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
그녀와 집 앞 산책을 나갔다.
저녁으로 먹었던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치킨이 미처 소화되지 못해 위 속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걷지 않으면 잠을 청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와 나는 동의했다.
걸으면서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와 분노, 몇 년이 쌓여 만들어진 그 농축된 응어리들을, 결국 가슴에 맺혀 한이 되어버린 그 감정들을 쏟아냈다.
그녀는 그때의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했다.
선택의 기로에 서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절대 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나도 심하게 감정이입을 해버린 나머지 몇 일을 내가 마치 그녀의 인생을 산 것과 같이 앓았다. 폭식을 하기도 했고 밤새 악몽을 꾸기도 했고 하루 종일 무기력감에 빠져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렇게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을 쏟아낼 때 그 마음 속 응어리를 모두 받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방향을 잡아 물길을 트고 흘려보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그 감당할 수 없는 깊고 끈적한 감정의 응어리에 내가 잠식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녀는 그녀고
나는 나일 뿐이니까.
나는 나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만큼만 친절하면 된다.
딱 그만큼만.
무엇보다도, 나는 그녀의 인생을 "어찌할 수" 없다.
한 시간 안팎의 밤산책이 끝났다.
그녀는 소화가 다 되었을까?
내 작은 방의 책상에서는 밤하늘의 별과 달이 잘 보인다.
오늘 밤에는 저 하늘의 별을 좀 더 오래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