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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sible Kim Nov 25. 2020

절대 안 봐주는 아빠 VS 가끔은 져주는 아빠

그래서 제 선택은

스승님의 시작 : 체스를 접하다

살면서 아이가 없었으면 못 해 봤을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 하나가 체스다.


보드게임류를 좋아하는 2학년 아들은

체스에도 흥미를 보였다.


아이는 서점에서 '어린이를 위한 체스 따라잡기' 책을 구입했고

부족한 부분은 유튜브를 보며 스스로 체스를 터득했다.


스승님과의 만남 : 아버지의 스승이 되다

아이는 외동이기에 상대가 필요했다.

체스 규칙을 모르던 나는,

바로 아이(이하 스승님)의 수제자가 되었다.

부럽게도 아내는 바쁘다는 이유로 수제자 탈락.


오목은 재미가 없어 세 판이상 두지 못하고

바둑과 체스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고 앞으로 하고 싶지도 않던 나는,


스승님께서 친히 고르신 유튜브 영상을 시청해야 했고

'어린이를 위한 체스 따라잡기' 책을 매일 읽어야 했다.

주입식 교육의 대가, 우리 스승님


스승님의 가르침 : 한 수 앞을 내다봐라

스승님의 열정과 기다림 끝에 드디어 첫 게임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비등비등했다.

난 기본 규칙을 토대로 스승님의 폰을 한 개, 두 개씩 잡아 나갔다.

덫이었을까? 어쩐지 쉽게 잡히더라.

스승님은 어느샌가 룩, 나이트 등 중요한 기물을 잡기 시작하더니

퀸까지 잡으며 승부는 급격하게 스승님에게 기울어졌다.


그리고 무려 다섯 판을 내리 졌다.


닌 6가지 기물인 나이트, 룩, 퀸, 킹, 비숍, 폰의 기본 움직임은 익혔으나

딱 거기까지 였다. 


스승님은 그런 나를 향해

"아빠, 잘 생각하고 한 수 앞을 예상하고 둬야 돼."

스승님의 의기양양한 표정과 깐족거리는 승리 세리머니는 당연히 추가였다.


스승님의 눈물 : 청출어람에 무릎 꿇다

다음날 저녁, 다시 게임이 예정돼 있었다.

그저 규칙만 익혀 스승님과 시간을 때워야겠다는 안이한 생각을 고쳐 먹었다.

체스에는 기본적인 움직임 이외에 공식과 같은 일정한 게임 진행 패턴이 있다. 상대방이 그 패턴에 걸려들기만 한다면 승리에 가까워진다. 추가로 캐슬링, 앙파상, 승격 규칙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승리는 내 것이 된다.


"스승님~ 너무 잘하세요. 좀 봐주세요."


스승님의 방심을 노린 립서비스로 게임은 시작됐다.


초반 중앙을 폰으로 먼저 선점한다. 비숍과 퀸의 대각선 움직임에 이은 나이트의 지속적 전진 및 자리 선점.

룩으로 스승님의 퀸과 킹의 출로를 막고 퀸으로 체크메이트. 마무리. 


전날과 다른 나의 포석에 

스승님은 당황스러운 표정과 대비되는 허장성세의 큰 말투로

"둘째 판은 안 봐준다."며

엄포를 두었지만 결과는 첫 판과 같았다.

초반 비등한 전세가 이어졌으나

막판까지 2 룩을 끝까지 지킨 나의 2 룩 체크메이트. 마무리.


그리고 이어진 셋째 판.

"내가 실수를 해서 그런 거지. 다시 붙어."

새로 각오를 다진 스승님의 의지가 눈물겨웠지만 

이미 제자의 실력은 스승님의 의지로 넘기에는 너무 커진 상태였다. 

현재까지 스코어 3:0


나의 요란한 춤 세리머니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쉽게 네 번째 판은 진행되지 못했다.

이미 스승님의 눈은 눈물이 앞을 가려,

다시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겠지만.


스승님의 변신 : 바둑에 눈뜨다

이후 스승님은 체스 세계에서 잠시 은퇴를 선언하시고

바둑으로의 업종 변경을 선포하셨다.

롯데마트 안 문화센터 목요일 저녁 바둑 기초반을 등록하시고는


"네가 배워서 나중에 아빠도 가르쳐 줘. 나중에 같이 바둑 두게."

라는 나의 말에

지난번 체스의 교훈을 곰곰이 꼽씹으신 듯한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아빠가 알아서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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