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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 Jul 28. 2021

무엇이 나를 퇴사로 이끌었을까

욕 안 먹는 팀장은 없다. 


퇴사 직전에야 깨달았다. 욕 안 먹는 팀장은 없다. 새로운 팀에 배치받고 회사 동기에게 신나서 말한 적이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 팀장은 말이 잘 통해서 좋아요.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팀장이 없었어요. 우리 팀은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어요.  


동기는 되물었다. 욕 안 먹는 팀장도 있어요?


있을 줄 알았지. 팀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될 즈음엔 나도 팀장을 열심히 욕하고 있었다. 일 처리가 별로야. 남을 너무 배려 안 해. 어쩌고저쩌고. 생각해 보면 팀장은 어떻게든 욕을 먹게 되어 있다. 


팀장으로서 일을 잘하려면 팀원을 잘 써먹어야 하고, 팀원을 잘 써먹으려면 일을 많이 주고 결과를 요구해야 한다. 결과가 잘 나오면 팀장은 윗사람에게 칭찬받는다. 칭찬받는 팀장은 일을 더 많이 받아온다. 팀원들은 일이 많으면 짜증 나서 팀장을 욕한다. 


반대로 팀장이 일을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팀장이 일을 못하면 팀원을 잘 못 써먹는다. 팀원을 잘 못 써먹으면 일이 잘 안 돌아가고, 일이 잘 안 돌아가면 결국 팀원이 다 수습한다. 팀원들은 일을 수습하면서 짜증이 나서 팀장을 욕한다. 


그래서 결국 팀장은 어떻게든 욕을 먹게 되어 있다. 욕을 더 많이 먹냐, 적게 먹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러 명의 팀장을 겪으면서 내가 팀장이 되면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라고 적어 둔 리스트가 있는데, 그 리스트를 바이블처럼 믿고 행동했어도 아마 또 다른 방식으로 욕을 먹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에 말이 잘 통하는 줄 알았던 팀장은 같이 일할수록 짜증 나는 사람이 되었다. 열심히 일하면 일을 더 시키고, 일을 시켜서 짜증이 나기 시작하니 뭘 해도 미워 보이고, 미워 보이다가 결국 이 사람 밑에서는 일을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이 사람의 일하는 방식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퇴사의 결정적인 이유는 팀장 때문이 아니었다. 팀장에 대한 분노는 당시의 상황만 지나가면 사그라든다.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도 눈앞에서 보이지 않으면 금세 괜찮아진다. 아마 감정에 대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합리화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건 이 사람과 함께 계속 일을 해야 할 텐데 이 사람을 계속해서 미워하면 내가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팀장 때문은 아닌 게 분명한데, 진짜로 나를 퇴사로 이끈 것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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