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Days Of Summer In Canada17

17장. 이별은 또 다른 시작

by 김지유

17장. 이별은 또 다른 시작


팬데믹 터지기 직전,
선물처럼 내게 다가와 준 두 사람이 있었다.


학교에서 유일한 한국인 클래스메이트.
그리고 다섯 번째 집의 룸메이트.
나에겐 언니이자 형부 같았고, 무엇보다 정신적 지주였던 두 분.


코로나 터지고, 학교 문이 닫았을 때 그분들은 나에게 김치를 만들어 가져다주시기도 했고, 같이 장도 보고 커피도 마시며 나의 모든 고민 상담을 해주시던 밴쿠버 가족이자, 은인이었다.


그 소중한 시간들이 흘러

두 분은 1년간의 밴쿠버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출국 전날, 마지막으로 사주신 저녁 자리에서
나는 애써 밝은 얼굴을 지었다.


“선생님, 금방 뵈어요. 한국에서 꼭 봬요.”

씩씩하게 말했지만
속으론 알고 있었다.
이런 이별엔 ‘금방’이란 게 없다는 걸.



그분들이 집을 떠나던 날.
나는 배웅을 다녀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방 문을 닫는 순간, 감정이 쏟아졌다.


혼자 앉아, 오전 내내 소리 내어 울었다.


다른 룸메들이 내 우는 소리를 들었는지 말았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다시,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밴쿠버에서 누군가와 진심으로 가까워진다는 건
언젠가는 반드시 이별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날 밤, 선생님들이 떠난 집을 정리하다 말고
나는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아
선생님들이 더 그리웠다.


선생님이 떠나기 전 내게 남긴 마지막 편지를 다시 펼쳤다.


"지유야, 너는 어디서든 잘할 사람이야.
우리도 너처럼 용감하게 살고 싶다고,
늘 얘기했어."


그 한 줄이, 가슴을 울렸다.


며칠이 지나고도 마음은 여전히 허전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빠르게
워크퍼밋 승인 메일이 도착했다.

어쩌면 이 타이밍도,
떠나는 이들이 남기고 간 작은 용기였는지도 몰랐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오전엔 카페에서 일하고,
오후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밤엔 글을 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새벽빛이 푸르스름하게 번지는 거리.
유니폼 단추를 채우며
나는 거울 앞에 서서 혼잣말을 했다.


“내가… 여기서 일을 하러 나가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 마음도 단단하게 묶이는 것 같았다.


검은 앞치마.
바리스타 유니폼은
한국에서의 나와는 전혀 다른 하루를 입고 있었다.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약 3개월.
시간은 짧았고, 해야 할 일은 많았다.
하루하루가 빠듯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았다.

지난겨울처럼 절망만 가득했던 시간은 아니었으니까.


“그래, 이게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지금의 나는 나쁘지 않다.”


생전 처음해 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커피 머신 앞 손놀림은 조금 익숙해졌지만,
영어로 들어오는 까다로운 주문은 어려웠고
실수도 잦았다.


“Sorry, my bad!”


억지로 웃어넘기면서도
속으론 자꾸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어휴, 그냥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도대체 왜 이렇게 요청사항이 많아.... 주문 좀 심플하게 해라'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자신감이 바닥을 치던 어느 날

나보다 어린 동료가 내게 말했다.


“Jiyoo, you always smile.
I like working with you.”

그 말 한마디가
그날 하루를 버티게 해 줬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이곳의 리듬에 스며들고 있었다.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
퇴근길에 보던 붉은 노을,
주말이면 앉아 있던 조용한 도서관.


특별한 건 없었지만
조금씩, 익숙함이 생겨나고 있었다.



2021년 4월 18일
Dear diary

나는 잘할 수 있어.
잘하고 있어.
혼자서도, 씩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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