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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 Aug 02. 2021

미움에 대한 기억

회사 생활을 돌이켜 보면 즐거움에 대한 기억보다 미움에 대한 기억이 월등하게 많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기억은 금세 사라지지만, 미운 기억은 가슴속 깊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움은 사람에서 비롯된다. 업무가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는 없지만, 사람은 사람은 공격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남을 공격하는지 인지하면서 공격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남을 공격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공격한다. 두 놈 다 나쁜 놈이지만 인지하지도 못하면서 남을 공격하는 놈이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남을 공격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은 일말의 죄책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부서가 재편되면서 나를 비롯한 몇 명이 새로운 팀으로 이동했다. 새로 이동한 팀은 꽤 오랫동안 하나의 팀으로 있었고, 그 팀에서 나만 굴러온 돌이었다. 프로젝트 초반, 나는 당연히 내가 하던 방식으로 일을 했고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팀원 중 이인자?로 여겨지는 사람이 팀 전체를 소집했다. 내가 한 일의 결과물을 가져와서 팀원 전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비난했다. 나를 일 못하는 사람 취급을 하면서 분위기를 주도했다. 인신 공격성 발언도 있었고, 비꼬는 말들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보다 나를 일 못하는 사람 취급한 게 가장 싫었다. 


그날 집에 오는 길에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또 화가 나는 부분은 내가 그렇게 모욕을 당하는 그 자리에서 한 마디도 받아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참이나 늦은 뒤에야 받아칠 말들이 생각이 났다. 집에 오는 길에 대화 하나하나를 곱씹어 보니 다 받아칠 수 있던 말들이었다. 내가 좀 더 당당했다면 한 마디도 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더라도 내가 그 말들을 입 밖으로 낼 수 있었을까도 싶다. 다시는 그 사람과 대화하지 않으리라고, 다시는 일 이외의 부분에서 엮이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는데, 그 사람이 다시 웃으면서 말을 걸었을 때 나도 웃으면서 대답을 해 버렸다. 나는 그때 정말로 생각했다. 내가 왜 웃었을까. 내 마음에 무엇이 있길래 속도 없이 웃으면서 대답까지 했을까. 


아마 어떤 미련이었던 것 같다. 내가 그때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면 망치는 사회적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감정대로 대꾸하면 나 때문에 부서 분위기를 망치고 앞으로 회사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 복잡한 계산보다 더 쉽게 설명 가능한 대답이 있다. 인생에서 반항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불편한 것이 있어도 나만 참으면 일이 잘 돌아가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 본 경험이 있었다면, 그래서 부당한 권위에도 맞설 수 있는 힘이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상하지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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