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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 Jul 23. 2021

퇴사하면 하고 싶은 것

아직 좋아하는 일은 찾지 못했지만, 가장 먼저 해 보고 싶은 일 정도는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해 보고 싶은 일은 출근 시간에 회사 가는 길과 반대편으로 지하철을 타는 일이다. 


사람이 북적이는 시간에 회사 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지하철을 타고 한없이 가 보고 싶다. 매일 아침 회사 방향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지금 이 순간 반대편으로 지하철을 타고 떠나면 어떨까 상상을 하고는 했다. 


누군가 나에게 전화를 할까? 전화가 온다면 무시하고 계속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할까? 이런 잡스러운 상상들. 회사에 무단결근하면 큰일이 아면 아닐까? 


대학 새내기 때는 인천에서 서울까지 통학을 했었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한 번도 결석을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대학에서는 수업을 듣는 것이 자기 선택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1호선을 타고 신도림까지 갔다가 갑자기 반대편으로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선택으로 처음 해 본 일탈 같은 느낌이 들어서 짜릿하게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 학기의 학점은 거의 학고 수준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만약 회사 다닐 때 지하철을 반대로 타고 훌쩍 떠났다고 해도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 의외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한 번 무단으로 결석했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학원을 다닐 때는 과제가 정말 정말 많았다. 다섯 명이 듣는 수업에서 내가 준비한 발표문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날이 있었다. 내가 발표를 준비하지 않으면 세 시간 동안의 수업이 펑크가 나는 상황이었다. 밤새 발표 준비를 했는데 아침 여섯 시에도 발표문을 완성하지 못했다. 해가 밝아오는데 점점 시간에 맞춰 발표문을 만들 자신이 없었고, 엉망인 발표문을 들고 수업에 들어갈 용기도 없었다. 아무래도 도망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핸드폰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올 줄 알았는데, 정말 편하게 푹 잤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렇게 푹 잠든 적이 오랜만일 정도로. 저녁나절에 일어나 핸드폰을 켜 보니 같이 수업 듣는 선배의 전화 한 통만 와 있었고, 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발표인 수업에 빠지면 교수님한테 찍히고, 대학원에서 짤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전화 한 통이 전부였다니. 그 수업은 그냥 교수님이 진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오지 않으니 아팠겠거니 했다고 한다.    


회사라는 틀에 갇혀 있다 보면 두려움이 많아진다. 사유 없이 연차를 쓰면 앞으로의 회사 생활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두렵고, 결근을 하면 회사에서 짤릴 것만 같다. 누가 제제하지 않아도 으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벽에 갇혀 버린다. 


그런 마음의 벽에 갇혀 매년 연차를 스무 개씩 허공에 버리던 사람들도 있다. 마음의 벽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져서 쉽게 부수기 어려워진다. 


아마 무단결근을 하고 지하철을 반대로 탔다고 하더라도 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냥 사정이 있었겠거니 하거나 아팠겠거니 할 테다. 회사 사람들은 잠깐 궁금해하더라도 삼십 분만 지나도 내가 결근한 사실도 잊어버렸으리라. 


퇴직하고 지하철을 반대편으로 타는 일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회사를 다니던 상황에서, 회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서 지하철을 반대편으로 타고 싶었던 일이었던 것일 테니 말이다. 그래도 꼭 한 번 해 봐야겠다. 회사 다닐 때는 깨지 못했던 나의 마음의 벽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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