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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프엘라 Oct 06. 2021

쉽게 알려드릴게요.

불행으로부터 멀어지는 방법








겨울이 되면 붕어빵을 줄곧 굽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하지만 사실 제가 제일 좋아해서요. (구워주는 담당인 남편은 그다지인 모양입니다만.) 준비 담당인 저는 아이들이 재미있으라고 여러 가지 토핑을 준비합니다. 팥, 초콜릿, 옥수수, 치즈, 젤리 곰, 콘프레이크 등을 준비하는데요. 안정적인 맛을 내는 재료들도 있지만 먹다가 ‘아 이건 아니다.’ 싶은 맛들도 있어요. 잘 구워진 붕어빵을 줄지어 두고 붕어빵을 고르는 게임을 시작합니다. 좋아하는 맛이 나오지 않아도 꾹 참고 어른스럽게 먹는 것이 포인트인데요. 가족의 사랑으로. 먹고 싶지 않은 맛을 누군가 나타나 먹어주는 끈끈하고 훈훈한 장면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이 게임의 장점.


가장 좋아하는 콘치즈 맛 붕어빵을 고르는 것이 행운이라면 눅눅한 콘플 레이트 맛을 고르는 건 작은 불행이겠죠? 때때로 어쩔 수 없이 만나는 것이 일생의 불행이지만 제가 12년 동안 배워온 불행과 멀어지는 방법. 오늘 쉽게 알려드릴게요. 











신속하게 붕어빵 팬부터 주문하세요.


인스타그램에 작은 글을 연재하다가 스타트업 플랫폼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행복도 잠깐. 플랫폼이 멈추면서 제 일이 끊어졌을 때 또다시 불운해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다시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었을 땐 행운이 왔다고 생각했지만 하고 있는 일이 끝나면 또 일이 끊어질 처지였어요. 붕어빵을 퍽 좋아하면서도 사 먹을지, 구워 먹을지 고민만 하기를 몇 년이었는데요. 붕어빵 팬을 망설이지 않고 주문했던 그날처럼 저는 구직 사이트에 접속합니다. 그리고 sns라는 키워드를 검색했어요. 크고 작은 회사에서 sns 채널 매니저 혹은 운영자라는 이름으로 구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직감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동안 만들어온 콘텐츠들의 목록을(이라고 쓰고 작은 확신 리스트라고 읽습니다.) 이력서에 써서 전송합니다. 일단 붕어빵 팬부터 구입하고 그다음 재료를 고민할 일입니다.




나만의 취향의 반죽을 찾아요.


12년 만엔 출근하는 제가 맛있는 붕어빵을 만들기 위해서 특별한 저만의 반죽이 필요했어요. 좋은 반죽은 가끔 눅눅한 콘플레이크 맛 정도의 불운이 찾아왔을 때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랄까요? 좋은 반죽을 찾기 위해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아는 일이 중요해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불행해지고 싶지 않았거든요. 불행과 멀어지기 위해 많은 고민을 통해 제가 좋아하는 요리, 식품과 관련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회사에 지원을 했고, 지원서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리스트를 적는 동시에 제 약점도 적어두었습니다. 아이 셋의 엄마라는 점. 근무시간의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점. 그러나 프리랜서 생활을 무리 없이 해왔듯 업무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해당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의지와 함께 성실하고 꼼꼼한 성향의 사람임을 어필했어요. 나만의 취향의 반죽을 누군가 알아봐 준다면 좋겠다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저만의 반죽 레시피를 고안했답니다. 결과는 합격! 저는 이렇게 맛있는 붕어빵에 한발 더 가까워졌습니다.





나라는 반죽을 정성껏 개어주세요.


12년 만에 출근하고 집안일부터 아이들 육아에 업무에 필요한 교육까지 삶이 너무나 복잡해졌습니다. 그럴수록 하찮다고 여겨지는 일을 꼼꼼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해요. 가루를 정성껏 저어서 덩어리 지지 않게 만들어 두는 것. 불운이 찾아왔을 때 이겨낼 수 있는 반죽의 맛. 작고 하찮은 일부터 시작하시면 돼요. 매일매일 조금이라도 읽고 쓰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요. 그 작은 일상들이 나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반죽이 된답니다. 이불을 정리해두는 일. 신발을 바로 놓는 일. 책상을 말끔하게 치워두는 일. 그런 것들이 불행이 나에게 왔을 때 나를 다잡는 기초 반죽이 되었답니다. 일상이 흐트러지지 않으려면 커다란 덩어리 일보다 작고 사소한 디테일부터 잡아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때로 피곤한 날은 핫케이크 믹스를 쓰세요!


