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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 Aug 09. 2021

기대와 현실의 괴리감

퇴사를 하려니 온갖 일과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른다.  입사를 처음 했을 때, 고생 끝에 취직을 해서 회사에 대한 기대가 컸다. 회사라고 하면 양복과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가득하고, 체계적이고 합리적이며,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공간일 것이라고 혼자 상상했다. 


첫날 양복과 넥타이를 입고, 구두까지 신고 출근했던 나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반팔을 입은 사람도 있고, 후드티를 입은 사람도 있었던 회사에서 정말 잘 차려입은 사람은 셔츠를 입은 정도였다. 그런 회사에서 한여름에 양복 정장을 입고 갔으니 당연히 웃길만하다. 아니, 그래도 복장을 어떻게 입을지는 회사에서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들이 양복을 입는지 아닌지 내가 알게 뭐람. 


입사가 결정되고, 회사에 출근하기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나의 마지막 백수 생활 2주를 어떻게 하면 잘 보낼까 고민하던 중에, 혼자서 제주도 여행을 떠나 보기로 했다. 나는 어디 가서 항상 여행이 취미라고 말할 정도로 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혼자서 떠나 본 여행은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여행하면 친구랑 싸울 일도 없고, 나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겠다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을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특별한 일정도 짜지 않았고, 혼자 한라산 정도만 올라가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다니기로 결정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혼자 누워 있던 첫날이 생각난다. 제주 공항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너무 할 게 없어서 스마트폰을 보다가 잠들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상상했던 게스트하우스는  다양한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술도 먹고, 자신의 인생 이야기도 나누고 그런 모습이었는데 현실을 그렇지가 않았다. 그런 모습의 게스트하우스를 즐기려면 내가 그런 친구를 만들어야 했고, 내가 그렇게 활발한 사람이어야 했다. 


쓸쓸하게 일어난 다음날 아침, 혼자서 한라산을 정상까지 등반하고 서귀포시로 넘어갔고 서귀포시에서도 올레길을 조금 걷다가 돌아와서 숙소에서 잠들었다. 친구와의 대화가 없이 혼자 걷는 올레길은 심심하고, 혼자서는 3-4인용 해물찜도 못 먹는다. 1인분으로 먹을 수 있는 식당만 찾아다녀야 한다. 결정적으로 혼자 먹으면 어떤 진수성찬을 먹어도 맛이 없더라.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친구와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외롭게 제주도를 돌아다니다가 결국 친구를 불러서 나머지 이틀을 보냈다. 이틀 동안 친구와 함께 놀았던 제주도는 즐거웠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생각했다. 기대와 현실은 다르다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평소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으면 혼자 여행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또 반대로 혼자 제주도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혼자 떠나는 여행에 대한 기대를 평생 품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다 경험해 봐야 아는 것들이다. 


회사 생활에 대한 기대도 회사를 다녀 보니 환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는 조직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체계 없이 어떻게든 굴러가고 있는 게 회사이다. 기업이라고 하면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움직일 것 같지만, 딱히 이익을 위해 운영되지도 않는다. 


때로는 이익에 반하더라도 회사 정치에 따라 움직이기도 하고, 기업 목표와 다른 결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비합리적이고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경영진 마음대로 하는 경우도 있다.  


퇴사 이후의 생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퇴사 이전의 나는 퇴사하면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쉬면 기분이 좋을 것 같은 환상이 있다. 그런데 막상 시간이 많으면 내가 기대한 만큼 엄청난 자유가 있지도 않을 것이고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이렇게 기대를 하나 내려놓고 나면 퇴사 이후의 나의 삶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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