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금 600%

멈춤은 실패가 아니라 방향을 찾는 일

by 매트 위 바다

"이번에 희망퇴직자 받는데요. 희망퇴직금 600%. 연대리님 어떻게 하실 거예요?"


2015년 해운시장은 2008년도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서부터 신조선 공급 과잉, 과잉 부채, 수요 둔화가 한꺼번에 겹쳐 누적된 빚이 터진 암흑기였다. 당시 국내 탑 3 선박관리회사에 근무하고 있었지만 이 불황은 메이저, 마이너 할 것 없이 암흑이 드리우고 있었다. 결국 회사차원에서 구조조정이란 방법을 꺼내 들었고 희망퇴직자 공고가 게시되었다.


일등항해사로의 승선 경력, 선박 최적운항솔루션 개발 참여 등 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때맞춰 진급하고 때맞춰 육상 전환 발령을 받아 큰 어려움 없이 해운업에서 이력을 쌓던 중에 불황과 회사의 경영난은 생각지도 않은 진로에 대한 고민거리가 되었다.


조선업으로 강국인 우리나라지만 항해/기관 기기의 소프트웨어 기술은 거의 외국 브랜드사(노르웨이, 스위스, 독일, 일본 등)에서 점유하고 있어 내가 참여한 국내기술의 선박 최적운항솔루션의 실제 매출까지로의 연결은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실패로 분류된 해당 프로젝트는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어 서로의 과오를 증명해야 되는 과업들로 하루하루가 채워져야 했다.


그러던 차에 희망퇴직자 공고는 현실을 벗어나기 딱 좋은 구실이 되었고 함께 근무하던 주니어급 직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600% 좋고 희망퇴직도 좋고 다 좋은데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먹고살아야 하지?

계산기를 꺼내 들었다. 이직까지 예상되는 시간, 예상되는 비용.


"어 생각보다 퇴직해도 되겠는데?!"


문제는 가족들의 반대였다.

메이저 선사에 메이저 관리사에 동일한 회사에서 일등항해사 경력까지

왜 그걸 버리려 하냐....?

나 역시 그 부분이 제일 걸리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아직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준비 안된 이직 시나리오에 흔들리지 않기로 다짐했건만...


당시 나는 임신상태였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한 팀장님은 각 팀별로 배정받은 최소 인원에 남자직원을 한 명 더 살리고 나는 근로기준법 안전 테두리라는(근로기준법상 임산부 해고제한) 이름하에 깍두기로 남길 권하셨다.


주변 반대에도 그 말에 그 환경에 마음 상해서 희망퇴직을 밀어붙였다.

욱'한 감정에서 비롯된 막무가내 밀어붙임이었다.

팀장님, 본부장님의 만류에도 난 그렇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렇게 나는 생각지 않게 돌발적,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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