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확실할 때 좋은 점들
최근에 명품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고 가만히 생각하다가 대답했어요. ‘사지 않고는 못견딜 것 같았던 시기가 분명 있었지만 지금은 사지 않아도 갖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요. 명품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정확한 답변은 아닌데요.라는 표정을 짓는 상대방에게 다시 한번 대답했답니다. ‘샤넬 매장에 들어가면 저에게 어울리는 가방을 단번에 고를 수 있지만 사지 않아요.’ 라고요.
이렇듯 저는 오래전부터 제가 취향이 굉장히 확실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제 취향을 유지하는 데는 돈이 꽤 필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답니다. 취향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인 경제력이 없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일까요?
1. 상황에 맞게 취향을 바꾼다.
2. 취향을 유지한 채 기다린다.
저는 2번을 택했습니다. 제가 미니멀리즘을 좋아하는 이유는 ‘가지지 않고 갈망하는 상태’를 ‘내 상황에 맞는 적당한 것들을 취하는 상태’보다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적게. 가져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가는 삶을 살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저는 확고한 취향을 유지한 채 긴 시간 기다리는 삶을 산 덕분에 제 취향이 무엇인지 꽤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취향을 정확히 파악하게 된 후의 마음은 어땠냐고요? 취향을 알고도 내가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없는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도 어떠한 행동을 취하지 않고 원하는 소망을 간직하기만 하니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쪼글쪼글 시들어 갔습니다.
시들시들한 마음이 우울증으로 이어집니다. 그때의 저는 사과 한 알도 허투루 사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잠 못 자고 먹지 못할 만큼 마음이 메말라가던 그 시기에도 확고한 취향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백화점으로 향했고 고민 없이 가방 하나를 구매했습니다. 구매할 때는 망설이지 않았지만 실은 오랫동안 취향을 유지하고 있던 탓에 단번에 탐색 - 구매 결정 - 결제 단계로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고른 가방은 명품이지만 평범한 생김새를 가졌으며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명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 은근한 명품 스타일이랄까요. 지금도 소중하게 잘 들고 다니는 그 가방을 고른 그때의 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평범하고 보잘것없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 자체로도 빛나는 사람 말이죠.
그 시절의 내게는 없는 주제에 명품을 좋아한다고 면박을 주는 사람들 대신 백화점에서 뒤를 호위해주시던 엄마. 하루 외출로 월급만큼의 돈을 지출하고 와도 카드를 분지른다던지 계좌를 막는 등의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남편, 깡마른 몸과 메마른 눈동자로 두문불출하다가 나타나면 ‘너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가방을 골랐네.’ 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마음으로 울어주는 다정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제가 기특한 이유는 사람마저 확실한 취향으로 스스로에게 꼭 알맞은 사람들만 삶에 들였다는 점입니다.
작은 습관을 하나하나 키우고 나를 일으키고 그렇게 작은 확신의 결과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소망했던 경제력을 갖게 되면서 제가 가장 먼저 한일은요. 나를 돌봐준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마음을 채워놓고 나서야 스스로에게 사주고 싶었던 것은 명품이 아니라 아이패드였어요. 저는 알고 있었어요. 저에겐 더 이상의 명품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제가 아이패드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오랫동안 취향을 간직한 덕분입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대기하고 있던 취향을 삶에 적용시키는 과정은 또 얼마나 신비롭고 즐거웠는지요. 저는 모든 종이 노트를 정리했어요. 자칭 메모광인 저는 다이어리를 비롯해 필사 노트와 메모장 등 여러 권의 노트를 사용했는데요. 삶을 단순화하기 위해 굿 노트라는 어플에 엄마로서 기록, 커리어를 위한 플랜, 개인작업 목록 등을 정리했어요. 노트를 구체적으로 분리해서 만든 것만으로 머릿속이 정리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업무에 필요한 문서 편집 / 사진 편집 / 디자인 / 동영상 관련 작업을 모두 아이패드 어플을 활용해해나가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미니멀하게 환경을 세팅하는 일은 사람의 사고를 단순하게 만들어줍니다. 저는 단순히 ‘아이패드’를 가지고 싶었던 게 아니었어요. 아이패드로 생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죠.
아이패드에 이렇게 적응을 잘하고 있는 건 제가 이 순간을 지속적으로 구체적으로 꿈꿔왔기 때문이에요. 어떤 제품을 구입할지도 구체적으로 꿈꿨지만 제가 더 집중한 것은 아이패드를 구입하고 제가 아이패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계획이었어요. 스스로에게 취향을 반영한 선물을 하고 눈앞에서 손끝으로 생생하게 만져보는 경험. 이런 것들이 제 삶을 바꿀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일한 지 일곱 달이 차오르는 요즘. 확실한 취향으로 또 가지고 싶은 게 있냐고 물으신다면 - 무엇을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지만 사지 않는 상태로 여전히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