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돈보다 마음을 교환하는 곳,

호주의 수확물 나눔(Produce Swap)

by 진그림
수확물 나눔모임/ photo by Jin

호주의 어느 작은 동네를 주말에 걷다 보면, 운이 좋다면 공원이나 커뮤니티 센터 앞마당에 사람들이 바구니를 들고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잘 익은 토마토, 직접 기른 허브, 텃밭에서 갓 뽑아낸 당근, 그리고 집에서 구운 따끈한 머핀까지—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자리, 바로 수확물 나눔(produce swap)이라는 모임이다.

사진출처/페이스북,Matcham produce swap group

직접 기른 수확물을 "나눔" 하며 교류하는 호주식 "마실문화"라고 보면 된다. 내가 사는 곳은 외곽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과일나무를 키우고 텃밭을 가꾼다. 나 또한 외곽이주의 이유 중의 하나가 '텃밭 만들기' 였으니까. 그래서인지 이런 모임을 하는 곳이 내가 사는 지역엔 서너 곳이 있다.


내가 주로 가는 곳은 마챰(Matcham)이라는 곳인데, 매달 둘째 일요일에 열린다. 오전 10시. 사람들이 정성껏 키운 채소와 과일, 혹은 손수 만든 잼등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아는 얼굴들은 서로 안부를 전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어떤 이들은 천천히 테이블 위에 놓이는 다양한 채소나 꽃들을 구경한다. 이곳에는 거래가 없다. 대신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주는 마음과 각자에게 꼭 필요한 것을 감사한 마음들만 오간다. 요즘 같은 시대에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나눠주고 또 감사함으로 받는 모임이 있다는 이 사실만으로도 너무 정답고 훈훈해진다.


사진출처/페이스북,Long Jetty produce swap group

무엇보다도 이 수확물 나눔(produce swap)의 매력은 ‘예상치 못한 발견’에 있다. 평소 마트에서는 잘 만나지 못하는 희귀한 허브, 채소, 모종과 씨앗 혹은 누군가의 특별한 레시피로 만든 잼을 만나게 되면, 그날은 보물을 얻은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취향대로 키우고 있는 작물 덕분에, 한 테이블 위에서 세계의 맛과 향이 만나는 순간도 경험할 수 있다.


아, 이곳에서는 꼭 텃밭이 있지 않아도 누구나에게 열려있다. 대신 자율적으로 도내이션을 고 참여해서 나눔을 받아갈 수도 있다. 또 텃밭고수님들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받기도 한다. 처음 외곽으로 이사 와서 텃밭에 대해 초보였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텃밭베란다에서 키운 바질 한 줌, 과일이 너무 많이 열려 혼자 다 먹기 어려운 레몬 몇 개, 심지어는 정원에 넘쳐나는 로즈메리 한 줄기라도 다 환영받는다. 중요한 것은 ‘물건의 양이나 값어치’가 아니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니까.


여행자로서 produce swap에 참여한다면, 단순히 호주의 시장을 둘러보는 경험을 넘어 현지인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특별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 자리에서 나눈 대화는 새로운 친구로 이어질 수도 있고, 작은 허브 묶음 하나가 여행의 기억을 향기롭게 오래 남겨줄 수도 있을 테니까.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발걸음을 옮겨보시길 바란다. 바구니 속 소박한 나눔이 어떻게 마음을 풍성하게 바꿀 수 있는지 직접 느껴볼 수 있을 테니까.

keyword
이전 05화알려지지 않아 더 소중한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