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재쌤 Aug 28. 2020

함께 살아가는 세상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도 필요해

나는 혼자 하는 것이 편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결국 찾는 건 사람이었다.
그렇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만,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도 많다는 것을.
자라나는 아이들이 꼭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흑인은 대체로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2년간 가르쳐보니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생 중 운동신경이 좋은 친구가 있는데, 이름은 어거스틴이다.

166cm 키에 마른 체격이며, 농구 덩크슛을 할 정도니.. 이 정도면 서전트 점프는 기본으로 1m가 넘는다.

감이 잘 안 오겠지만 보통 체대 입시시험을 볼 때  서전트 점프 만점 기준이 80cm이다.

(여기서 서전트 점프는 제자리에서 높이 점프하는 것을 말한다)

비교해보면 어마 무시한 차이가 있다.

그래도 내 학생들 대부분이 70cm는 넘었는데 이 친구만 유독 특별했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에 연습을 게을리했다.


방학 때는 학생들 대부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부모님의 일을 돕는다. 남아있는 학생은 5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방학 훈련이 시작되었을 때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온 학생은 뜻밖에도 ‘어거스틴’이었다.

학기 중 출석률이 꼴찌였던 학생이 잘 나오니 대견스러웠다.

다른 아이들이 없는 동안 힘든 훈련을 꿋꿋이 이겨내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꽤나 기대가 되는 학생이었다.

 


문제는 방학이 끝나고부터였다.


방학 때 봤던 성실하고 열정적인 어거스틴은 사라지고 말았다.

예전처럼 지각하거나, 결석 날이 잦아졌고, 온다 해도 대충 하거나 개수를 다 채웠다며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거스틴으로 인해 팀 분위기가 흐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이란 것이 발을 잡아 쉽게 내보낼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상황은 심해지기만 했고 아이들마저 내보내기를 원하고 있었다.


결정의 시기는 빠르게 찾아왔다.

웬일인지 어거스틴이 체육관에 일찍 왔다.

“오늘은 부모님 일을 도우러 가야 해서 훈련 참여를 못할 것 같아요 괜찮나요?”

급한일인가 보다 하고 보내줬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는 길에 익숙한 실루엣이 멀리서 보였다.

안경을 쓰지 않아서 정확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거스틴이 틀림없었다.

부모님 일을 도우러 가기는커녕 학교 구석에서 친구들과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치솟도록 화가 났지만 일단 참고 다음 날을 기다렸다.


다음날, 어거스틴을 만났다

“어제 일은 잘했어? 어디서 했어?”

어거스틴은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네, 어제 집 근처에서 잘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또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더 화가 났다.

사실 그 순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해주길 바랬다.

사실대로 말해줬으면 화가 가라앉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상황은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어제 학교에서 너를 봤는데?”

“저는 학교에 없었는데요. 정말이에요”

어거스틴은 끝까지 아니라고 우겼다.


“그럼 이 사진은 누구야?”

혹시 몰라서 사진을 찍어 놨었다. 그래도 증거를 남겨야 할 것 같아 찍었다.

어거스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가, 잘못을 깨우치기 전까지는 오지 마”라고 말하자마자 어거스틴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네”라고 말한 뒤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1주일이 지나고 체육관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어거스틴이 창문 틈새로 보였다.

인사를 했지만 나는 인사도 받아주지 않았다.

사실 받아주고 싶었지만 아직 잘못을 깨우치지 않은 것 같아 받아 줄 수 없었다.


2주가 지난 뒤 어거스틴이 쭈뼛쭈뼛 체육관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지금 나는 너한테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야. 너의 잘못이 뭔지 알아?”

어거스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친구들한테도 사과를 하고, 친구들이 그 사과를 받아주면 나에게로 와”

울먹이며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앞으로 잘하겠다고 용서를 구하니 아이들은 ‘네가 다시 돌아와서 기뻐’라고 말하며 어거스틴을 껴안아 줬다.

어거스틴은 아이들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만 숙인 채 눈물만 떨구고 있었다.

아마 미안함과 동시에 고마움이 공존해서 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것이 팀이다'를 아이들이 깨달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곳에 와서 태권도 교육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중요한 것도 가르치고 싶었다.

우간다는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생 과정을 배울만큼 학구열이 한국 못지않다.

하지만 인성 교육은 어느 교육과정에도 없다고 한다.

정말 필요한 과목이지만 부모들은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점점 바뀌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나도 아이가 생기고 지금 가지고 있는 마음이 바뀔까 두렵다.   

한국은 ‘어릴 때부터 공부해야 뒤처지지 않는다’라고 생각해 뛰어놀 시기에 영어 단어를 하나 더 외우라고 시킨다.

성적을 위해 사는 인생이라....

나는 이것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부도 정말 중요한 과목 중 하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우간다 학생들이 이것을 배우는 것이 오래 걸리겠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 알려줄 것이다.

언젠가는 우간다의 미래를 책임질 그들을 위해.


이전 05화 당신을 구해줄 사람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