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미터의 황천항해에 올라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by 매트 위 바다

그렇게 시작된 '요가, 필라테스 센터' 개원.

호기롭게 시작된 첫 개인 사업장은 쉬지 않고 달려온 20대의 고군분투를 하늘이 고생했다 다독여주듯 다행히 순풍의 연속이었다. 자리가 없어 원성이 자자할 정도로 매일매일 신규 등록이 넘쳐났다.


하지만 순풍 속 바다 아래는 무엇이 있는지 두려웠다.

회원이 늘고 수업에 만족한다지만 경력과 지식이 턱 없이 부족한 내 수업과 내 운영방식에 자신이 없었던지라 칭찬을 받을수록 무언가 옥죄는듯한 기분이었다.


2등 항해사에서 1등 항해사로 진급 전 진행된 현장 교육을 (Onboard Job Trainnig) 정말 멋진 분께 받았었다. 항상 그는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직급을 이용해 남에게 시키지 말라. 그것은 안전과 직결되는 부분이다'라는 마음과 '선박 모든 곳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부품일지라도 각자 제자리에서 제 역할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신 분이었다.


선박에는 '사관-부원'이라는 직급으로 나뉜다.

우리나라는 보통 해양대학교나 해양수산연수원 등에서 3급 해기사 면허를 취득 후 졸업, 졸업과 동시에 '사관'이라는 직급으로 승선을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주니어 사관 (3등, 2등 해기사)의 현장 경력은 1~3년 남짓, 승선경력이 많은 부원들보다 현장 경력이 없기에 관리직급임에도 불구하고 부원들에게 의존하거나 '할 줄 아는 척' 직급으로 업무를 지시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관리직급은 업무에 있어 사고 예방에 첫 번째, 부득이하게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그 수습을 지휘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내 교육을 담당했던 분은 현장에서 '몸을 사리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고 '여자'라고 특혜를 바란 적은 없지만 더욱이 '여자'라서 현장에서 '도망'가지 않도록 교육하셨다.


그렇게 1등 항해사가 되고 첫 항해가 시작되었을 때 매일매일 24시간 내 모든 감각의 촉수는 바람이면 바람, 파도면 파도, 진동이면 진동으로 향했고 고작 6개월 승선생활 후에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병을 얻고서는 하선하게 되었다.


정석된 커리큘럼 속에서 배웠고 알았고 경험했고 습득했음에도 '왕관'이 주는 '책임'이 크다는 것을 알기에

업을 바꾸고 센터에서 회원들에게 운동을 가르치고 '강사' '원장'이라는 '왕관'에 '회원들의 만족, 칭찬'이라는 화려함은 정석된 커리큘럼 속에서 배우지 않았고 경험하지 못했고 습득이 부족한 '나'는 1등 항해사의 첫 항해 때의 두려움보다 더 큰 두려움 속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망갈 수 없었다.

누구도 반기지 않은 이로(Deviation)였고 갓난아이와 넉넉지 않은 살림을 끌어 투자한 이제 막 시작된 2미터 남짓 매트 위의 항해에서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를 버리고 가족을 외면하고 오로지 '요가 강사' '필라테스 강사' '센터 원장'으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경주마의 안경을 내 눈에 씌었다.


이력서에 칸은 채워지는데 무언가를 위한 관계는 늘어나는데

따뜻한 관계는 차갑게 얼어붙고 나를 끌어주던 바닷속에는 가족 붕괴라는 암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완벽함을 위해 가고 있던 항로로의 더 이상의 항해는 좌초를 앞두고 있었고

항로 변경이 필요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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