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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Apr 16. 2021

세입자(4)

단편소설

 주인 여자는 과연 토요일에 집을 보러 왔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 옆으로는 두 명의 나이가 지긋한 여자 둘이 따라 들어왔다. 세 명은 얼굴형이나 몸매가 비슷했다. 얼핏 보기에도 한 명은 주인 여자의 엄마인 것 같았고 다른 한 명은 이모인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세 명의 방문객을 맞은 지윤은 당황했다. 아이도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안녕하세요' 하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겨우 인사를 했다. 


 세 명은 외모도 비슷했고 호리호리한 것도 비슷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세 명이 모두 잔뜩 옷을 차려 입고 나타난 것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두 명의 여인은 모피 코트를 입고 있었고 주인 여자는 모직 코트와 여우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그들이 지윤의 기를 죽이려고 일부러 그렇게 입고 나타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윤은 세 여자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완전히 기가 죽었다. 그리고 무릎이 툭 튀어나온 츄리닝 차림으로 그들을 맞이한 자신이 왠지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현관을 들어올 때부터 거침이 없었다. 사실 그들은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라기보다는 현장에 들이닥친 경찰관 같았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거침없이 거실 쪽으로 들어왔고 거실을 한 번 훑어보더니 바로 주방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아마 들어오기 전부터 어떤 목표물을 정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주방 바닥의 자국을 발견하더니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 이 정도면 견적이 얼마나 나올까?" " 공사 업체에 연락을 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 " 새로 바닥을 깔면 기존 바닥 색깔하고 같지가 않을 텐데 어떻게 하지?"  그들은 그런 이야기를 서로 떠들어댔고 지윤에게 들으라는 듯이 점점 큰 소리를 냈다. 


 지윤은 겁먹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세 여자의 기세가 어찌나 당당한지 섣불리 말을 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윤은 그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견적이니 공사니 하는 단어를 들으며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세 명의 여자는 그러고도 욕실 문을 열어 보거나 베란다에 나가 보았다. 그러나 주방 바닥을 제외하고는 문제가 될만한 곳이 없었다. 지윤이 매일 쓸고 닦고 정성을 들였으니 오히려 다른 곳은 새 집이라고 해도 될 만큼 깨끗했다. 주인 여자는 나중에 연락을 하겠다고 말했다. 자기가 잘 아는 업체가 있으니 견적을 받아 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지윤은 차라리 후련했다. 창대 부동산 사장이 왔다 간 후로 내내 마음을 졸였는데 차라리 시원하다 싶었다. 돈이 좀 들어도 고쳐 주고 이사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어 사는 죄인처럼 마음을 졸이고 살 바에야 주인 여자가 원하는 대로 고쳐 주고 떳떳하게 이사를 가는 편이 깔끔하다 싶었다. 


  

  그런데 며칠 뒤 지윤은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문자는 짧고 간결했다. 

" 집을 한번 더 봐야 할 것 같네요. 지금 아파트 정문 앞에 와 있으니 연락 바랍니다. "

 지윤은 문자를 보자마자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지윤은 한 손에 열린 지갑을 들고 있었는데 지갑을 놓쳐 버렸다. 지갑은 안에 들어있던 영수증과 카드를 왈칵 토해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인 여자도 지윤이 직장에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회사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집에는 태권도 학원에 다녀온 아이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은 갑자기 또 집을 보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불과 이틀 전에 왔다 가지 않았냐 말이다. 아직 더 확인할 것이 남은 것일까. 지윤은 울고 싶어 졌다. 만약 사무실이 아니라면 정말 울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윤은 침착하게 생각했다. 어디선가 집주인이라고 하더라도 세를 준 집에 들어갈 권리는 없다는 뉴스를 보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나 지윤은 그렇게 강단이 있는 성격이 못되었다. 집 앞에 와서 일방적으로 기다리겠다고 하는 사람을 마냥 세워놓을 만큼 담대한 성격이 아니었다. 게다가 집주인이 벨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면 혼자 집에 있는 아이는 겁을 집어 먹을 것이다. 할 수 없이 지윤은 외출을 신청하고 회사를 나왔다. 


 주인 여자는 현관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샤넬백을 매고 있었다. 주인 여자는 미안하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 생각해 보니까 내가 집을 꼼꼼하게 보지 않은 것 같아요. 다시 확인 좀 할게요. "

 주인 여자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 것인가. 그녀는 이 집에 거대한 비밀이라도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아이는 소파 위에서 콩콩거리고 있었다. 아이는 무겁고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일부러 더 콩콩거리는 중이었다. 주인 여자는 소파를 밀어 보라고 했다. 지윤은 소파를 밀어 보았다. 소파는 크고 무거워서 잘 밀리지 않았다. 바닥은 깨끗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소파를 들이고 나서 몇 년 동안 그 자리에만 있었으니 바닥은 깨끗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 여자는 안방을 보자고 했다. 안방에는 더블침대가 있고 바닥에 전기매트가 깔려 있었다. 1층이라 겨울이면 바닥에서 한기가 올라오기 때문에 매트는 꼭 필요했다. 주인 여자는 매트 아래를 보고 싶다고 했다. 매트는 오랫동안 바닥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바닥과 한 몸처럼 잘 떨어지지 않았다. 지윤은 매트 모서리를 잡고 들어 올려서 바닥을 확인시켜 주었다. 주인 여자는 벽과 바닥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지윤은 모멸감을 느꼈다. 자기의 안방과 소파 밑과 전기 매트 밑까지 다 들춰 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주인 여자의 끝 모를 호기심과 악의적인 상상력에 환멸을 느꼈다. 지윤이 거친 손으로 매트를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자 집주인은 이제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샤넬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그리고 들어올 때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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