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지역갈등이다. 정치권에서 만든 갈등이 우리는 익숙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지역갈등의 원인은 무엇일까? 정치인들은 지역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노력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 지역을 우선시한다. 기본적으로 대지역 주의에서부터 소지역주의까지 다양하게 지역갈등이 유발되고 확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선거에서 소지역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 1개 자치단체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면 문제가 없는데 농촌 지역 등에서는 몇 개의 자치단체를 한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한다. 그곳에서 소지역주의가 나타난다. A시와 B군이 같은 지역구였으며 A시 출신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A시 주민들이 A시 출신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하는 것은 우리 지역 출신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우리 지역에 이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지역주의의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A시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 B군보다 A시를 위하여 노력한다.
최근에 이런 일이 있다. A시에 인접한 B시는 A시에 대기업이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였는데 그 공장을 가동하기 위하여서 B시를 통과하는 송전선이 필요하였는데 B시에서는 이를 승인하지 않아 공장 가동의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이야기다. 이웃은 이득은 있고 우리는 피해를 본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지역갈등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영호남 갈등, 동서갈등, 남북갈등, 농촌과 도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 모두 한쪽이 이득을 보고 우리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있다. 조선 시대에는 지역갈등이 있었다. 이는 지배층이 이를 조장했다고 보면 된다. 고려태조의 훈요 10조에도 지역갈등 이야기가 있다. 후백제지역의 사람들에게 양민이라도 벼슬자리에 주지 말라는 얘기다. 실제로는 후백제지역의 사람들도 고려태조 때부터 차별 없이 등용되었다고 한다.
한국만 지역갈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나 지역갈등이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남부와 북부의 갈등이 있고 스페인은 카탈루냐 지역과 비지 역의 갈등이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갈등이 심하여 독립을 추진하기도 한다.
선진국이라 생각하는 영국도 지역갈등이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이 선거에서 전국을 커버하는 정당에 비하여 득표를 많이 한다. 일본도 동경과 오사카의 갈등이 있다.
하지만, 지역갈등이 삶에 내재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조선 시대 정치적 필요성과 집권자의 특성에 따라 지역인재를 기용함에 따라 지역갈등은 유발되었지만, 그것은 하층민의 문제가 아니었다. 집권자와 제한된 관직에 대한 양반들의 문제였다고 본다. 특히, 함경도와 평안도의 경우에는 세종 시대에 개척한 땅이지만 함경도 함흥의 경우에는 조선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함경도 출신 양반이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적절히 기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4군 6진의 경우 여진족을 몰아내고 하삼도(경상, 전라, 충청)의 농민을 이주시켜 실질적으로 관직에 들어갈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조선의 과거 제도 중 대과는 초시와 복시로 나누어지며 초시에서 각도의 인구비례로 240명을 뽑고 서울 예조에서 복시를 실시하여 33명을 합격시켰다. 조선 시대에 있어서 문과는 그래도 공정하게 할 수 있으나 잡과는 거의 정기적으로 시험을 치르지 않기 때문에 근기 지방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한양에서 멀리 있는 곳으로 유배를 보내고 그 유배지에서 한양 양반들과 교류하였다.
조선 시대 지역 차별에 따라 발생한 홍경래의 난이 대표적인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지역 사람들을 관직에 임명하지 않음에 따른 민심이반을 현재에도 알기에 정무직 임명에 지역 안배를 하는 것이다. 구한말, 일제강점기 및 산업화 시대 후 우리나라 인구는 급격한 이동이 있었다. 소작농으로 살기보다는 공장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이농 현상이 발생하였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전국적인 지역 이동이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한국전쟁 시 많은 사람이 부산, 대구 등 영남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영남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제조업의 증가를 불러일으켰으며, 제3공화국에서 실시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항구가 발달한 동남권에 공업화(울산, 포항 등 신도시 생성)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인구집중과 경제력의 집중이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호남지방은 농업정책을 지속하고 정부의 이중곡가제에 따라 빈부격차는 심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지역갈등이 선거에서 표면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 대통령 선거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 후보로 영남의 박정희와 호남의 김대중이 정면 대결하면서 지역대결 형태로 움직였고 그것이 표로 나타나면서 심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박정희가 김대중에 대하여 국민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이슈와 지역을 동시에 연결함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이후 이러한 부분을 정치인들은 지속해서 사용하였다. 그리고, 공업화는 영남지역으로 확대되면서 호남지역의 소외감은 지속하였고 호남지역은 정부의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일부분 책임이 있는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유언비어는 이러한 지역감정이 극에 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을 이용한 것도 정치권이고 지금도 그러한 부분을 지역적으로 이용한다.
