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영어는 다르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
그 나라에 스며들기 위해 오늘도 나는 연필을 잡는다.
영국에서 태어나 30년간 영국에서 살다 온 그가 우간다로 여행을 왔다.
그의 이름은 사무엘. 영어가 모국어인 그에게 영어보다 편한 언어는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영어란 이거다’라고 깨닫게 해 준 곳이 바로 이 곳 우간다이다.
사건은 시장에서 발생했다.
우간다가 처음인 사무엘에게 시내를 구경시켜주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한 건장한 청년이 나에게 뛰어와 인사했다. 내가 가르치던 학생이었다. 시장에서 보게되어 너무 반갑다며 뛰어왔다고 말했다.
서로 이야기를 하던 도중, 그의 말이 해석이 되지 않아 사무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가 내 시선을 피하는 게 느껴졌다.
10분쯤 흘렀을까? 멀리서 그 청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빨리 가봐야겠다며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사무엘과 집에 가면서 다시 물어봤다. "사무엘, 아까 이해를 못했는데 무슨 말이었는지 알아?"
사무엘은 자기도 모르겠다며 멋쩍은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어떻게 나는 그보다 영어를 못하는데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귀만 열고 들으면 쉽게 알아듣지 못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발음은 영국식 발음도 섞여있고 아프리카 특유의 발음이 있기 때문에 적응을 해야 한다.
나도 적응을 하는데만 1년이 넘게 걸린 것 같다.
눈을 똑바로 뜨고 사람들의 표정과 입 모양, 제스처를 보고 유추해야 한다.
어느 날 카페에서 멍 때리고 앉아 현지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한 현지인 남자가 내가 계속 쳐다보는 게 궁금했는지 다가와 “나 왜 계속 쳐다봐?”라고 물었다.
그때 난 문장 중에 look이라는 단어와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르치는 제스처를 보고 알아차렸다.
“아니 나는 너희 말을 알아듣기 힘들어서 너희가 말할 때 짓는 표정과 제스처를 보고 알아차릴 수 있을까 해서 계속 보고 있었어. 불편했다면 미안해”
이후 파파고 박사님을 이용해서 그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는 웃으며 500실링(한화 170원) 짜리 빵을 하나 주고 카페를 떠났다. 우간다에서 빵을 하나 주고 간 것은 엄청 큰 선물이다. 이곳에선 보통 한 끼 식사가 500실링이다.
‘나에게 열심히 하라며 빵을 준 거겠지?’라는 생각에 그가 떠난 후에도 1시간 동안 변태같이 다른 사람들을 관찰했다.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토바이끼리 부딪쳐 큰 사고가 났다. 한 사람은 발목이 부러져 뼈가 튀어나와 있었고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이미 도로는 피바다가 되었고 아무도 나서지 않은 채 멀리서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해 내 학생들을 데리고 뛰어갔다.
상태를 보니 병원에 바로 가야 할 것 같아 옆에 서있는 아저씨한테 구급차 좀 불러달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그저 멀뚱멀뚱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3번쯤 말했을 때 아저씨는 내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영어를 못 하는 분이었다.
너무 당황했다. 영어를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말을 걸어봤지만 대부분 아저씨와 똑같은 반응이었다.
그 순간 멀리서 학생들이 뛰어왔고 다행히 전화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큰일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병원에 전화했지만 가까운 거리는 안 간다며 오토바이를 타고 오라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병원 측의 단호함에 어쩔 수 없이 지나가던 택시 기사에게 돈을 주고 보내고 보호자에게 전화를 했다.
벤자민(사고 난 아저씨)의 아내가 받았다.
'벤자민이 사고가 나서 지금 병원에 갔습니다. 바로 병원으로 가시면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아내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학생이 가지 않고 옆에 있어서 대신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사건이 잊힐 때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원래 모르는 전화는 안 받지만 그날따라 받고 싶었다.
'여보세요, 누구신가요?'
'저는 벤자민입니다. 그때 다쳤던'
'몸은 좀 괜찮으세요?'
'네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제가 너무 감사해서 집에 초대를 하고 싶습니다'
'감사하지만 집에는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괜찮아진 것을 알았으니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러고 전화를 끊었다.
어느 날 감자가 너무 먹고 싶어 시장에 나갔다.
시장 입구에서 누가 팔을 잡아끌었다.
"HAN!"(이곳 사람들은 나를 HAN이라 부른다)
벤자민이었다.
아직 아플 텐데 나와서 일을 하고 있었다.
둘이 시장 앞에서 수다를 떨고 벤자민이 감자 10kg를 줬다.
감자 10kg 덕분에 2주간 아침. 점심. 저녁으로 감자만 먹었던 것 같다.
그래도 벤자민의 밝은 표정에 오히려 내 기분이 좋아졌다.
이 날을 2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