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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Apr 26. 2021

두타산에 심취하다.

처음이란 것은 설렌다.

누군가가 첫이란 글자를 이용하여 다양한 것을 작성한다. 첫걸음, 첫느낌, 첫경험, 첫 출근 등 다양하다. 오늘은 두타산을 간다. 그 많은 산을 가면서 이름난 명산이라고 하는데 못 가보았다. 몇번인가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일이 있어서 못갔다. 대학 동기모임에서 갈 기회가 있었고 그때의 추억을 친구들이 이야기하는데 끼지 못한 기억이 있다. 탈진자도 있었고, 다른길을 이용한 친구도 있었고. 산도 오르지 않고 계곡에서 논 친구도 있는 등 숱한 에피소드가 그때 있었는데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하였다.


수도권을 벗어나 멀리 산행을 한다. 인간의 세계에는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자연의 세계에 들어가서 오늘도 걸는다. 인간세계와 신선의 세계 차이가 아닌 인간세계와 자연세계 차이다. 어디에나 인간이 많고 그 인간의 세파에 찌든것이 현실이다. 하루를 자연과 더불어 노는 것이다. 이것이 원거리 등산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두타산의 산이름에서 두타(頭陀)는 불교용어로서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佛道) 수행을 닦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나하고 종교적으로는 그렇게 맞지 않지만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 일기다.


멀다.영월 정선 태백을 거쳐 댓재까지 간다. 태백을 지날때 이곳은 아직 초봄이다. 산 벚꽃이 이제 피고 있다. 산능선의 나무들은 아직 잎이 하나도 없는 앙상한 가지다.

삼수령을 지나고 광동댐을 지나서 댓재로 간다.

광동댐은 태백의 식수원이다. 예전에 태백에 식수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곳에 와본 기억이 있다. 이곳의 사람들은 식수원을 관리하고 보호하는데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있다. 단지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면서 농약을 좀더 적게 사용하여야 한다. 이곳의 고랭지 채소를 먹는 사람은 농약이 덜 들어간 채소를 먹는 것이다.


댓재는 대나무 재라는 뜻이다. 댓재 가는 길은 고원지역이다.  고랭지 채소밭이 즐비하다. 이곳에 집은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곳이고 이곳에 별장을 가지고 있으면 최고의 여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여름에 모기도 없고 겨울은 눈을 보면서 낭만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산은 산이다. 이곳은 재에서 올라가면 쉽지만 동해안 쪽에서 올라가면 쉽지 않을 것이다. 서울에서 4시간 가까이 걸려서 도착한 댓재에서 버스에 갇혔다가 나오는 사람들이 재를 부른다.

댓재는 백두대간 구간이다. 댓재정상에 이를 표시하는 글이있다. 옛날부터 산죽이 많다고 하여 죽령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댓재에서 발현한 하천이름을 죽현천이라고 한다. 사실 전남이나 경남사람들이 산죽을 보고 대나무라고 이야기하였다고 하면 웃을 일이겠지만 산죽도 대나무인 것은 사실이다.  재 정상에 산죽으로 형상을 표시하지 않고 대나무로 그 형상을 표시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댓재에서 출발하여 햇대등을 오른 후 통골재 두타산 그리고 최근에 개방된 베틀바위를 거쳐  무릉계곡으로 우리는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한다.


시작지점에는 산죽이 있다. 이것을 보고 대나무가 많은 고개라고 댓재라고 했을 것이다.


햇대등을 오르는 들머리에 산신각이 있다. 예전에 우리조상들은 고개를 넘을 때 이러한 곳에 들려 고개가 끝나는 지점까지 무사안전을 기원하였다. 오늘날은 그냥 지나간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모습을 tv에서 볼때 등반을 어느정도 한 후 5000m이상의 베이스캠프에서 그곳의 셀파를 비롯한 등반가들이 모여서 제를 올리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럴 것이다.

 햇대등을 오르지 않고 임도를 따라 걷다가 두타산 등산로에 들어갈 수 있으나 대부분은 햇대등을 오른다. 조망이 있을까 해서 오르기도 하지만 멀리 나무 사이로 두타산이 보일뿐 동해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진달래가 만개하고 있다. 진달래와 철쭉을 구별하자면 잎이 먼저나는 것이 철쭉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꽃이라고 참꽃이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 것일 것이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아직 이곳을 초봄에 들어두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통골재 까지 오르고 내림이 있으나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걷지만 댓재에서 1시간 30분이나 오르고 내리고 걷는다. 산행을 안내하는 분이 통골재에서부터 힘들고 1시간 정도 걸으면 두타산까지 갈 수 있다고 하니 안심이다.

통골재에서부터는 오르내림이 아니라 계속오른다. 산을 계속 오르는 것이 힘들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오르고 내리고가 계속 되는 것이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생에 있어서도 부침이 있는 경우가 있고 계속 올라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부침이 있는 경우가 어려울 수도 있고 오르다가 약한 오름이었다가 가파름 오르막을 오르다가 평탄한 길을 가는 인생이 좋다는 사람도 있다. 등산은 인생이다.


통골재에서 두타산성 흔적이 있는 곳 까지 가파름의 연속이다. 이구간을 지나면서 그렇게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이 지속되는데 야샹화 천국이다. 노란제비꽃, 얼레지 노루귀, 큰개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산을 오르면서 계속 오르면 힘들수 밖에 없다. 주변을 돌아보아야 한다. 야생화도 보고, 주변 경치도 보고 그것을 사진을 담으면서 한번쯤 쉬어 가는 것이다.


두타산을 바라보는데 거인이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우리가 갈길을 미리 준비한다. 저렇게 힘들게 오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도록 거인이 능선을 따라 걷는다.

