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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사랑 May 01. 2021

거울

너를 보며 나를 이해한다

우리 둘째는 희한한 녀석이다. 평생 연구해도 매번 신기할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초라한 실력에 주눅 들지 않고 우리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즐긴다. 우리 집 코미디언답게 못생긴 얼굴을 만들고 슬랩스틱 코미디를 하고 웃긴 춤을 추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제 목소리는 엄청 크면서 우리가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화를 냈다며 눈물을 흘린다. 즐겁게 동요를 부르길래 따라 부르면 눈을 부라리며 나만 부를 거니 엄마 너는 부르지 말라고 매섭게 명령한다.

뛰어노는 것을 즐거워하지만 작은 키에 몸 쓰는 것이 영 어설프다. 술래잡기 놀이를 하자면서 막상 술래가 자기를 잡으면 왜 잡냐고 화를 낸다.

그뿐일까. 아침에 일어나면 안방에 거침없이 밀고 들어와 아빠의 뺨을 내리쳐 깨우면서 내가 배고프니 밥을 달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아빠와 노는 것을 좋아하고 아빠를 종 부리듯 이리저리 부리면서도 엄마와 아빠 중 누가 좋냐고 물으면 엄마가 좋다는, 놀랍도록  이기적인 그녀이다.


이렇듯 우리 집에서는 대장 노릇 하는 그녀가 친구들 사이에서는 'YES 걸' 이란다. 무엇을 해도 좋다고 하는 성격 좋은 친구. 우리는 믿을 수가 없다. 자기 멋대로 사는, 관심받기를 즐기는, 이중적인 그녀는 도대체 누구를 닮은 건가 남편과 진지하게 토론을 해본 적도 있다.  


둘째의 외모는 아빠를 쏙 빼닮았다. 또 남편이 어릴 적 동네에서 유명한 개구쟁이에 사고뭉치였기에 남편을 닮은 건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관심받기 좋아하고 본인의 실력과 관련 없이 흥이 많고. 대부분 자기중심적이지만 때로는 타인에게 너그러운. 자기도 목소리가 크면서 큰 소리 내거나 논쟁을 즐기는 사람은 어려워하고. 눈치는 없으면서 타인의 감정 변화에 극도로 예민한 그녀는 나를 똑 닮았다.


나는 열등감으로 괴로웠던 경험이 적다. 외모, 성적, 능력 어느 하나 남들처럼 뛰어난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때로 아쉽긴 했지만 심각하게 불만을 가진 적은 없다. 내  나름의 매력이 있겠지 생각했다.
두 아이를 낳고 예전 같지 않은 몸을 보면서도 힘들게 다이어트를 하느니 지금 내 체형에 맞는 옷을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남편만 나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면 굳이 모든 것을 뜯어고칠 필요가 없지 않나 싶다.


그런데 요즘 나는 나 때문에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고 생활하며 나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더니 점차 실수하는 나를 한심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주 작은 실패도 내 잘못, 내 허물 때문 인 것 같고 또 뒤돌아서면 모든 사람이 나를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늘 다정한 나의 남편조차도 나를 미워하는 것만 같았다.

불만이 있으면서 사이다 마신 듯 상쾌하게 토해내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찮은 척 웃으며 헤어지고 나서 밤새 그 순간을 머릿속에 반복 재생하며 내가 왜 그랬을까,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내가 소심해서 짜증이 났다.

또 어떤 점에서는 놀랍게 무신경하여 상대가 나로 인해 마음이 상한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내가 한심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몸뚱이는 왜 이리 가성비가 떨어지는지. 열심히는 하지만 요령 있게 잘하지 못하니 나의 노력은 티가 나지 않고 늘 허둥대고 무능력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 마음에 들게 나를 바꾸기는 더 힘들었다. 노력해도 잘 되지 않았다. 오히려 경직되기만 할 뿐. 마음에 안 드는 나인데 바꿀 수도 없다니 절망이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엉뚱한 행동을 하여 우리를 웃기고 있던 둘째를 보고 있었다.
이리저리 뛰고 웃으며 나를 웃기는 아이의 엉뚱한 모습이 그저 예뻐서 남편에게 "누굴 닮아 저렇게 엉뚱해?" 했다. 남편이 웃으며 "엄마 닮았지." 답했다.

"그래. 날 닮았지. 나도 어렸을 때 저랬던 것 같아"

대답하다가 내가 거울을 들여다보듯 아이를 통해 내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내 아이를 통해 보는 내 모습은 웃기고 귀여울 뿐이지 모나거나 흉하지 않았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내가 나를 평가하듯 나를 못난 사람이라 여기고 있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너를 어떻게 좋게 보겠어?' 하며 나를 제일 혐오하고 괴롭혔던 것은 바로 나였다.


어쩌다가 스스로 땅굴을 파고 들어가 있었을까? 나는 왜 나를 벌주고 혼내고 있었을까?

나의 귀한 거울을 들여다보며 또 배운다. 너는 사랑스럽다. 그리고 나도 사랑스럽다. 실수하고 잘못하고 넘어질 수 있으나 사과하고 책임을 지고 눈물을 흘리더라도 일어나면 된다. 어떤 사람도 완벽하지 않다. 모두가 불완전한 그대로 세상에 던져졌고 그럼에도 성실하게 삶에 임하고 있다.


우리는 타인에게 후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나라도 나를 아끼고 건강하게 나를 사랑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한다. '넌 별것 아니야' 란 속삭임은 끊임없이 들리지만 잊지 말자. 누구나 반짝이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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