들은 루미가 지숙에게 가려고 몸을 흔드는게 귀여워 웃었다. “하영아, 루미가 엄마한테 너무 가고 싶나보다.” 교수가 말했다. 루미를 안고있는 하영은 이십대 초중반 즈음으로 보였다. 곱슬곱슬한 머리를 한가닥으로 묶은 채 은근하게 미소띈 얼굴의 하영을 지숙이  자기 딸을 쳐다보듯 바라보았다. 



  하영이 지숙에게 루미를 건네려 다가왔다. 지숙이 루미를 받아 안자 루미가 “왕!”하고 짖었다. 그리고는 어디갔다 왔냐는듯 주인의 품에 머리를 묻었다. “얘가 왜이래. 우리 루미. 최근에 이렇게 신난 적이 없는데.” 지숙이 루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선생님들이 좋았나보네요.”  지숙이 수의사들을 보며 미소지었다. 하지만 의료진들의 표정은 약간 먹구름 낀듯 불편해보였다.



  교수가 지숙 쪽으로 모니터를 돌리며 말했다. “보호자분, 오늘 검사는 마무리 되었어요.” 그는 한 번 헛기침을 하고 침을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루미, 좋지 못한 소식이 있어요.” 지숙은 아리와 교수를 번갈아보다 예상하지 못한 말에 교수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이 쿵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지숙은 누가 지숙의 머리에 냉수를 끼얹은 듯 서늘함을 느꼈다.



  “루미 어디 아픈가요?” 지숙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루미는 끙끙거리다 이내 지숙의 무릎에 자리를 잡은듯 웅크렸고 그런 강아지를 지숙이 두팔로 껴안듯 받치고 있었다. 교수는 침착한 듯 몇 개의 사진들과 차트를 모니터에 띄우며 지숙에게 보여주었다. 뒤에선 학생들의 몸이 뻣뻣해졌다. 교수가 어렵게 입을 뗐다. "우선 오늘 혈액검사와 세포검사 소견에서 림프종이 발견 되었어요. 보시면 엑스레이에서도 전이가 된 듯한 부분들이 보입니다." 그는 지숙에게 차분하게 설명했다.



  “어머님, 힘드시겠지만..” 교수는 지숙이 들을 준비가 될때까지 기다려줄 작정이었다. 지숙의 눈길이 얌전히 엎드린 강아지의 앞다리로 향했다. 채혈을 한 뒤 붙여놓은 밴드가 보였다. 루미의 푸른 핏줄이 보였다. 핏줄은 너무도 얇았다. 지숙이 루미를 쓰다듬었다. 이 침체된 분위기가 루미의 병이 심각한 것임을 알려주는 듯 했다.



  지숙이 돌연 무언가 결심한 듯 교수를 보았다. “루미는 그럼 얼마나 살 수 있나요.” 지숙의 목소리가 목을 긁었다. 쇠가 바닥을 긁는 듯 지숙의 목소리가 거칠었다. 



  “우선 추가 검사를 해보고 있어요. 하지만 전이 소견이 있고 강아지가 고령이라 육개월 정도 보고 있습니다.” 교수가 담담하게 말했다. 지숙은 자신이 앉아있는 동그랗고 왠지 불편한 의자가 바닥으로 꺼지는 듯 느껴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루미에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지숙에게 뻗어왔다. ‘아. 아마도 나때문일거야.’ 지숙이 자책했다. 그녀의 죽음이 개에게 옮아간것은 아닐까. 지숙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곧 떨어질 듯한 물방울은 각막 앞을 가득 채웠다. 뒤에 서있던 하영이 지숙에게 티슈 한 장을 건넸다. “눈물이 마른 줄 알았는데 울음이 나네요.” 어느새 하영은 그녀 앞에 그냥 휴지곽을 가져다놓고 교수의 뒤에 서있었다.  



  “선생님.” 지숙이 다음말을 떼기 위해 용을 썼다. 지숙은 루미의 죽음을 지켜볼 용기가 없었다. 아기였던 루미를 데리고 오자고 떼쓰던 아이들의 모습과 상준과 지숙의 모습이 그려졌다. 루미는 집에오고나서도 금방 적응했고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녀석은 어딜가나 예쁜 강아지라는 칭찬을 먹고 자랐다. 다 자라 어른이 되고나서도 루미는 계속 아기였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아기 강아지. 사실은 이미 어른에 어쩌면 노견에 가까워진 개였어도 지숙은 루미가 아기 같았다. 



  지숙이 무너질 듯 말했다. “어짜피 곧 죽을거라면 오늘 보내고 갈게요.” 진료실의 공기가 일순 얼어붙었다. 뒤에 서있던 학생들도 충격을 받은 듯 낯빛이 질렸다. 지숙이 루미를 끌어안았다. 강아지는 영문을 모른채 안겨있었고 지숙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얘 죽어가는 걸 어떻게 봐요.” 지숙은 말을 꺼내고 나서도 울음이 그쳐지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이런 말을 뱉어버린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자신은 루미에게 이런저런 못난 모습을 보여왔지만 루미의 아픈 모습은 보고 싶지 않은 자신이 미웠다. 지숙이 루미를 놓칠 것 같자 어느새 다가온 하영이 루미를 받아들었다. 지숙은 상체를 앞으로 숙여 얼굴을 무릎쪽에 댄 채 한참을 꺽꺽 울었다. 지숙이 우는 동안 카운터의 직원이 진료실 문의 투명한 유리 창 사이로 안쪽의 상황을 한 번 살피고 갔다. 어느새 하영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지숙이 잠잠해졌다. 짐짓 조금 가라앉은 듯 보였지만 그녀의 몸은 계속해서 떨리고 있었다. 의료진들은 혹시 그녀가 쓰러질까봐 조마조마했다. 지숙이 휴지로 눈물을 닦고 감정을 가라앉힌 듯 말했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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