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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sible Kim Nov 16. 2020

신발은 사는 게 아니라 줍는 것

주운 나이키도 아까워, 차마 못 신겠다.

거지도 이런 알뜰한 거지가 없다 싶은 게, 나나 아내나 이따금씩 아파트 분리수거 날이면, 

버려진 신발이며 옷가지들 중에 쓸만한 것들을 추려서 가져오는 일이 종종 있다. 사실 자주. 


한 번은 내가 외투 두 벌에 상당히 멀쩡한 운동화 세 켤레를 줍는 횡재를 한 적이 있다. 

타이어의 트레드로 따지면 잔존율 80% 이상의 신발 밑창 마모도

이쯤 되면 로또 별거 아니다. 


의류수거함이 버젓이 있음에도 분리수거장 한 편에 쌓아 둔 것을 보면 

아마 가져갈 사람 있으면 가져가라고 놓아둔 모양인데,

얼씨구나 "감사합니다." 하는 나.


쌓여 있는 모양새와 사이즈를 보아하니 아마도 같은 사람이 버린 것으로 보였다. 

이런 괜찮은 물건을 버릴 만한 사람의 재력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감탄함과 동시에 

주위에 혹시 보고 있는 사람이 있나 없나 살피는 약간의 쪽팔림. 

그리고 마음속으로

'나는 이 물건들을 줍는 사람이 아니라 이 물건들을 버리러 온 사람입니다.'

라는 말 같지도 않은 등신 같은 망상을 하며-지금 생각해도 참. 


어찌 됐든 나는 집으로 그 것들을 신이 나게 가져왔다.

집에 들어와 그것을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내를 보니 왠지 모르게 서글픈 감정이 드는 것도 찰나. 

내 껀 없냐고 물어보는 아내가 참으로, 뭐랄까. 이건 천생연분이라고 해야 하나.

취향이 비슷해 잘 어울리죠?라고 자랑하고 싶었다만. 갑자기 드는 하나의 상상.


만약 내가 밖에 나가 6만원 짜리 뉴발란스에, 8만원 짜리 아디다스 운동화, 12만원 짜리 나이키 신발을

사가지고 돌아왔을 때 아내의 표정도 보고 싶다는 상상

잠시 화를 내다 침착하게, 영수증 어디 있냐며 묻고는 카드와 함께 내일 환불하러 간다고 하며 한마디

"미친새끼"


욕같은 상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내 거라니? 분리수거장이 당신 옷장이였나? 하는 착각을 하는 것도 잠시, 

내 거 주워오기도 바빴다고 말하는 나였다. 


그렇게 나는 특히나 세 켤레의 신발이 마음에 들었고, 나름의 용도를 설정해 두고 신기로 하였다. 

뉴발란스는 일상용으로,  아디다스는 운동용으로, 그리고 나이키는 신발장에 고이 모셔두었다. 


두 켤레만 신는 것을 본 아내는 왜 나이키는 안 신고 놔두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정말 '진정 아까워서'였다. 

주운 신발이 아까워서 안 신고 신발장에 모시고 있다니, 

아내는 작은 실소와 함께 "너 좀 불쌍하다" 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맞아, 나 불쌍해. 그래도 이건 줍긴 했어도, 내 생애 두 번째 나이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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