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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도까지 올라간 날씨에 꿈떡 놀랐다.

이상기후를 체감한 하루

by 서민혜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갑자기 눈이 안 좋아진 이후로 쭉 안경을 써왔다. 안경을 아주 막 다루며 살아왔던 나는 운동을 심하게 하거나 날아오는 축구공에 박치기를 했다거나 뭐 그런 강한 물리적인 충격이 동반되어야만 안경다리가 부러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밖이 너무 더운 주말에 점심이라도 나가서 먹자고 남편과 같이 나갔다 왔었다. 짧은 외출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더위를 먹었는지 두통이 좀 생겼다. 낮에 온도가 34도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쉬고 있었다. 어깨 쪽에서 빠각하는 소리가 났고 그게 안경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Capture.JPG By The Weather Channel. https://weather.com/


최근 나는 반투명한 그 안경테를 싫어하고 있긴 했다. 테니스를 칠 때 특히나 서브를 할 때 하늘로 날아오는 공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 때면 투명한 안경테 때문에 갑작스러운 굴절이 생겨버려서 주춤하고는 했다. 다 안경 때문이라는 탓을 하고 싶었는지도. 그렇게 좀 미워하던 안경다리가 뽀각 부러지자 생활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뭔가 조금만 손보면 될 것 같은데 안경다리의 나사는 머리가 너무 작아서 집에 있는 드라이버로는 고칠 수가 없었다. 또 미국에서 안경을 사려면 처방전을 받고 안경집에 가서 안경테를 고르고 안경이 나올 때까지 또 며칠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지난번 남편이 안경을 맞출 때 보니 우리 보험으로 200달러 정도 안경 값이 지원된다고 해서 안심했지만 안경집에 갔더니 안경 가격이 300달러부터 시작이었다.


집엔 웬일인지 본드도 없고 쓸만한 테이프도 보이지 않는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안경이 필요했고 안경의 각진 부분을 포일로 감았다. 응급조치 치고는 꽤 그럴듯하다. 더워지는 여름이나 변해가는 기후에 대해서 체감한 건 오랜만이라 생각나는 자료들을 좀 찾아보고 아래에 붙인다.





시카고는 추운 겨울로 유명하다. 여름에도 날씨는 꽤나 선선한 편이었는데 유독 더운 요 며칠은 한국 보다, 로스 앤젤레스 같은 서부지역보다 거의 10도는 높은 것 같다. 더위가 시작될 무렵 테니스를 치다가 너무 덥고 숨이 차서 부랴부랴 집에 들어왔었다. 친구가 예전에 시카고에서 온열질환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와닿았다. 이렇게 더울 줄 몰랐으니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사람들이 대비가 안되어있었을 것 같다.


Heat_Wave.jpg 상층의 고기압이 열을 지표면에 가두면서 폭염이 발생한다. 미국의 사례. By U. S. National Weather Service/National Ocean Service


1995 Chicago Heat Wave라는 문서에서 다루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5일 동안 45도까지 온도가 올라갔고 지역의 노인들이 피해를 많이 봤다. 총 739명이 사망했다고 하니 일종의 재난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이 사건에서 환경적 인종차별에 대해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시카고 폭염 당시에 시카고 인구 집단 간 극심한 사망률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카고 폭염 사망자 중 흑인 시민들의 비율이 백인 시민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사망하였고 이는 단순히 가난한 지역에서 사망률이 높은 것으로 설명되지는 않았다. 적절한 사전 경고의 부재와 기존 냉방 시설의 비효율적인 활용이 빈곤층에게 큰 피해를 주었고 가장 가난한 지역에 큰 피해를 입혔다.


작년 여름에 로스 앤젤레스의 지역별 여름철 평균 온도에 대해서 조사한 자료를 본 적 있다. 부유층이 많이 거주하는 베벌리 힐스와 빈곤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온도 차이가 굉장히 컸다.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녹지가 풍부한 부유층의 동네와 콘크리트로 덮인 마을이 견뎌야 하는 여름은 크게 차이가 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부유한 지역은 나무가 공원이 많아서 증발과 냉각 효과가 뛰어나고 녹지가 풍부한 반면에 저소득 지역은 나무와 그늘이 부족하고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많아 훨씬 더 뜨거워진다고 한다. 이 연구에서는 빈곤지역이 최고 36°F 즉 20°C까지 온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관찰했다 (Yi Yin et al.)


로스 앤젤레스의 주정부에서 일하던 한 친구와 이 이야기를 한 적 있다. 도시계획이나 건설관련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는 그 친구도 이 사실에 대해서는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나 실제로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부자 동네에서는 세금을 많이 내고 가난한 동네에서는 아니기도 하고 공공시설이나 아파트들을 지어놓으면 거기서 사고가 많이 일어나서 할렘화 되어버리기도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Capture2.JPG by Y. Yin and article "Low-Income Areas Experience Hotter Temperatures in LA County"



내가 견뎌야 하는 여름과 다른 이들이 견뎌야 하는 여름이 다르다는 점은 어떤 시사점을 줄까? 도시의 녹지를 보전하고 나무 그늘을 만들어주고, 겨울에 따뜻한 버스 정류장의 의자처럼 냉방시설이 되어있는 버스정류장이 있으면 될까? 더우면 집에서 에어컨 틀고 쉬는 여름을 누군가는 넘기지 못하고 앓거나 세상을 떠난다. 같은 여름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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