12년 만에 출근하니 어땠냐고요? 말도 마세요. 회사에서 저는 저희 집 5살 쌍둥이들보다 모르는 일들이 많더랍니다. 연매출 200억대의 중소기업이지만 sns 브랜딩의 기초를 닦을 사진과 자료들이 없어 맨땅을 가는 마음으로 매일 콘텐츠를 생산했답니다. 업무 강도가 생각보다 강하기도 했고 막막한 마음에 일하다 문득 펑펑 눈물이 쏟아진 날도 있어요. 12년 만에 출근하는 39살의 마음이 꼭 26살의 마음과 같아서 하루하루 또록또록 묵주 알 반지를 넘기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삼키기도 했어요. 처음 입사해서는 저만의 방식으로 헤쳐나가기 위해 나만의 반죽 레시피대로 일을 하는 것을 고집했어요. 예를 들어 모든 콘텐츠를 제가 수작업으로 만들어내는 방식이 그러했어요. 때때로 핫케이크 믹스를 붕어빵의 반죽으로 써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조금 시간이 필요했지만 - 모든 일이 꼭 제 손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완벽주의를 약간 허물어뜨리는 것과 다른 사람 의견에 상처 받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26살의 마음으로 12년 만에 출근하는 39살 나에게 꼭 필요했어요. 어떤 날 먹고 싶은 아주 평범한 맛의 핫케이크 믹스 같은 것 말이죠.



붕어빵을 구워낸 틀 속 거뭇거뭇한 재들을 잘 쓸어주세요.


12년 만에 출근했으니 가뜩이나 예민하고 섬세한 마음에 상처 받을 일들은 왜 이리도 도처에 많은 건지요. 출근한 지 3일째. 제가 만들어둔 콘텐츠를 보고 사수가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소한 것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이와 같은 말들을 입사 초기 꾸준하게 들으며 자존감이 깎이고 또 깎이는 일이 반복되었어요. 지금 내가 지내는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맞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했던 것 같아요. 저에게 마음 아픈 말을 남긴 사수가 사실을 제가 맡았던 업무를 도맡아 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겐 존재의 부정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남은 감정의 재를 쓸어내는 일. 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합니다. 거뭇거뭇한 붕어빵을 먹는 불행을 만나고 싶지 않다면 꼭 지켜주세요.



불운의 붕어빵도 일단 맛보세요.


여러 가지 붕어빵을 맛보세요. 처음부터 불운이라고 생각하지 말고요. 12년 만에 출근한 나에겐 여러 가지 붕어빵이 주어졌습니다. 출근한 다다음날. 판교로 출장을 갔습니다. 무려 홈쇼핑 채널 관련 미팅을 하러요. 제가 만든 콘텐츠들이 티브이에 출연했고 매출을 일으켰습니다. 작은 회사에서 경험해볼 수 있는 다채로운 마케팅 경험이 세 달간 벌어졌죠. 이전에는 결코 경험해본 적 없는 생소한 맛의 붕어빵들이었어요. 보기만 해도 별로 일 것 같은 토핑의 붕어빵이 제가 좋아하는 맛의 붕어빵일 수 있으니 하찮게 여기지 않고 꼭꼭 씹어 맛을 음미해보는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좋아하는 붕어빵을 고르고 싫어하는 붕어빵을 피하는 기준이 필요했거든요. 나에게 어떤 일이 불행일지 조차 12년 만에 사회로 나온 저에겐 모든 것이 마치 처음과 같았으니까요.






이제 행운의 붕어빵을 고를 준비가 되었나요?







처음 입사 후 3달간은 불운을 탓하며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이 지나갔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더 이상 불행을 탓하고 삶의 순간들을 흘려버리고 싶지 않았어요. 불행의 순간에도 저에게 필요한 것들을 잘 쓸어 담아 내 삶에 어우르고 싶었거든요. 그 마음으로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좋아하는 맛이 어떤 토핑인지 어떤 토핑을 피하고 싶은지 파악할 수 있었어요. 제가 지금보다 경험치가 더 많고 능력치가 높은 사람이어서 규모가 큰 회사에 들어갔다면 해볼 수 없는 경험이었겠죠. 스마트스토어 구축부터 콘텐츠를 활용한 sns 마케팅과 홈쇼핑 채널 판매까지 - 경험해본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역시나 나만의 색깔로 콘텐츠를 만들고 무언가를 브랜딩 해가는 일이었어요. 저는 불운의 붕어빵을 피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그만 - 가장 좋아하는 행운을 붕어빵을 찾고 말았네요.


더 시스템의 스콧 에덤스는 말해요. 불행과 멀어지려면 행운을 쫓아야 한다고요. 그리고 행운을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는 타이밍이죠. 타이밍이 단순하게 운으로 찾아오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즉 행운은 가만히 있는 나를 우연히 찾아낸 것이 아니에요. 행운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은 자리에 내가 스스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니까 맛없는 붕어빵을 고르는 불행과 멀어지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요. 행운의 붕어빵을 고르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운의 붕어빵을 고를 준비가 되었냐고요?










 아니요. 저는 더이상 전전긍긍하며 행운의 붕어빵을 고르고 불행의 붕어빵을 피하기 위해 줄을 서지 않을거에요. 스스로 갖가지 재료로 붕어빵을 굽는 사람이 되었거든요. 어떤 토핑을 제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 저는 이제 행운 혹은 불행의 붕어빵이 아닌 제가 좋아하는 맛의 붕어빵을 구우려고해요. 남편처럼 붕어빵을 더이상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꾸준히 좋아하는 맛의 붕어빵을 늘려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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