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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프엘라 Sep 18. 2021

‘도’를 믿으시나요?

가장 초라할 때 좋은 사람만 곁에 두는 방법






와니 엄마는 결혼해서 이제껏 집에서 애들만 키우지?







어느 날 아이들 하원 후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몇 번 이야기를 나누어본 것이다인 아는 얼굴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결혼해 여직 아이들’만’ 키웠냐고요. 아이들’만’ 키우고 12년을 살았던 게 사실이긴하니  ‘네….’ 하며 말끝을 흐리는 문장끝에 작은 뭐라도 달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심한 얼굴과 돌아서 아이들과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대답하기 싫었던 문장 속  ‘만’이라는 글자가 자꾸 제 마음속에서 툭 하고 불편한 소리를 내며 튀어올랐습니다.


반들반들 윤이 나도록 아이 셋을 잘 키워두고는 왜 저는 자꾸 작아졌을까요. 그뒤로  ‘만’이라는 퉁명스러운 글자 하나가 늦은 밤 때로는 새벽까지 마음속을 텅텅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탓에 놀이터에서 혹은 학교 앞에서 저는 갈수록 말없는 사람이 되어갔던 것 같아요.


‘만’이라는 글자를 말속에 섞으면 그 문장엔 올가미툴 기능이 생깁니다. 포토샵 기능 중 올가미 툴을  아세요? 화면 특정 범주에 올가미 툴로 도형을 그리면 내가 원하는 만큼 범위를 선택할 수 있는 툴인데요. ‘만’이라는 글자가 저에겐 그랬습니다. 나를 아주 좁은 범주로 가두는 말 같았어요. ‘너는 결혼해서 여태 무엇도 이룬 게 없어 보여.’ 하고 나라는 사람을 한정 짓는 말로부터(그 사람으로부터) 저를 방어할 줄 몰랐던 거지요.














날선말들을 들은 날밤에는 유난히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어요.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꾸 새카만 불안이라는 것이 새어 나왔어요. 아무것도 되지 못하면 어떡하지. 아이들 엄마라는 이름 말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번엔 ‘만’이라는 글자가 붓이 되어 자꾸 새카맣게 새어 나오는 불안과 걱정들을 온 마음에 칠하고 다니는 밤이었습니다.


새카만 마음으로 첫아이를 재우곤 새카맣게 조각난 밤의 조각들을 책을 읽으며 이어나갔습니다. 그즈음 상담심리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늦되었던 첫아이가  학교도 다니고 제 할 일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무언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내아이처럼 조금씩 걸음이 늦는 친구들을 도와주고도 싶었고 그 걸음을 지켜보고 부축하느라 눈물 쏟는 부모들의 마음을 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요. 그런데 막상 공부를 시작하며 가장 많이 느낀 건 나는 그동안 내 마음의 구체적인 생김새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거예요.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줄 때 혹은 속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무리에 끼지 못하고 내가 자꾸 튀어나올 때 느낀 것들을 저는 스스로 제 모난 부분이라 여기며 지내왔는데요.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에 두드러지는 부분들을 스스로 약점이라고 정의 내린 것이죠. 그 모서리들은 사실은 나를 이루는 주관적인 요소의 일부일 뿐인데요. 그것을 단점이라 여기는 것도 아주 주관적인 ‘내 생각’ 혹은 나를 ‘올가미툴’로 범주 짓는 사람들의 생각 때문이라는 걸. 저는 조금은 미련하게도 공부를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내 마음의 생김새를 어림잡아 알게 되었던 어느 날.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일을 적었습니다.




그동안 잘 버텨온 나를 격려하는 일.

날선말에 주눅 들지 않도록 블쾌한 대상으로 부터 나를 보호하는 일.

지난 시간 속에 스스로 초라하다 여기는 나를 안아주는 일.

아무것도 이루지 않은 나를 응원해 주는 일.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너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하고 축하해주는 일.












 세상에 ‘나라는 자원 범주화할 수 있는 최적화된 사람들중 하나가 나입니다. 내가 가장 초라할  좋은 사람들만 곁에 두는 방법의 시작은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은 나를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나라고 스스로 규정짓지 않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사람을 곁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피하는 것만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 나에게 악의적인 말을 한다면요? 상대방이 한 말을 그대로 정확하게 한 단어씩 돌려주세요. 예를 들어 ‘당신 결혼해서 이제껏 집에서 아이들만 키우고 살았지?’라는 말에 ‘본인 스스로를 결혼해서 이제껏 아이들만 키우고 살았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돌려주는거지요. 그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곁에 아무도 없을 것 같다고요? 나 스스로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면 됩니다.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내가 가장 잘 지내야 하는 대상은 ‘나 자신’이니까요. 그렇게 단단해진 내 곁에 ‘좋은 사람들만’ 머물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도’를 믿으시나요?




아무것도 되지 못한 하루가 지나가는 줄로만 알았던 어떤 밤이었어요. 잠 못 이루는 밤 책을 읽고 또각또각 유리 별을 새기는 마음으로 인스타그램 작은 창에 써 내려간 글자들. 문장들. 눈물들, 위로들, 칭찬들, 격려들 몇 번씩 돌이켜보고 되새겼던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를 아끼는 마음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라는 ‘자원’을 ‘모서리’라 여기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집에서 머물며 책을 읽고 글을 쓴 경험은 내 곁에 좋은 사람들을 머물게 했습니다. 언제나 나를 주눅 들게 했던 나의 걱정과 불안을 적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글들은 어느 순간 저에게 소중한 포트폴리오가 되어주었고 12년 만에 출근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왔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정말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은 없어요. 되지 않은 것들만 있을 뿐이에요.



여러분은 ‘도’를 믿으시나요? 저는 ‘도’를 믿습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요. 저는 커다랗게 험상궂은 인상으로 ‘텅텅’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던 ‘만’이라는 글자를 제 마음속에서 지웠어요. ‘만’ 대신 어떤 글자를 넣어줄까 고민하다가 수줍게 동그란 눈을 끔뻑이는 귀여운 인상의 ‘도’라는 글자를 넣었습니다. 사회적 중력이  매번 내 마음속에 ‘만’이라는 글자를 집어넣고 그저 ‘엄마로만’ 살기를 바랄 때 내 곁에 가장 좋은 사람인 내가 내 마음속에 넣어둔 ‘도’라는 글자는 자꾸만 자석처럼 제 삶에 좋은 사람들, 좋은 기회들을 끌어다 주고 있답니다. 다시 여쭤보고 싶어요. 여러분은 ‘도’를 믿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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