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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다 Oct 14. 2021

보싸노바 재즈를 접하다.

정보화 시대.

 아들을 키우는 나의 친구는 거의 심리상담사가 된 듯이 심리 전문용어를 사용하며 자신의 심정과 아들의 상태에 대해 설명한다. 사실은 가족이 의사보다 훨씬 더 잘 환자를 이해하고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오래도록 아픈 가족을 돌본 이력이 있는 사람은 그 병에 대해 누구보다 더 상세히 환자를 다루는 법에 대해 안다. 어릴 적 반의사가 된다 라는 표현을 속담처럼 듣고 자랐다. 우리는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그 넘치는 정보들이 오히려 독이 되는 때도 있다고 생각을 한다. 문제없이 잘 크고 있는 아이의 행동을 보며 '이건 자폐아에게 자주 나타나는 양상인데 혹시 우리 아이가 자페는 아니까?' '공감능력이 많이 결여된 것 같은데 소시오패스의 뿌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시작되는 걱정은 가끔은 아이를 괴롭게 만든다. 아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아이를 바르게 자라게 하지만 너무 많은 걱정은 아이를 삐뚤어지게도 하니까 그런데 그 생각 끝에 내린 결론으로 옮긴 행동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부모님들은 또 서적을 뒤지고 영상을 살펴보고 전문가 상담을 받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자신의 선택이 아이의 미래와 인성과 직결되니 조심스럽고 걱정스러울 수밖에 책임감 있는 사랑의 모습이라 나쁘다 말할 수도 없다. 그 넘치는 정보 속에서 담을 것은 담고 버릴 것은 버리고 이 행위가 잘 이뤄져야 하는데 사실 책상 정리를 할 때도 이 사진은 버려야 할까 이 편지는 계속 가지고 있는 게 맞을까 처럼 어려운데, 자신으로 인해 한 아이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더 어려워지는 법이다. 내가 두 가지의 옵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고 한 가지를 버렸을 때 오는 결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생각보다 긍정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고, 확률이 높았던 긍정의 결과를 뒤엎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언제나 이변이라는 것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완벽하려고 하는 욕심만 버리면 어떤 선택을 했든 최선의 노력으로 얻는 결과에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 올 텐데. 이것도 사실을 어려운 마음가짐이다. 타인의 일상을 우리는 손쉽게 엿볼 수 있다. 그야말로 정보화 시대이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그들이 가졌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이 늘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의 손에 쥐고 있는 행복이 주는 기쁨이 다를 뿐인다. 즐길 방법을 찾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젊은 시절 부자였던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이런 말을 한다. '돈 모두 소용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렇다 그들은 손에 돈이라는 것을 누려보았고, 가족과의 시간은 소홀했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떠나기 직전 살면서 아쉬웠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손안에 있는 것에 만족하고 살면 발전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태어나서 더 높이 올라갈 수 없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에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이것은 아주 슬픈 현실이라고 말하는 염세주의자도 있다.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래도 뭐 그것도 어찌 보면 남의 말이 아닌가. 내가 염세주의자들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염세주의자들의 말이 맞다고 해도 그렇게 살 수가 없다. 성격의 문제와도 닿아있는 현상이다. 낙천적인 사람은 낙천적으로 산다. 비판적인 사람은 늘 날카롭게 산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사실 즐거운 일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알아가는 일은 흥미롭다. 중요한 것은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 나를 똑바로 보고 가지고 있는 성격의 틀 안에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무심했던 사건이나 사람, 사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보는 것. 그렇게 사는 게 중요하다 생각한다. 누군가의 말이 상처가 된다면 스스로 그런 이미지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나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 반기를 들어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은 정보를 털어놓게 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다. 날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게 되면 어쩌지? 나 행복한데, 왜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나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알려야겠다! 이런 과정이 건강한 과정일까 과연. 타인의 말에도 감정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은 내면이 단단해져야 한다.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오해하건 흥분하지 않고 자신의 상태에 대해 천천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타인에게 배려를 하고 관심을 가지며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건 나 먼저 홀로서기가 잘 되어 여유가 생겼을 때이다. 감사함에 무례하지 않게 응하되,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때가 되어야 진정으로 남의눈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사노바 재즈라는 장르를 얼마 전에 접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BGM을 보통 꺼두는 편인데 오늘은 보사노바 재즈를 틀어놓고 글을 써본다. 미세한 감정의 차이가 느껴진다. 마치 전문작가라도 된 기분이다. 전문작가는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과 완전히 다를 것이다. 나는 모른다. 그래서 말한다. 된 듯한 기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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