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두 번째 봄.
18장. 두 번째 봄.
어느 날, 룸메이트 한 명이 도움을 청했다.
“지유 언니, 제 이력서 좀 봐줄 수 있어요?”
처음엔 ‘내 일도 바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조용히 , 그녀 옆에 앉았다.
“좋아. 같이 보자.”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조언을 하고, 포맷을 정리해 주고, 첨삭까지 해주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깨달았다.
그게 꽤 오랜만의 성취감이라는 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그 작은 연결이, 다시 나를 살게 했다.
***
봄은 다시 찾아왔다.
2021년 버전으로.
1년 넘게 굳게 닫혀 있던 도서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1년 전엔 당연했던 그 자리에 다시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다시 책을 펴고 앉았다.
책상이 낯설 정도로 조용했다.
익숙했던 풍경이 이렇게 그리운 것인 줄,
그땐 몰랐다.
거리엔 또다시 벚꽃이 피었고,
나는 문득 1년 전 부활절을 떠올렸다.
갑작스러운 안구 염증, 백내장 증세.
불 꺼진 병원 철문 앞에 앉아 있던 그날.
진료를 마치고 길에 주저앉아 목놓아 엉엉 울던 그날.
생소한 진료소의 냄새와 회색빛 부활절 햇살.
그 모든 기억이 코끝을 타고 다시 스며들었다.
‘금방 돌아갈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두 번째 부활절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
지금의 나는
펜을 부러뜨릴 기세로 TESOL 추가과정 과제를 하고,
컵라면을 먹어 가며 키보드를 부술 기세로 두드리며 리포트 제출에 열심인 밤을 보낸다.
그러다 문득,
1년 전 인천공항에서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뛰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9개월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참, 인생은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네.’
시간은 그렇게 흘렀고,
마침내 시험 날짜가 다가왔다.
코로나로 시험이 몇 차례 더 연기됐지만,
이제는 드디어
‘끝을 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
시험 당일.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장에 들어섰다.
긴장이 온몸에 퍼졌지만,
나는 이 시험을 잘 통과해야만 한다는 마음이
무게처럼 가슴에 앉아 있었다.
‘잘할 거야. 드디어 그날이야.
내가 그토록 바라던 그날.’
내가 겪어온 모든 시간들이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험 역시,
그 모든 시간을 증명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시험은 4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이상하게도 나는—
단 한 번도 시계를 보지 않았다.
시계 볼 틈도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문제를 풀고
답안지를 작성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를 끝낸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