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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프엘라 Oct 24. 2021

자전거 타는 것처럼 수줍음을 탑니다.

내향적인 나를 지키는 방법



저는 사실은 언제나 수줍습니다.







스스로를 수줍러라 부르게 된 여러 연유가 있는데 그중 몇 가지를 여러분께 털어놓을게요.


저는 얼굴이 자주 붉어집니다.

수줍음을 감추기 위해 웃을 때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웃는 습관이 있습니다.

저는 관공서에 전화할 때 수줍어서 제대로 말을 못 하는 경우가 있어 말할 내용을 종이에 미리 적어두곤 합니다.

아이들 엄마들 모임에 초대받고는 모임 장소 주차장에 차를  들어갈까 말까를 15 이상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캠핑을 즐기지만 옆 캠퍼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바람을 막는다는 명목의 윈드 스크린을 사방에 설치해달라고 남편에게 조릅니다.


적어보자면 한도 끝도 없이 나올 39살의 거대한 수줍음. 평생에 걸쳐 극복해야 할 것만 같았던 감정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릴 적부터 늘 수줍었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괜찮아진다는 말을 부적처럼 마음에 새기며 버티어왔습니다. 어른이 되면 , 결혼을 하면 , 아이를 낳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했던 것이죠. 그러나 보시다시피 전혀 괜찮아지지 않습니다. 수줍음을 극복한다는 것은 너무나 거대한 도전 같아 망설여지기만 했고 말이죠.












그런 제가 본격적으로 수줍음을 극복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습니다. 수줍음을 타는 내향적인 성향이 세 아이들 중 두 아이들에게 유전되었고 내향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나의 수줍은 행동들을 학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4살 남매 쌍둥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담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고 매일 마주치는 옆반 동생들에게 인사를 건네기를 주저했으며 집에 친척이나 이웃이 놀러 오기라도 하면 입을 떼 소리를 내는데만 이틀이 걸렸습니다.

수줍음을 타는 성격으로 망설이고 주저하고 살아오기를 38년. 저는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수줍어하는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내가 살아오며 불편하고 조마조마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수줍음을 극복해보기로 합니다. 먼저 제가 언제 수줍은지 마음을 잘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줄곧 수줍어지곤 했는데 마음속에 ‘나는 별거 아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떠오를 때 수줍어지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집에서 12년간 머물며 아이들과 집을 돌보는 사람이라는 게 수줍었습니다. 관공서에 들러 서류를 작성할 때 직업이 무어냐 물으면 전업주부, 가정주부라고 대답할 때가 수줍었고 결혼 전에 무슨 일을 했냐는 질문을 받으면 주눅이 들고 앞으로도 아이들만 집에서 돌볼 것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곤 했습니다.


수줍음의 정체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무언가가 되면 더 이상 수줍지 않겠다고요. 그래서 그 무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나날을 살아냅니다. 하지만 노력하는 나날을 살아내면서도 늘 수줍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여전히 수줍고 얼마를 버냐고 물으면 얼굴이 타들어갈 것 같고요. 그렇지만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말할 때만은 수줍지 않았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이루고 성공이라는 상태를 만나게 된다면 - 그러면 이 수줍음이 사라질 것이라는 걸요.






수줍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는 말을 가집니다.






프리랜서로 첫 면접을 가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아이들을 돌보러 와주신 엄마께 물었습니다. ‘나, 집에만 계속 있던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지?’  엄마가 대답하셨습니다. ‘누구든 너한테 함부로 하면 다 엎고 나와.’라고 말이죠. 여전히 거대한 수줍음을 만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엄마가 해주신 다소 과격한 한 문장은 마음속에서 불쑥 ‘집에만 12년 있던 사람.’이라는 말이 또 떠올라 얼굴을 붉게 만들 때 나를 지켜주는 말이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배우는 것처럼 수줍음을 극복합니다. 불쑥불쑥 수줍음이 올라와 주저하고 망설이게 될 때 떠올리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요. 바로 미래의 나 자신입니다. 나를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3년 후 혹은 5년 후 더욱 선명해진 나 자신을 떠올립니다. 아주 구체적으로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말투로 대화를 하는지 어떤 옷을 입고 어느 자리에 어떤 자세로 앉아 일을 하는지 생생하게 그려봅니다. 지금의 나는 아직도 수줍습니다. 단순히 나 자신으로 당당하게 행동하는 게 힘든 순간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대신합니다. 머릿속으로 떠올려보는 당당한 미래의 자신이 현재의 나를 지켜준다니 드라마 한 장면 같지 않나요?



















수줍음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수줍음을 극복하는 것을 배운다고 말씀드렸죠. 저는 사실 자전거를 잘 못 타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어렵게 배운 자전거 타는 방법을  잊기란 쉽지 않습니다. 몸과 기억의 근육에 자전거를 타는 방법이 프로그래밍되었기 때문입니다. 수줍음을 타면서 수줍음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저로선 수줍음을 완벽하게 극복하기란 자전거를 잘 타기처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줍음을 적당히 타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수줍음을 덜 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면 잊지 않고 오래 그 상태를 지속할 자신도 있고요. 풍경은 멋지지만 위태롭고 굴곡진 길을 자전거로 지날 때 늘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역시 자전거를 배우길 잘했다고요. 저는 수줍음을 극복하는 것도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면 ‘수줍음을 극복하길 잘했어.’ 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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