두타산을 오르는 길에 조망은 없다. 정상 200m지점에서 이웃한 청옥산을 바라볼 수 있다. 정상은 사람들이 너무 많고 인증샷을 남기기에 급급하여 주변을 둘러보기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아 청옥산과 주변을 둘러본다. 산이 층층이 보인다 그 모습이 좋다는 사람도 있고 첩첩산중이라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산을 좋아하기 전 두메산골에서 태어났기에 산이 이렇게 많은 것은 싫었다. 요즈음은 좋다. 나이가 들면서 마음의 고항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귀향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상을 바로 앞에 두고 친구는 90m정도 떨어져 있는 두타샘을 갔다온다. 식수가 떨어진 사람들에게는 산중의 샘은 생명수인 것이다. 해발 1300m지점에 있는 샘은 귀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비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박을 위하여 올라오는 산객을 만났다. 그들은  오늘밤 이곳에서 자연을 즐기고 내일 새벽 일출을 본 후 등산객이 오기전 철수를 할것이다. 그만큼 두타산 정상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청옥산을 거쳐서 오는 사람, 무릉계곡에서 직접 올라오는 사람, 댓재에서 오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만나니 많다. 이곳을 빠른 걸음으로 회피한다.

지금까지는 오른쪽은 고원 왼쪽은 가파름이었으나 이제는 베틀봉을 거쳐서 베틀바위를 지나 무릉계곡으로 내려가야 한다. 가파름의 연속이며 세모의. 꼭지점을 연결하는 선을 걸어 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댓재에서 정상까지는 거리는 있어도 고도가 500m남짓 라왔지만 이제는 1300m를 내려가야 한다.

그래서 하산시간이 등산시간보다 길게 안배를 했다.그리고 하산길은 2020년 하반기에 개방된 베틀바위를 보아야 하기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한다.


두타산성 흔적이 중간중간에 보인다. 능선을 따라서 자연석을 이용하여 추가적으로 석축을 쌓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산성인데 임진왜란 시 실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3일 동안 격전을 치른 후 함락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이유가 동네 아주머니들이 잡혀서 성의 비밀이 탄로나 함락돠었다고 하니 아이러니한다. 쳔혜의 성이고 누구나 접근이 어려운데 어떻게 함락이 되었다 말인가?내부의 적에 의하여 무너지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일제에 강제 점령된 것도 일제에 동조한 고관대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즈음 토왜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의미로 사용되고 내가 아닌 다름사람을 그렇게 공격해야 나에게 표가 오기 때문에 그렇게 사용한다. 지금 우리가 일본에 동조하는 것은 국민정서법을 심각하게 저해하는데 누가 그짓을 하겠는가?


능선을 따라 내려온데 소나무가 아릅답다 못하여 탄성을 자아낸다. 저런 소나무가 이렇게 자라고 있으니 이곳을 보존하여야 한다. 소나무가 10년에 10cm내외로 굵어진다고 보았을 때 저소나무들은 100년은 더 되었을 것이다. 산불조심은 기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베틀바위는 지금까지 위험하여 접근을 불허하였으며 전문산악인들을 중심으로 그 모습을 보기 위하여 장비른 갖추고 접근을 하였고 일반인들도 릿지 동호회와 함께 접근을 하였는데 최근 동해시에서 등산로를 정비하여 이를 개방하였다고 한다. 무릉계곡으로 바로 내려가지 않고 베틀바위를 목표로 간다. 예전에는 미륵바위까지는 접근이 되었으나 그 이하를 못가도록 통제하였으나 이제는 갈 수 있다. 가파르게 내려가고 내려가면서 조망이 보이는 지점에서 맞은 편 산을 바라보니 그저 경이롭다.

이제 미륵바위다. 두방향에서 미륵바위를 조망한다. 조선시대 허목의 산행기를 보면 보는 모습에 따라 미륵, 선비,  부엉이 모습이라고 한다. 우선은 미륵의 모습ㅈ이 보이고 부엉이 모습도 보인다.

베틀바위를 내려가는 계단이 데크로 정비가 잘되어 있다. 데크가 없는 곳은 안전대를 설치하고 안전줄을 설치하에 놓았다. 베틀바위에 도착하니 아!이렇게  멋진 바위가 있어 릿지를 하시는 분들과 이를 보겠다고 욕심을 부린 사람들이 이해가 간다.

베틀바위를 볼 수 있도록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편안하게 감상을 할 수 있다. 왜 그토록 찾았는지 이해가 간다.

베틀바위 모습은 이름 그대로 베틀 같다. 가을에 단풍이 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전설에 따르면 하늘나라 질서를 위반한 선녀가 벌을 받고 내려와 이곳 무릉계곡에서 삼베 세 필을 짜고 잘못을 뉘우친 뒤 승천했다고 한다.


무분별한 등산객들을 구제한 것이며 동해시 특히,  무릉계곡의 명성이 더욱 높아질것 같다. 길을 내려오면서 동해시는 내려오는 길과 올라오는 길을 정리하였고 지그재그로 길을 정리하여 그 편리성을 높였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산을 내려오기전에. 다시한번 산을 둘러볼 주 조망 장소를 만난다. 무엇이든지 아쉬움이란 누구에게나 있고. 그 아쉬움이 없도록 하는 방법도 있지만 누구에게는 아쉬움과 미련이 남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한번쯤 무릉계곡을 간 사람이라면 산위의 암릉을 더가까이 보고 쉽은 욕구와 그 아름다움을 즐기기를 바랄뿐이다.

이제 무릉계곡이다. 바로 주차장으로 나오기 보다는 100m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무릉반석이 있다. 이곳에 머물렀던 다양한 사람들의 서체를 볼 수 있다. 그 흔적을 확인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무릉계곡에서 세수하고 발 씻고 산행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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