구세대의 유물인데 신세대도 이에 동참하는 것을 보면 그 지역의 소외감이 극에 달하였다고 본다. 신세대들에게 물어봐도 아직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정부의 정책은 영남과 수도권을 위한 정책이라고 한다. 이러한 점을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는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다. 영남지방도 그렇다. 허탈감이 무엇인지 안다. 허탈감으로 인하여 지역감정을 유발하면 안 된다고 본다. 이득을 보는 사람은 그것이 이득인지 모르지만,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 소외감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에 소외감이 해소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현재, 정부에서 호남 출신이 많이 있어 그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면 호남 출신들이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고 국가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파이는 영남이 크다. 그리고, 그 파이가 조금만 커져도 부피는 2배 이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경제발전에 있어서 선진국이 경제성장률이 낮다고 하여 경제 규모가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2배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보면 알 것이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점점 지역감정은 약화하고 있지만, 경제적 차이로 인하여 지역감정을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인터넷에서 댓글을 쓸데에도 이러한 부분을 인식하고 사용하여야 하는데, 프로야구 등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두고 있기에 그렇지만 지역에 대한 무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신세대들이 이러한 부분을 많이 사용하는 데 이러한 부분은 기성세대가 부화뇌동하면 안 되며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여야 한다. 교육이나 홍보가 안 된다면 강제적으로 이러한 언어가 나오면 금칙어가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본다. 최근의 가장 큰 갈등이 이념 갈등이다. 지역갈등은 이념 갈등보다 낮게 나온다. 하지만 지역갈등과 이념 갈등이 동반되고 있다. 보수층이 밀집한 곳이 영남이고 진보층이 밀집한 곳이 호남이다 보니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을 정치권은 이용하고 있다. 이념 갈등에서 추가되는 것이 친일청산이다. 일본의 수탈에 가장 피해를 많이 본 것이 호남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군산, 목포 등에 항구를 만들고 곡창지대의 곡식을 수탈해 갔다. 영남지역은 자작농 위주라 수탈할 곡식이 없어 그렇게 하지 못한 결과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이동을 많이 한 것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영남지방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친일파가 많이 산다고 하지만 일본으로 이주를 하였다고 하여 친일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35년간 일본의 강점하에 있으면서 우리 윗세대들은 일본에 협조하였다. 그것이 친일이다. 그리고 대지주가 많았던 호남지역에서는 대지주는 대부분 일본에 호응하였고 그들은 소작인을 착취하였는데 이들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 만큼 친일청산의 한은 더욱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친일청산에 대한 유산은 우리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쉽게 해결되었을 것이고 냉전 사상의 극치인 매카시즘이 우리에게 먼저 등장하면서 친일청산보다 공산당에 대한 반감이 우선시 된 결과로 본다. 이제 정확히 대중영합주의적인 친일청산이 아닌 정확한 진단에 따른 친일청산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치적으로 이를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
큰 지역갈등은 이렇지만 작은 지역갈등은 명칭에서 우리는 찾아볼 수 있다. ‘거가대교’, ‘천안아산역’, ‘구리암사대교’ 등을 보면 지역 명칭을 어떻게 넣느냐로 이전투구처럼 한 결과물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소지역주의라고 하기도 하고 자치단체장 및 자치단체 의원들이 이것에 집착하여서 발생한 것이다. 대승적으로 볼 것인데 그것을 보기는 어렵다. ‘거가대교’의 경우 부산에서는 ‘가거대교’라고 한다. 그것이 어떤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앞에 있으면 어떻고 뒤에 있으면 어떤가 나는 분당선을 타고 많이 다닌다. 실례로 분당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그 지역 사람들을 위하여 철도를 만들었다. 그것이 일산선이고 분당선이다. 그런데, 일산선은 지하철 3호선으로 연결되면서 일산선이라는 명칭은 없어졌다. 분당선이 수서에서 분당까지 다닐 때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왕십리에서 수원까지 다니면 단지 분당을 거쳐 감에도 분당선이라고 하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익숙한 용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신규노선을 만들면서 다양하게 논의하고 소지역주의를 탈피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신분당선’은 어쩌면 분당으로 연결이 거의 되지 않지만, 분당이 가지는 지역적 의미 때문에 그대로 사용한다. 분당이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지역 명칭은 사용하기도 하고 사용하지 않기도 한다. 자기들 이득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지역갈등도 자기 이득을 위하여 이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자기이듯이 없다면 이를 이용하지 않는다. 자기 지역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애향심이 없다고 정의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서울시의 금천구나 강북구는 낙후돼 자치단체이며 저소득층이 밀집해 있는 곳이라 인식 구로구는 공업지역이라는 인식 대림동, 안산은 중국 교포가 많이 사는 지역이라는 인식 등이 있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 지역을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반면에 판교, 목동은 반대이다. 분당구 안에 판교가 있음에도 판교는 별개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동판교, 서판교, 복판교가 있다. 목동도 같다. 양천구에 오면 전체가 목동과 신월동으로 구분되어 있다 신정동이 있지만, 신정동은 사람들의 뇌리에 사라졌다. 목동이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도 목동, 저기도 목동이다. 아파트 단지도 전체가 목동 000 아파트다.
재미있는 것은 옛날에는 지역의 면 단위 이름을 바꾼다. 사실 현재 최소 행정단위인 면은 그렇게 중요한 명칭도 아니다. 군 단위를 기준으로 모든 것이 움직이지 면 단위는 우리의 뇌에서 거의 사라지고 있다. 다만, 서울 인근의 면 단위는 그래도 주민들이 많아서 의미가 있지만, 인구 2000명 내외의 면 단위는 명칭이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치단체장이나 자치단체 의원들은 그것으로 생색을 내고 그것으로 자기의 성과로 포장을 한다. 그래서 지역 명칭이 분쟁을 일으킨다. 우리가 강원도의 대관령면이 있다는 사실과 김삿갓면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평창군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것에 용평이 있으며 그것이 더 잘 알려져 있으면 그것으로 명칭을 바꾸는 것은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지역갈등은 소지역주의에서 시작하므로 소지역주의를 극복할 방안이 필요하고 지연에 따른 행동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