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길 5코스

by 김기만

경기옛길 안내에 보면 5코스는 용인시청에서 김량장동(수여면)을 관통하여 양지면에 이르는 수여선 옛길은 1930년 개통된 수여선이 1972년 폐선될 때까지 지나던 길이었으며, 현재도 수여선 길은 일반 도로로 사용되고 있으며 영남대로의 원형 노선과 가장 근접하여 조성된 길로서 용인 행정타운에서 금학천변을 따라 수여선 옛길을 걷다 보면 가장 오래된 5일장 중 하나인 용인장(용인중앙시장)을 지나게 되고 장터를 지나면 고즈넉한 산길이 멋진 봉두산 숲길을 지날 수 있고 봉두산을 지나면 용인 남부의 중심이었던 양지면 남곡리에 도착하게 된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수여선은 일제강점기 여주 이천지역의 쌀을 수탈하려는 목적으로 수인선과 함께 건설되었다가 1971년 폐선이 되었다고 한다. 수인선과 함께 협궤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수인선은 1990년대까지 운영이 되고 폐선이 되었다가 지금은 전철로 개선이 되어 최근 운행이 되고 있고 수여산은 폐선이 된 후 일부분은 용인 경전철이 이 노선을 이용하고 있고 여주까지 가는 전철이 이용하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 같다. 길도 없어졌다가 다시 그 길을 다시 복원한다. 하천도 유사하다. 요즈음 하천은 옛 하천으로 복원될 수 없다. 뚝으로 이를 방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각주가 만들어진 것은 하천이 범람하고 하천의 방향이 이곳저곳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용인시청에서 출발하여 금학천을 따라 경안천을 만날 때까지 걷는다.

용인경전철을 타고 와서 접근을 하면 가장 쉽다고 할 수 있다. 용인경전철은 처음 계획 당시에는 최초의 경전철을 꿈꾸었으나 개통과 관련하여 문제가 유발되어 부산 4호선이 먼저 개통이 되어 최초를 놓쳐버렸다. 수도권 최초의 타이틀도 운영 문제 등과 관련하여 최소수입보장이 해소되지 않아 의정부경전철이 개통이 먼저 되어 수도권 최초의 타이틀도 놓쳤다.

노선이 기흥에서 에버랜드까지 이어지지만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을 회피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수여선 노선을 최대한 활용한 결과이며 지하철이나 경전철 등을 건설할 때 비용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부분이 보상비가 하천을 이용하는 경우 최소가 될 수 있으므로 이를 이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비판론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비판을 한다. 용인경전철에 대한 비판은 구도심 지역 사람들이 가장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걷는다. 주변을 걷는 주민들과 같이 걷는다. 그들은 배낭을 메고 걷는 사람을 그렇게 많이 보지 않았으므로 생소할 것이다. 하천을 걷는 사람들은 가벼운 차림인데 영남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래도 배낭을 메고 걷는다. 어느쯤 가다 보면 용인경전철역을 하나둘씩 지나간다. 김량장역 아래에 도착한다. 궁금하다. 김량장은 일제강점기 때 군청이 이전하면서 용인 지역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 시기부터 금령역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역과 주막을 중심으로 일찍부터 마을이 발달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이곳이 무엇인지 하천에서 올라오는 사다리를 이용하여 올라보니 순대국밥집이 즐비하다. 김량장하면 성이 김이고 이름이 량장인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곳은 김량장으로 마지막이 시장장인 것으로 보면 김량이라는 곳의 장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김량은 사람 이름으로 고려시대의 장군이며 그가 때어 난 곳이 이곳이며 이곳의 이름을 김량이라고 명칭을 붙여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사실 계룡산의 동학사를 들어가는 입구에 '박정자 삼거리'가 있다. 이곳의 명칭도 박씨내 정자가 있던 삼거리란 뜻이다. 서울에 가면 종교교회가 있다. 사람들은 무슨 종교교회야고 하지만, 종교라는 다리 명칭에 교회 이름을 붙인 것인데 해석이 이상하게 나오는 것이다.


이제 운동장 송담대역이다. 이곳이 용인의 구시가지 사람들이 용인경전철에 접근하는 곳이다. 구시가지에서 이곳으로 버스를 타고 와서 이곳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그런 만큼 버스노선이 많아야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환승체계가 완벽하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영남길은 경안천을 만난다. 경안천을 따라 길을 건너고 고림중학교를 옆을 지나 봉두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경안천은 용인에서 발원하여 팔당댐 상류에서 한강으로 합류를 한다. 양수리 바로 밑에서 한강으로 합류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경안천은 용인에서 발원하여 한강에 합류하면 수량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대규모 택지를 지나면서 오염원이 많아 국가하천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용인시 종합운동장을 지나면서 하천을 건너고 건너면서 방향표시를 보지 않으면 종합운동장 옆의 풍물시장이 그렇고 하천을 따라 이동을 하게 되어 길을 놓치기도 한다. 나도 사실은 길을 살짝 놓쳤다가 다시 길을 찾아 고림중학교 쪽으로 이동했다.

봉두산으로 간다. 처음에 만나는 곳을 햇골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원연은 용인의 김량장리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햇골에 의병을 매복 시켰다가 좌우 협곡에서 왜적을 크게 무찌른 곳이라고 한다. 이 전투 이후 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화약골이라고 불렀는데, 혹자는 적의 해골이 지천으로 깔렸다고 해서 햇골이라 불린 것이라 주장하지만 원주 원씨 묘비명에 나타나 있는 기록으로 미루어 화약골로 불리었으며 오늘날 줄임말로 햇골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원연은 햇골 전투의 공으로 연기군수를 제수받아 선정을 베풀었으나 훗날 정유재란 때 순국하였다고 전한다.


봉두산은 220m의 나지막한 산으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연달아 이어져 있다. 산 정상에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낮은 산이더라도 얕잡아 봐서는 안 된다. 지나는 아주머니들이 정상에 올라서자 “아이고야, 힘들다”라고 몇 번이나 되뇌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지나갈 수 있고 이렇게 좋은 길이 있나 하고 무조건 걸었다. 사람에 따라 힘들고 안힘들고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봉두산 숲길을 편하게 걸어 내려오다 보면 임진왜란 당시의 진주성 전투 의병장인 유복립 묘를 거쳐 갈 수 있다. 유복립은 조선 선조 때의 의병장(1558~1593)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외숙인 김성일의 휘하에서 진주성을 방어하였으며, 이듬해 4월 김성일이 병사하자 김천일 등과 함께 성을 지키다 왜적에게 성이 함락되자 자결하였다고 한다.


1719년(숙종 45) 대종백(大宗伯) 민진후(閔鎭厚)의 주청으로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추증되고, 1729년(영조 5)에 충신으로 정려문이 내려졌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이제는 길이 마지막이다. 남곡리 정류장이다. 이곳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용인경전철을 탈 수 있는 종합운동장, 송담대 역 근처에서 하차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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