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에 갑자기 구석에 처박아둔 스페인어 교재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사 온 교재인데 총 50주 차 정도의 분량으로 나누어진 학습지였다. 이 학습지는 2020년 한창 코로나로 자가격리를 했다가 출근했다가 반복하던 시절에 통근 시간이 줄었으니 뭐라도 공부해 보자 하고 큰 맘먹고 샀던 교재이다. 미리 녹화된 강의는 평생들을 수 있고 학습지는 일주일에 한 권씩 끝내면 된다. 학습지를 모두 마무리하면 스페인어 공인시험을 치를 수 있을 정도로 내 스페인어 실력이 좋아진다고 한다. 꾸역꾸역 미국까지 들고 온 게 무색하게 앞쪽 몇 주차의 교재만 너덜해지고 대부분은 아주 새거 같이 내 책장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Hola, Como estas? 이번 주에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디엠을 보낸다. 콜롬비아 출신인 친구는 이것저것 표현을 알려준다. 내가 이 친구에게 스페인어 배울 거라고 말한 지도 어느덧 몇 년이 지났지만. 내 스페인어 실력은 Muy Feliz! Muy Mal! (아주 신난다! 아주 별로다!) 정도 수준에 멈춰있다. 당연하다. 공부 안 하고 스페인어를 쓰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도 아니니.
한 언어를 초급 수준으로 배우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할까? 미국 국무부 외교관 대상연구에 따르면 영어 사용자가 친숙한 언어인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약 24주 간 600교시의 수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영어 사용자가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그 2배에서 4배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이들을 대상으로 한 언어 교육은 몰입해서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언어를 배우는 것으로 수개월에서 1년 이내에 언어를 배우기도 한다.
일상적인 대화를 위해서도 150에서 300시간 정도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니. 대충 배우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또는 큰돈 써서 구매한 방대한 학습지만으로는 언어가 늘지 않는다. "요즘 바빠서", "이따가 다시", "다음 학기에" 같은 핑계를 대면서 미뤄왔던 것들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이 글을 쓰면서도 책상에 꺼내놓은 10주 차 교재. 이번에는 20주 차까지 가는 걸 목표로 해야겠다. 한 발짝 뗀 기분이 벌써 드는 건 착각이겠지? 여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